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성향이 변했다. 온라인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문화의 장벽이 깨지고 소비 성향 또한 변모하고 있다. 과거 고가의 명품으로 여겨졌던 수입차가 이제는 개인의 성향과 연비 등 원하는 입맛에 맞는 차종이라면 살수 있는 대중적인 이미지로 탈바꿈 한 것이다. 올해 국산 신차 출시 비율이 부진한 가운데 다양한 차종과 대폭 낮춘 가격으로 국내에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수입차업체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수입차들이 지구촌 변두리의 소형마켓인 한국시장에 그토록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시장에서 잘 나가는 차종이 세계시장에서도 잘 나간다는 업계의 속설도 하나의 이유가 될듯 싶다.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국내영업본부장)은 지난 19일 열린 신형 산타페 발표회 일문일답에서 “수입차를 포함해 지난해 국내 자동차 판매량이 157만8000대였지만 올해는 154만5000대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수입차가 한 해 10만 대 이상 팔리는 시대가 도래했고, 지난 3월 수입차 판매 대수가 약 1만 600대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수입차 진영이 올해 전체의 10% 수준인 15만대 판매를 예상하고 있어 이를 달성할 경우, 전체적인 판매 규모 감소속에서도 수입차 비중은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자국 차 비중이 80% 가까이 된다는 한국 자동차시장에서 틈새시장 개척에 그쳤던 수입차 업체들이 이제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최근 국내 흐름은 해외시장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보다 우수한 품질의 수입차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일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됐다. 이를 통해 국산과 수입 브랜드간의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국내 소비자들이 더 나은 품질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의 구매 패턴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합리적인 가격과 상품성,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모델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20~30대 젊은 소비자층이 늘어났고, 이를 표현하고 공유하기를 원하는 소비자와 업체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수입차의 계속되는 신차 발표 또한 판매증가의 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특히 일부 업계에서 한국 시장을 ‘테스트 마켓’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온라인과 스마트 시장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 성향과 빠른 반응이 아시아 소비자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다는 공식에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BMW 전시장에서 고객들이 차량을 둘러보고 있다.


토마스 우르바흐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사장은 지난 4월 10일 벤츠 B클래스 발표회에서 “한국은 5년 만에 벤츠 판매량이 4배로 늘어난 시장”이라며 “특히 지난해 한국은 전 세계 15대 시장 중 하나였으며, E클래스 S클래스가 가장 많이 판매된 톱5 중 하나였다”며 한국시장의 흡인력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차량 구매와 정보에 대한 공유가 빠르게 일어났고, 판매량 또한 4배나 급증하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는 시장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 수입자동차업계 관계자 역시 “한국 소비자의 피드백이 빨라 더욱 주목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시장을 바라보는 수입차 업체들의 시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며 “한국 소비자층을 공략함으로써 아시아시장 안착을 가늠해보려는 본사 차원의 의지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한국 소비자의 반응을 보는 것 또한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하나의 흐름”이라며 “작은 나라지만 IT강국에 인터넷이 발달돼 있어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공유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고 피드백이 금방 오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닛산측은 최근 자동차 시장에 불고 있는 가장 큰 변화와 관련, “소비자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원하고 표현할 수 있는 모델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사 큐브와 같이 합리적인 가격과 상품성, 그리고 자신의 개성이 깃든 모델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규어 역시 “‘재규어 랜드로버’ 같은 개성 있는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특유의 독특한 브랜드 성향이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국내 고객의 반응을 계속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퍼카 업체들 또한 현대·기아차와 같은 회사를 바탕으로 매우 탄탄하고 견고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매우 잠재력 있는 틈새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다. 람보르기니의 경우 지난해 말, 전시장을 대치동으로 새롭게 확장 이전하는 등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한국의 수퍼카 시장을 넓히겠다는 구상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업계, 올해 판매목표 최대 2배까지 늘려잡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수입차 판매량 추이 역시 눈에 띈다. 올해 각 수입 업체들 대부분이 2012년 보다는 판매량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토요타의 경우 최대 2배의 성장을 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해 BMW는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2011년 한 해 동안 BMW 2만3293대, MINI 4282대를 판매해 전년대비 각각 38.7%와 92.9% 증가했으며, BMW 전체로는 총 45% 신장한 2만7602대(롤스로이스 27대 포함)가 판매됐다. 국내 수입차 업체 중 최초로 2만 대를 넘어섰으며, 지난 3월에는 3447대를 판매해 월간 최대 판매량을 돌파했다. 올해 목표는 3만 3000대다.

