우리나라만 학연이나 혈연, 지연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캠퍼스의 추억을 나눈 학교동문이라든지, 같은 고향이라든지, 혈연과 혼인을 통한 친인척이라든지, 때 묻지 않았던 어릴 적 친구들에게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사실 인지상정이다.

오랜만에 오랜 친구에게 메시지가 온다.

‘잠깐 전화통화 가능해?’ 직접 전화하기 전에 이렇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오는 건 사실 내가 수술 중이거나 전화하기 곤란한 상황일 것을 염두에 둔 배려인데, 오히려 그렇게 배려를 해주는 것이 뭔가 묵직한 부탁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친구가 하는 부탁 중에 듣다 보면 결국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는 논외로 하자. 필자가 S대 의대 출신의 의사이고 성형외과 전문의라서 받게 되는 부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가장 흔한 부탁은 사실 자신이나 가족, 지인이 성형수술을 원하니 잘 수술해달라는 부탁이다. 두 번째로는 다치거나 찢어진 환자를 예쁘게 꿰매주었으면 하는 부탁이고, 세 번째는 가족이나 지인이 어디가 아픈데 그 병을 제일 잘 보는 의사가 누군지, S대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지, 빨리 입원 가능한지 묻는 것이다.

위에 적은 두 번째, 즉 피부나 두피가 찢어지면 피도 많이 나고 엄청 험악해 보이지만, 그 안에 뼈나 근육의 손상이 없다면, 사실은 (내게는) 별 것 아니다. 지혈만 되었다면, 사실상 진정한 응급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다음날쯤 꿰매도 결과는 비슷하고, 빨리 봉합하는 것보다는 잘 봉합하는 게 더 적은 상처를 남기는 데 중요하다.

위 세 번째의 경우, 요즘 세상에는 내 가족이 아파도 빨리 입원하는 패스트트랙을 찾기는 어렵다. 어느 병원의 어느 원장 혹은 교수에게 가보라도 정보를 줄 수 있고, 진료를 받을 때 지인이니 잘 진료해달라는 부탁 정도를 해줄 수는 있지만, 새치기를 해서 입원시켜준다든지, 끼어들기를 해서 수술날짜를 잡아달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아픈 환자에게는, ‘한 원장에게 전화 왔었습니다, 어떻게 아프세요?’ 하는 담당 의사의 한마디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감을 주는 모양이다.

사실 필자로서는, 어느 질병에 어느 의사를 추천하면 될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의료계는 매우 좁은 편이어서, 어느 분야에서 누가 가장 실력자인지 거의 다 알려져 있다. 아주 지엽적인 것, 이를테면, 어느 의사가 수술하는 손이 섬세한지, 수술할 때 짜증과 화를 내는지, 실제보다 부풀려진 명의인지 다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타학교 출신이었던 성형외과 전문의와 그 아내, 또 역시 타학교 출신인 빅 5병원 성형외과 전공의(레지던트), 그리고 치과의사인 구강(악안면)외과전문의가 필자를 찾아와 돌출입수술을 받은 것은 의미있고 감사할 일이다.

필자가 받은 부탁 두세 가지를 더 소개한다.

1. 부탁 좀 하자

십오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오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부탁 전화였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그 친구의 아내가 팔뚝에 지방흡입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친구의 아내와는 구면이어서 잠시 나는 제수씨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는 내가 너무 젊어서, 돌출입, 윤곽수술 이외에 다른 모든 수술도 뭐든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던 때다.

경험상 수술비 이야기가 나올 즈음 속으로 ‘수술비를 어떻게 해주어야 안 섭섭해하려나? 빨리 해달라면 언제 해주면 되려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다음 이야기가 뼈를 때렸다.

-와이프가 저번 저녁 식사 때 자넬 보고 나서, 꼭 한 원장한테 수술받고 싶대. 수술 정말 잘하실 것 같다면서...근데, 울 와이프한테 좀 이야기해주게. 지방흡입하면 안 좋다고 말이야. 수술해서 좋을 것 없다고, 문제가 생기는 수술이라고 이야기해서, 수술 못 하게 좀 해줘.

기가 막혔다.

가령, 축구 좋아하는 아들 말리겠다고, 마침 잘 아는 축구코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구는 나쁜 것이고, 다칠 위험도 있고, 늙어서 고생한다고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하면, 평생 축구에 몸 바쳐온 그 선수의 기분이 어떨까?

성형수술은 가끔 ‘악’으로 오인되지만, 실제로 ‘악’인 성형수술은 과도하거나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상업적이거나 중독적, 반복적인 경우다. 물론 꼭 필요한 수술이었지만 그 결과가 나쁘거나 합병증을 얻게 된다면, 역시 차악일 것이다. 꼭 필요한 수술을 통해 안전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얻었다면 착한 성형수술이요, 선(善)에 가깝다. 여자가 화장하는 것을 탓할 수 없듯이(요즘은 남자도 화장한다), 외모가 아름다워지고 싶은 노력은 그 자체로 본능이고 죄가 아니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외모의 개선으로 마음까지 밝아지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면 금상첨화다.

나로 하여금 자기 아내에게, ‘지방흡입은 나쁜 수술이다, 불필요한 수술이다.’라는 말을 해달라는 것은, ‘성형수술은 나쁜 것이다’라고 자인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며, 매우 중대한 나의 존립 근거에 대한 부정이고 다분히 모욕적이다.

필자는 지금 나를 찾는 환자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기 위해, 공부하고 수술하며 반평생을 바쳐왔다. 성형외과학은 엄연히 의학이라는 과학의 한 분야이고, 현대의학은 과학적인 토대 위에 세워진 근거 중심 의학이다. 필자에게 성형수술은 내가 하고 있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와도 같은데, 그걸 나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달라니...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하는 성형수술이 나쁜 수술이라고 거짓말해줄 수는 없네.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아...와이프 설득은 자네가 직접 하는 게 좋겠군. 

