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훈 GS홈쇼핑 부사장. 사진=임형택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사명은 GS홈쇼핑이지만 모바일커머스·이커머스 회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TV채널로만 비즈니스하는 회사가 아니란 의미죠. ‘오픈이노베이션 에코시스템(Open Innovation Ecosystem)’을 통한 포트폴리오 확장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박영훈 GS홈쇼핑 부사장(미래전략본부장·54)의 말이다. 박 부사장은 TV홈쇼핑, T-커머스(데이터방송 홈쇼핑), PC기반·모바일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뉴커머스 영역으로 확대하는 GS홈쇼핑 현주소에 대해 이 같이 전했다.

GS홈쇼핑이 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GS홈쇼핑은 유통을 넘어 IT를 기반한 플랫폼 기업으로 체질변화가 시도되는 중이다. 그 밑바탕에는 벤처기업이 있다. GS홈쇼핑의 벤처투자 10년. 박 부사장은 GS홈쇼핑의 궁극적인 벤처투자 목표에 대해 상호협력을 통한 미래성장 도모, 즉 ‘오픈이노베이션 에코시스템’ 구축이라고 강조했다.

GS홈쇼핑 벤처 투자 ‘특급 소방수’의 일침,
수명 다한 전통 대기업 ‘성장 비결’, “묘약, 스타트업·벤처에 있다”

박 부사장은 지난 2014년 GS홈쇼핑의 벤처기업 투자를 위해 특급 소방수로 영입된 주인공이다.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석사 졸업 후 1993년 삼성물산, 2000년 보스턴 컨설팅 그룹, 2001년 셀빅 대표, 2004년 모니터그룹 부사장, 2010년 액센츄어 대표 등을 지낸 외부 인사로, GS홈쇼핑의 벤처네트워크 구축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박영훈 GS쇼핑 부사장. 사진=임형택 이코노믹리뷰 기자

박 부사장이 GS홈쇼핑에 첫 출근한 것은 5년여가 됐지만, 실제 GS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GS그룹이 LG그룹과 57년 동행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당시 박 부사장은 컨설턴트로써 그룹 출범 초기 비전, 전략 등 주요 과제를 정비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박 부사장은 “삼성을 떠난 후 우연히도 LG를 고객으로 하는 ‘스핀 오프(Spin-Off, 분사)’ 프로젝트가 많았다”며 “이후 GS 경영진들이 그룹 출범 초기 새로운 (그룹) 론칭에 관한 도움을 요청해 왔고, 10여년이 지나 합류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많은 GS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홈쇼핑을 선택한 배경은 ‘유연성’에 있었다. 지난 20~30년간 지속됐던 국내 기업들의 성장 비결은 수명을 다했고, 새로운 처방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박 부사장은 ‘성장의 묘약(혁신)’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이 스타트업 혹은 벤처기업에 달렸다고 봤다.

그는 “대기업 중에서도 규모가 지나치게 크지 않고 문화도 무겁지 않으며 변화와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혁신도 가능하다”며 “GS그룹 내에선 홈쇼핑이 가장 유연한 철학과 문화, 리더십을 갖고 있었기에 열정을 갖고 일하면 성과를 낼 것이라 판단했다”고 전했다.

“대기업 생존, 스타트업에 달렸다”