지난해 1만2436대를 판매한 폴크스바겐은 올해 3월 3681대의 판매를 기록했으며, 상반기에는 ‘스포츠 쿠페 시로코 R-Line’, ‘골프 카브리올레’, ‘티구안 R-Line’, ‘신형 CC’뿐 아니라 하반기 국내에 선보일 ‘신형 파사트’ 모델까지 더해 작년 대비 10~20% 정도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우디는 지난해보다 50% 성장한 1만 5000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1~3월까지 3404대를 판매한 아우디는 판매 목표 달성을 위해 4월 초에 출시한 ‘R8 GT 스파이더’를 비롯해 ‘S6’, ‘S7’, ‘S8’, ‘RS5’ 등 고성능 프레스티지 모델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도요타는 올해 판매목표로 2만대를 예상했다. 지난해 실적의 2배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회사측은 “연초부터 ‘뉴캠리’, ‘프리우스’, ‘뉴 제너레이션GS’ 등 연속적인 신차 출시와 함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국내 소비자를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의 경우 2012년 판매량은 닛산 5500대, 인피니티 2500대 총 8000대의 판매를 예상하며 지난해 대비 다른 업체와 마찬가지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벤츠의 경우 올해는 작년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혼다와 재규어 랜드로버는 내부 사정으로 인해 올해 목표 판매 대수를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아직 국내 시장에서 틈새 시장으로 노리고 있는 수퍼카 람보르기니 또한 2010년 대비 지난해 2배 이상 성장했으며, 올해에도 전년 대비 50% 이상의 성장을 점쳤다.

한미 FTA는 수입차 업계 ‘빅 찬스’

지난 13일 국토해양부가 밝힌 한·미 FTA 발표 전후 일평균 자동차 등록현황을 보면 국산차는 11% 감소(6581대→5827대)한 반면, 수입차 신규 등록은 54% 늘었다.(466대→719대) 한·미 FTA 발효에 따른 가격인하 및 국내 신차 모델 출시 기대로 새 차 구매를 미뤘기 때문이라는 게 국토부 분석이다.

지난 3월 15일 한·미 FTA 발효로 미국에서 들어오는 자동차에 붙는 관세가 기존 8%에서 4%로 인하되고, 국내 판매되는 2000cc이상 모든 차에 대한 개별소비세도 10%에서 8%로 낮아졌다. 판매가 하락은 취득세, 등록세, 공채매입가에도 영향을 미쳐 소비자 체감 인하폭은 더 크다.

수입차 업체들도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폴크스바겐은 가격적인 혜택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한·EU FTA 발효로 가솔린 수입 시 미국뿐 아니라 유럽 표준도 인정돼 소비자 선택폭이 다양해질 것이란 기대다. “구체적인 가격 언급은 시기상조”라는 폴크스바겐은 FTA 발효로 국산차의 해외시장 점유율 또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작년 7월 한·EU FTA 때처럼 한·미 FTA에 따른 개별소비세 인하분을 반영, ‘레인지로버 이보크 Si4’를 뺀 모든 재규어 랜드로버 라인업에 1.2~1.7% 가격을 낮췄다. 포드는 포드와 링컨 2012년형 전 모델 가격을 최대 525만원 인하하고, 부품가격도 소비자가 기준 평균 20% 내렸다.

아우디도 한·EU FTA 발효에 따라 모델 별로 50만~370만원을, 한·미FTA 이후 100만~370만원 정도 가격을 낮췄다. 판매가 증가세이기는 하지만, FTA에 따른 것으로 특정하기는 어렵다는 아우디는 수입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점은 인정했다.

혼다 역시 배기량 2000cc이상인 차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가 기존 10%에서 8%로 인하되는 것과 관련해 어코드 2.4 모델이 60만원, 3.5 모델이 70만원 인하됐다고 밝혔다.

닛산은 한미 FTA의 경우, 관세 면제만 아니라 부품 등의 수급 비율도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과 독일 업체들은 미국 내 생산 차량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기대하고 있다.

이효정 기자 h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