그 일이 있고 나서, 친구로서도, 성형외과 전문가로서도 나를 믿지 못한 그 친구를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와이프가 수술 받는 게 싫었든지 돈이 아까웠든지 간에, 자신은 와이프에게 수술을 알아봐 준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나는 ‘인류에게 해악인 수술을 하고 살지만, 친구 와이프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도저히 그런 수술은 양심상 못하겠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금도를 넘은 것이다. 그 팔뚝 사건 때문은 물론 아니겠지만, 잉꼬부부로 소문났던 그 커플은 결국 헤어졌다.

2. 가족의 부탁

과연, 성형외과 의사는 자신의 가족에게 성형수술을 해줄 수 있을까?

동료 성형외과 의사에게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성형수술이란 것이, 별로 할 게 못 된다’는 뉘앙스였다. 내겐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에 부정적인 것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수술결과에 자신이 없으니 회의적이거나, 성형수술 자체가 선(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수술을 계속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난 그때부터 그가 다소 이중적인 것 아닌가 지켜보게 되었다. 그가 자기 환자에게 ‘성형수술은 할 만한 것이 못되니 그냥 집에 돌아가시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들은 자신이 받는 수술이 태생적으로 ‘나쁜’ 수술이라면 받지 않을 것이다. 의학이라는 과학으로 검증된 수술은 그 자체가 나쁜 수술일 수 없다. 수술하면 반드시 일정 수준의 합병증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수술은 합병증의 가능성이 있으며, 그 중 수술경험과 실력으로 예방 가능한 것들이 있다. 가령 손이 무디면, 죄 없는 신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외과의사에게 냉철한 지식과 매의 눈, 섬세한 손이 중요한 이유다.

만약, 그 동료 의사처럼 자신의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아마 자신의 딸이나 아내에게는 성형수술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안과의사는 정작 자신은 시력 수술을 안 받는다며?‘와 비슷한 이중 잣대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중 잣대가 없다. 가족의 부탁을 자주 받고, 가족에게 꼭 필요한 수술을 권해주기도 하며, 다른 환자와 차별 없이 수술해주고 있다. 가족에게도 돌출입수술, 광대뼈, 사각턱수술이든, 눈, 코 수술, 가슴수술이든, 꼭 필요한 수술이라면 해줄 수 있어야 당연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주었다. 필자에게 돌출입수술 받은 가까운 친척이 시집가서 아기 낳고 잘 살고 있고, 역시 내게 돌출입수술 받은 가까운 혈육이 대학 졸업해서 의사가 되었다. 세월이 빠르다.

3. 둘째 딸도 부탁해

모 진료과 전문의인 친구의 첫째 딸이 내게 돌출입수술을 받은 건, 7년 전의 일이다. 내 친구인 제 아빠를 쏙 빼닮아 나온 돌출입이니, 아빠가 책임져 줄만도 했다. 큰딸 돌출입수술을 시켜주는 것만 해도, 사실 그 친구로서는 대단한 결심이었을 것이다.

자신도 의사인데다가 거의 모든 아빠는 딸 바보임을 감안하면, (치아기능과 건강이) 멀쩡한 제 자식을 수술대에 눕혀서 다른 의사에게 성형수술을 맡긴다는 것은 확고한 신뢰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큰딸에게는 돌출입뿐만 아니라 광대뼈, 사각턱도 다소 있었지만, 그 친구는 돌출입수술만 받길 원했다. 그것만 해도 큰맘 먹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의 둘째 딸이 대학에 입학한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제 아빠 입장에서는 입학 선물(?)로 수술을 안 해 줄 수 없게 된 것이, 둘째는 이미 제 언니가 돌출입수술 받은 것을 고등학교 때부터 보고, 대학 가는 날만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우리 병원에 왔을 때부터 두려움이라고는 하나 없이 그저 신이 나 있었다. 동생은 언니보다 더 제 아빠를 닮아 있었다. 그 덕에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이 언니보다 더 튀어나와 있었다.

수술을 일이 주 앞두고, 그 친구와 식사를 했다. 친구는 내게 파격적인(?) 부탁을 했다. 둘째 딸에게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수술을 다 해주고 싶은데, 요즘 병원 사정이 힘드니, 반값에 수술해달라는 것이었다.

돈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열과 성을 다한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헐값에 팔고 싶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비용에 관해서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결국 어떤 비용으로 어떤 수술을 해주었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물론, 비용을 덜 받았다고 덜 아름답게 수술하지는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작가의 열정과 완성도를 위해서 그 가치에 걸맞은 비용이 들어가는 게 맞고, 그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이제 친구의 두 딸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어디 가면 둘 다 엄마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단 한 가지, 첫째 딸은 아직도 왜 자기는 광대뼈와 사각턱수술을 안 해주고 동생만 다 해줬냐면서 투덜댄다고 한다. 그 집에 셋째도 있단다. 셋째는 다행히도 엄마를 쏙 빼닮아 돌출입이 아니라고 한다. 이제 그 친구는 내게 자식들 돌출입수술로 더 이상 신세질 일이 없을 것이다.

대신, 내가 그 친구 병원에 가서, 그 친구가 잘하는 시술 좀 받고 더 젊어져야겠다.

주고, 받는 게 또 인생의 재미 아니겠나.

사족 같지만, 나태주 시인은 ‘부탁’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사랑아//모습 보이는 곳까지만/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사랑아

긴 장마가 끝났다. 입추 지나 처서가 코앞인데 폭염이다.

모든 이들의 사랑이 열매 맺는 가을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