기업의 혁신. 박 부사장이 대기업 성장에 필수로 꼽는 요소다. 기업 혁신은 여러 조건이 맞물려야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한국 대기업을 고속성장으로 이끌었던 공식은 바뀐지 오래다. 세상은 빨리 진화했고, 경제구조도 변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혁신은 자체 역량보단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박 부사장은 “선진국과 선진기업들이 만들어낸 신제품, 공정 등의 아이디어를 도입해 최적화하고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쉽게 만들어 대량생산·판매한 것이 지난 30년의 한국 성장 역사”라며 “이로 인해 대기업은 실패를 용납하기 어려운 문화를 갖게 됐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은 중국에 밀려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 혹은 유럽처럼 원천기술로 방향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한국 대기업 조직구조와 문화가 맞지 않는다”며 “한국 교육시스템, 사회구조, 기업문화와 리더십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박 부사장은 해법으로 스타트업을 제시했다. 국내 대기업 문화가 잘 짜인 조직구조, 상명하복식 문화, 목적 지향적, 아웃풋보단 인풋 중심인 반면 스타트업은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갖고 있어서다. 그는 “많은 대기업들이 지난 10년, 15년간 신사업 실패 등으로 내부에서의 혁신이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며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생태계가 완전히 다른 스타트업들은 혁신의 열매를 선보였다. 모범생들로 구성된 훌륭한 대기업 인적자원에 결여된 창의력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박 부사장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으로 양분된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들이 버팀목이 되어 국가 경제를 이끌고, 의욕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스타트업들이 혁신과 파괴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핵심 축이 맞물려 상호협력하며 미래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스타트업, 상호협력으로 미래성장 도모 ‘오픈이노베이션 에코시스템'

GS홈쇼핑이 벤처투자를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 투자처를 물색하는 이유다. GS홈쇼핑이 명명한 ‘오픈이노베이션 에코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GS홈쇼핑이 그리는 벤처투자의 미래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GS홈쇼핑은 벤처기업에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물들을 국내외 사업에 접목하고 있다.

▲ 박영훈 GS쇼핑 부사장. 사진=임형택 이코노믹리뷰 기자

긴밀히 협업하고 자원을 공유해 벤처기업을 함께 키우고, 장기적으로는 시너지를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즉, 단순 자금을 투자하는 게 아닌 기업주도 벤처캐피털(CVC, Corporate Venture Capital)이 주된 목표다. GS홈쇼핑은 벤처투자를 성장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 성장 전략의 마중물을 만들고 있다. 투자 벤처기업들 또한 도전적으로 회사를 같이 키워보자는 GS홈쇼핑 의지에 적극 공감하는 중이다.

따라서 ‘오픈이노베이션’은 GS홈쇼핑 문화로 자리잡고 있고, MD나 PD, 마케팅 등 핵심 사업부서에서도 외부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당연시된 상태다. 스타트업들로부터 더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배워야 할 것들을 먼저 요청하는 문화도 형성됐다.

박 부사장은 “오랜 기간 우리끼리 일하는 문화에 익숙한 대기업에서 쉽지 않은 변화였고, 최소한 5년 이상 노력 끝에 이 문화가 만들어졌다”며 “단순 재무적 투자나 해당 기업을 인수는 목적이 아닌, 창업자 권리를 존중하고 새로운 성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도 우수한 벤처기업과 관계 강화를 염두에 두고 투자처를 물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 체질 바꿀 기반 기술 AI·블록체인, 내재화 ‘주목’

GS홈쇼핑은 지난 2010년부터 약 10년간 총 46개 국·내외 600여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했고, KIF-스톤브릿지 IT전문투자조합 등 18개 국내외 벤처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올해 1분기말 현재 누적 벤처투자액은 3260억원. 이중 단순 지분 취득이나 펀드 등을 통한 간접 투자를 제외한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에 지난 5년간 투입한 금액은 1069억원으로, 국내 기업 중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벤처투자에 따른 재무적 성과도 고무적이다. 연결 장부금액기준 직접투자 및 펀드 투자잔액은 약 4300억원으로, 헬로네이처, 에이플러스비, 피알앤디컴퍼니 등 12곳 투자처에 대한 투자금을 회수했다.

그러나 GS홈쇼핑의 벤처투자 큰 그림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IT다. GS홈쇼핑은 지난 몇 년간 IT를 강화하는데 집중했고 그 결과 전체 인력 중 30% 가량을 IT인력으로 채웠다. 최근에는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기존 벤처투자팀, M&A팀, CoE(Center of Excellency)팀을 한데 모아 ‘이노베이션 플랫폼사업부’로 일원화한 것이다.

