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하반기 ‘시계제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 하반기는 물론 내년 상반기에도 업황 악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와 시장이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 출처=삼성전자

“하락세 다시 시작”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지난 6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하반기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 예상한 바 있다. 실제로 WSTS는 올해 전체 반도체 시장이 4259억 6699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3.3%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으며 내년에도 4522억 5200만달러 규모로 고무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 봤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확장될 것이라 전망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주춤하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올해 15% 성장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의 마이크론 등이 연이어 2분기 호실적을 기록하며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트렌드 강화로 서버용 반도체 시장이 살아나며 소비심리 악화에 따른 스마트폰 반도체 수요 등을 상쇄할 것이라는 분석도 연이어 나왔다.

그러나 19일 현재 업계에서는 하반기 반도체,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호조세를 보일 것이라 전망하는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올해 하반기는 물론 내년 상반기까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재고관리 측면에서 수요와 공급 전망이 빗나간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 2분기 코로나19의 창궐로 많은 세트사들이 반도체 부족 현상을 우려하며 물량을 대거 빨아들였으나, 막상 우려했던 반도체 생산라인 차질 및 부족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각 반도체 제조사들이 3분기 남아있는 재고를 소진해야 할 상황에 놓이며 오히려 공급 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비대면 트렌드로 서버용 반도체 등의 품귀 현상이 일시적으로 벌어지기는 했으나, 넷플릭스와 같은 주요 인터넷 기업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생각보다 심각한 ‘트래픽 난’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2차 팬데믹 가능성을 시사하는 코로나19의 재확산 여부에 따라 비대면 트렌드가 다시 살아나며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 어떤 예단도 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그 여파로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상반기 가격 상승세를 멈추고 현재 완만한 수평선을 그리는 중이다.

공급 과잉 및 가격 정체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격변도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는 일종의 ‘뇌관’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는 17일(현지시간)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의 중국 화웨이 공급을 차단한다는 제재를 발표했다. 최근까지 화웨이가 설계를 주문한 반도체만 차단했다면, 이제는 화웨이로 흘러가는 모든 반도체 공급을 막겠다는 초강수다. TSMC마저 화웨이와 등을 돌린 현재, 화웨이의 반도체 비축량은 내년 초가 한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입장문을 통해 “현재 규제안을 검토중이지만 반도체 거래에 대한 이와 같은 광범위한 규제는 미국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국가 안보를 달성하려는 기존의 부분적인 제한 입장에서 갑자기 선회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 압박의 수위를 낮출 생각이 없다. 오히려 중국 정부를 ‘공산당’이라 칭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중이다.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반도체 부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화웨이와의 거래가 완전히 막힐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톱5 매출 파트너는 화웨이고, SK하이닉스는 매출의 4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급이 막힌다면 국내 기업들의 실적 하락도 불보듯 뻔하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삼성전자의 경우 화웨이에 대한 압박에 일종의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글로벌 5G 및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의 입지가 약해지며 삼성전자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상승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다만 반도체가 삼성전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득보다 실이 크다는 분석이다.

▲ IBM의 CPU 파워10. 출처=IBM

삼성전자, 플랜B 통할까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하반기 업황 악화의 그늘이 드리우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플랜B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파운드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후 시스템 반도체 전반에 대한 강력한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7나노 EUV 공정을 위시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이 벌어지고 있다. V1 라인을 가동하는 한편 총 30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되는 평택캠퍼스의 P3 공장도 내달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7나노 EUV 반도체에 3차원 적층 패키지 기술인 X-Cube(eXtended-Cube)를 적용한 테스트칩 생산에도 성공하며 관련 기술력을 키우는 중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IBM의 파운드리 물량을 수주받으며 그 가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실제로 IBM의 차세대 서버용 CPU '파워(power) 10‘ 물량을 수주하며 7나노 본색을 보여줬다. 삼성전자는 2021년부터 IBM의 CPU를 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탕으로 다수의 팹리스들과 협력해 파운드리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 출처=갈무리

다만 인텔의 7나노 물량이 현 상황에서 TSMC에 흘러갈 가능성이 높고, 최근 퀄컴이 삼성전자에 물량을 배정했던 3세대 5G 모뎀인 스냅드래곤 X60 5G 모뎀-RF 시스템(X60)을 TSMC에 몰아줬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 것은 불안요소다. IBM 물량 수주에 이은 쾌조의 흐름이 순식간에 깨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흔들리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플랜B인 파운드리 인프라가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으나, 현 상황에서 미국 공장 증설로 부쩍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과 가까워진 대만 TSMC의 아성을 깨트리기는 당분간 어렵다는 평가다. 플랜B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