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최악의 적자에 허덕이던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4월부터 6월까지 실적을 발표하며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다. 1조2557억엔(약 14조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기사회생했다는 설명이다. 전년 대비 11.9% 성장해 1월부터 3월까지 1조4381억엔(약 16조원)의 적자를 기록한 과거를 어느정도 털어냈다는 평가다.

다만 소프트뱅크의 위기가 잦아들었다 보기는 어렵다. 소프트뱅크는 T모바일 매각을 통해 4219억엔의 이익을 얻었고 자회사 스프린트가 지난 4월 T모바일과 합병하는 과정에서 7364억엔의 이익도 계상되는 등, 이번 호실적의 배경에는 자산 매각이라는 초강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펀드에서 이익이 창출됐을 뿐, 장기적 관점에서 소프트뱅크의 비즈니스가 부활했다는 증거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 손정의 회장. 출처=갈무리

손정의, 그리고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1957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다. 할아버지 손중경은 1914년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광산 노동자로 일하며 자리를 잡았으며, 아버지 손삼헌은 생선행상으로 간신히 생계를 꾸혔다. 다만 아버지 손삼헌은 장사에 소질이 있었는지 곧 파칭코와 부동산 사업으로 재산을 모았다.

일본 남부 규수의 사가현 도수시에 우후죽순 들어서 있던 판자촌에서 태어난 손정의는 어린 시절 '조센진'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좋아지자 그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후쿠오카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그는 '최고의 학교를 만들어 보이겠다'며 교장에게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사업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후 손정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월반을 신청하는 즉시 3주만에 대입자격시험 자격을 신청했다. 당시 영어로 진행되던 시험이 일본인인 자신에게 불공평하다며 사전을 참고해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항의했고, 결국 이를 관철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손정의는 홀리네임즈 대학교를 거쳐 1977년 명문 버클리대 분교 경제학부로 진학한 후 대학생 시절 무려 250개의 발명을 해내며 두각을 보인다. 그가 발명한 '일본어 입력, 영어 표기 번역장비'는 100만 달러의 계약금으로 팔려 샤프의 전자 번역기 시초가 되기도 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1981년 자본금 약 1억엔에 회사를 차린다. 처음에는 경영난이 심했지만 미국의 거부인 로스 페스와 합작을 바탕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두각을 보였고, 1998년 1월 소프트뱅크의 주식은 일본 대장성의 허가를 받아 장외시장에서 2부를 거치지 않고 곧장 도쿄증권거래소 제1부에 상장되는 역사를 세웠다.

그러나 닷컴버블 시기 소프트뱅크는 크게 휘청였다. 최악의 상황. 그는 거칠게 항의하는 주주들을 대상으로 장장 6시간 동안 설득에 매진하는 한편 알리바바에 투자하는 등 미래를 위한 포석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승부사 손정의 본능이 살아나자 흔들리던 소프트뱅크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일련의 위기는 곧 소프트뱅크와 손정의가 비전펀드의 창설과 인공지능 시대의 주역이 되는 마중물이었다.

▲ 영국의 암. 출처=갈무리

위기의 시작
소프트뱅크가 우버의 대주주로 오르며 온디맨드 플랫폼 시장을 주도하고 영국의 암 인수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큰 손이 된 순간 위기는 찾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가 의기투합한 비전펀드의 실패, 특히 위워크 투자 실패가 결정타를 날렸다. 위워크는 한 때 공유 오피스의 신기원을 세우며 자사를 공유경제 기업으로 포장, 막대한 투자금을 빨아들였으나 창업자 애덤 뉴먼의 방만한 경영에 온디맨드 비즈니스의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하며 침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소프트뱅크는 위워크와 법정공방까지 벌이는 등 고통을 겪는 중이다.

최근 투자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교통·물류 분야 기업은 코로나19에 따른 외출 자제로 큰 타격을 받았고, 비전펀드의 88개 투자처 중 무려 60%인 50개 기업의 가치가 하락하는 등 경고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4월부터 6월까지의 실적이 반짝 상승했으나, 장기적 관점으로는 여전히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영국의 암도 매각할 판이다. 

암은 반도체 칩 설계회사로 활동하면서 사물인터넷 시장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실제로 암은 저전력 반도체 설계도와 명령어셋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모바일 혁명을 발판으로 삼아 크게 몸집을 불린 상태에서, 사물인터넷 시대의 초연결 생태계 인프라 구축에 가장 근접한 기업으로 평가됐다. 이에 소프트뱅크는 4년 전 암을 약 243억 파운드에 품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다만 사물인터넷 시장이 생각보다 만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소프트뱅크가 각 파트너사에 설계도면과 명령어셋을 제공하는 평탄한 비즈니스 구조를 가진 암을 대상으로 매출 압박을 강하게 지속하자 암의 경쟁력도 크게 퇴색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암의 중국 지사 지분율이 현지 정부에 절반 이상 넘어가며 매출 구조에 변화가 생겼고, 그 연장선에서 소프트뱅크도 암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암은 손 회장이 한 때 미래의 보물이라 불렀던 회사다. 이런 회사를 매각한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소프트뱅크의 위기를 잘 설명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암 인수전에 가장 근접한 곳은 엔비디아지만, 일단 컨소시엄 형태의 인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손정의 회장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이미 2000년대 닷컴버블 시절 위기를 이겨냈던 사례가 있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손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재팬텔레콤을 인수하고 당시 일본 꼴찌 통신사 보다폰 일본법인까지 품으며 통신계로 보폭을 넓히면서 애플과 협력하는 협상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4년 자기를 찾아온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와 만나 10분 간 이야기를 나눈 후 그 자리에서 2000만달러 투자를 결정했고, 이는 아직도 '투자계의 전설'로 회자되는 중이다.

결론적으로 손 회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 어려운 시절을 겪었고, 당시 그는 본능적인 투자감으로 알리바바 매직을 일으켜 대성공을 거둔다. 일각에서 현재 손 회장의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으나 그가 보여줬던 과거의 능력이 다시 재연될 것이라 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