박 부사장은 “주로 아웃소싱에 의존했던 IT 강화에 주력해 DT(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를 진행했다”며 “다양한 커머스 채널 강화로 타깃한 고객에 정확히 접근하는 근간이 기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GS홈쇼핑 취급액 총 5조원 중 TV로부터 오는 것은 약 40%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모바일 커머스에서 발생한다”며 뉴커머스 채널을 지속 확장하는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GS홈쇼핑 DT에는 이노베이션 플랫폼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박 부사장에 따르면 지난 1994년 출범한 GS홈쇼핑(당시 한국홈쇼핑)은 26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객 데이터는 한정적이었다. 고객 구매 패턴 일부분만 읽을 수 있었기에 내부적인 반성도 있었다.

박 부사장은 “DT는 올해 역점을 둔 전사적인 혁신활동으로, 모든 사업영역에 걸쳐 업무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하고 일하는 방식을 고도화하는 것을 목표한다”며 “이 과정에 필요한 역량과 기술을 이노베이션 플랫폼을 통해 수혈한다”고 전했다.

이어 “빅테이터, AI, 블록체인, 머신러닝, IoT 등의 IT 기술을 강화해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더 좋은 조건으로 공급해야한다는 게 기존 사업에 대한 고민이었고, 스타트업 생태계로부터 도움 받아 스케일업(규모 확대)했다”며 “추가적인 과제는 에코시스템 내 파트너들과 더 긴밀하게 협력해 AI, 블록체인, 바이오 혁신의 원천들을 꾸준히 찾아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GS홈쇼핑’은 사라지고 ‘GS샵’만 남는다?

지난 3월 수장에 오른 김호성 GS홈쇼핑 대표 역시 외부 스타트업 투자와 협업의 중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사내에 흩어졌던 기능을 통합하고 강화된 역할을 주문한 것이 반증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기존에 소수 지분 투자를 해둔 포트폴리오에 대한 지분 확대나 적극적인 M&A 등이 새로운 전략의 일부일 수 있다고도 했다.

‘에코시스템’을 갖지 않으면 혁신생태계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벤처투자를 통해 GS홈쇼핑만의 생태계를 갖췄고, 유연하고 빠른 신사업 도전도 가능하단 이야기다. 이 전략은 GS홈쇼핑이 주요 사업분야를 비롯해 직·간접적 영향이 있는 벤처 투자영역만 놓고 봐도 짐작할 수 있다.

GS홈쇼핑은 버티컬 커머스, 미디어 콘텐츠, 마케팅 등을 주요 투자 카테고리로 블록체인, 소셜커머스,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케어 등 다양한 영역에 유망 기업 탐색 및 투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벤처투자를 GS홈쇼핑 성장의 수단으로 혁신 DNA를 이식받는 밑거름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GS홈쇼핑은 ‘뉴비즈니스’도 구상중이다. 박 부사장은 “GS홈쇼핑 내부에는 ‘뉴비즈니스 디벨롭먼트’란 부서가 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유통을 넘어 새로운 사업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중”이라며 “이노베이션 포트폴리오와 협업을 통해 지난 1~2년간 진행한 사업도 있고, 이제 시작한 것들도 있다. 혁신 생태계를 밑바탕으로 기존 사업 규모를 확대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뉴 비즈니스를 어떻게 구축해 낼 것인가가 전사적인 방향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 유통기업들이 현 상태에 머물면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은 아마존의 등장에 백화점이 추락하는 등 유통시장이 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백화점이 쇼핑공간이 아닌 놀이공간으로 바뀌었고, 대형마트는 향후 1~2년 내 사라질 수 있다. 온라인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오프라인 유통은 몰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유통기업들이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점도 꼬집었다. 그는 아마존과 쿠팡이 유통기업이라기 보단 IT기업으로 여기는 배경을 일례로 들며 “기술이 고객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고객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들이 나올 수 있다”며 “기술 변화에 따른 고객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소용없을 만큼 기술은 중요하다. 유통기업들이 기존 사업만해서는 도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