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킹키부츠’라는 뮤지컬의 국내 공연을 앞두고 사전 언론 인터뷰에 나선 작곡가의 얘기를 보았습니다. 이 공연을 보면 행복해져서 극장 문을 나서게 될 거라며, 요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용기와 행복이라며 공연 볼 것을 강추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용기를 말하나 살펴보니 그녀는 80년대에 잘 알려졌던 미국의 팝스타

신디 로퍼(1953-)였습니다. 80년대에 유명 팝스타로 이름을 알렸고, 2010년에는 최고의 블루스 가수로 올라섰고, 2013년 이후에는 뮤지컬 작곡가로 미국 공연계와 영국 공연계 최고상을 각기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 언론에서는 그녀를 세 가지 세계의

여왕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던데요. 가늠은 잘 안되지만 세 분야 세계를 섭렵한 그녀의 이력을 보면 거침없는 도전에 이시대에 과연 용기를 말할 만 하지요.

더구나 팝이나 블루스가 혼자 하는 작업이었다면,

뮤지컬 작업은 함께 하는 작업이라 더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그녀를 보면 성숙해보이고,

용기의 원천이 더 깊은데 있어 보입니다.

얼마 전 라인홀트 매스너(1944-)의 ‘에베레스트 솔로’라는 책에서 또 용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시다시피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정복한 인류 최초의 산악인으로, 일부러 가장 어려운 방식을 골라 정상 정복에 나서는 독특한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다들 산소공급 장치에 의지해 히말라야에 오를 때 무산소 등정으로 산에 도전하고, 다들 세르파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산을 오를 때 단독 등반의 위험을 감수하는 식입니다. 이 책은 그가 1978년 동료와 함께 했던 히말라야 무산소 등정에 이어, 1980년 단독으로 무산소 등정을 하며 겪었던 고민을 다루었습니다. 무산소 등정은 사람이 산소 공급 장치 없이 해발 7,500미터 이상 고지대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통념을 깨는 목숨을 건 도전이었습니다.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할 때 유럽의 언론에서는 그의 도전을 ‘용기의 낭비’라고 비판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위험한 등반을 하는 역사를 쓰면 다음에 다른 사람은 더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 등반하게 된다며 그 무모함을 나무랬습니다. 그러며 맨발로, 손에 수갑을 차고, 심지어 눈에 검은 안대를 매고 히말라야에 오르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냐고 힐난했습니다. 그러며 그런 용기를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곳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며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의 용기에 합류하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산을 올랐습니다.

그의 고향에서 고향 사람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며, 주어진 운명이려니 체념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속 터져하며 그런 세상을 떠난 그였습니다. 이후 산행을 하며 자기 능력의 한계치를 밀고 나가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인간으로 당연히 그를 괴롭히는 두려움을 누르고, 두려움보다 자신이 휠씬 강하다는 걸 느끼는 삶으로 도전을 택했습니다. 거기에 바로 용기의 원천이 있었던 거지요.

결국 용기는 자기가 선 자리에서 마음 깊은 내면의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겠지요.

두 사람의 도전과 용기를 보면서,

이 나이에 어떤 도전을 하는 용기를 가질 것인가,

어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인가

침잠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