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스마트 선박이 국내 조선업계 퀀텀점프(비약적인 성장이나 발전)의 기회인 것은 확실하다. 불황의 시대 밀려오는 경쟁의 파고를 넘기 위해선 새로운 성장 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율운항선박 기술 수준은 유럽이나 일본 등 해외 경쟁국에 비해 다소 뒤쳐진 상황이다. 경쟁국에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선박 생산공장으로 전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기업의 기술력 확보를 위한 노력은 물론 정부의 속도감 있는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율운항선박 주도권 잡아라… 치열한 별들의 전쟁 

현재 스마트 선박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곳은 명실상부 유럽이다. 유럽은 2012년부터 3년간 선박의 자율운항을 위한 MUNIN(Maritime Unmanned Navigation through Intelligence in Networks) 프로젝트에 총 380만유로, 한화 53억원의 예산을 투자하는 등 가장 앞서 기술을 선도해오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각국별 또는 국가 간 연구기관, 대학, 기업, 해군사관학교 관련 기관 등의 폭넓은 협력과 국가적 지원 하에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목적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으며 덕분에 기술 개발속도도 가장 빠르다. 영국 롤스로이스(Rolls-Royce)와 노르웨이 콩스베르그(Kongsberg)가 대표적이다. 

특히, 전자 및 해양솔루션 부문에서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가진 콩스베르그는 현재 독자적 플랫폼 개발과 여러 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실선건조 단계에 와 있으며, 롤스로이스의 상선 부문을 인수합병하는 등 기자재부문 사업까지 진출하며  완전무인선박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2017년에는 세계 최대 미네랄 비료 회사 야라와 협력해 세계 최초로 자율운행 전기 선박 개발을 발표한 바 있으며, 2018년에는 노르웨이 윌헬름셀과 세계 최초로 자동운항 해운사 마스터리(Massterly)를 설립하기도 했다. 올 2월에는 야라와 함께 세계 최초 친환경 전기 컨테이너선 비르셸란(Birkeland)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5월까지 시험운항을 마치고 정상운항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아직까지 실행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최초 무인 자율운항선박 상용화의 결실도 유럽에서 맺게 될 전망이다. 영국 프로메어연구소와 IBM은 인공지능 메이플라워 자율운항선박(MAS·Mayflower Autonomous Ship)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테슬라의 자율주행차처럼 선원 없이, 인공지능 선장을 통한 자율주행 선박을 만드는 미래 연구다. 현재 폴란드에서 건조 중에 있으며, 400년 전 메이플라워호가 항해를 나섰던 때에 맞춰 올해 9월 공식 출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MAS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동안 해양 플라스틱 오염도 측정과 해양 포유동물 생태 관찰 그리고 해수면 변화를 모니터링 하는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중국은 2013년부터 정부의 주도 하에 스마트 선박 연구를 본격 추진해왔다. 이어 2015년 ‘중국제조 2025’을 통해 제조업 대국에서 강국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국가 주도 하에 스마트 선박 개발에 나서고 있다. 

2016년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스마트 선박 기술과 관련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스마트 선박 혁신센터가 설립됐으며, 같은 해 6월 중국선급협회와 중국의 하이항(HNA) 그룹이 주관하는 ‘무인 화물선 개발 얼라이언스’를 출범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2017년 12월 중국선박공업(CSSC)은 세계 최초의 스마트 선박인 ‘그레이트 인텔리전스호’를 정식 출항하는 성과를 거뒀다. 해당 선박은 3만9000T급 화물선으로, 자율 학습이 가능한 스마트 운행 및 유지 시스템(SOMS)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첫 무인 자율운항 화물선인 ‘근두운 0호’의 첫 시험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했다. 아울러 세계 최대 면적의 자율운항선박 시험해역도 건설하고 있어, 향후 스마트 선박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국으로 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일본 정부 역시 스마트선박을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2012년부터 조선업계, 해운업계, 기자재업체 등의 연쇄 효과를 고려해 40여개 해당 기관을 참여시키는 ‘스마트 선박 애플리케이션 플랫폼(SAAP)’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선내 네트워크 서비스, 육상과 선박 연결 플랫폼 등을 개발했다. 

조선 산업 부흥을 위한 ‘해사생산성혁명’ 정책을 세우고 2025년까지 250척의 스마트 선박을 일본 내에서 건조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MOL, NYK, 미쓰비시 중공업 등 10개 이상의 해운·조선기업들이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 결과 일본 최대 해운업체인 NYK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선박의 시험운항에 성공하기도 했다. 자동피항 운항시스템 ‘SSR(Sherpa Sysytem for Real ship)’이 적용됐으며, 해당 시스템이 충돌위험과 최적항로 및 경제속력을 산출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기술경쟁력 확보 시급… 보안·제도 등 신뢰성 확보도 숙제” 

국내 조선업계는 활발하게 기술력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자율운항선박의 경우 일본이나 유럽보다 5년가량 늦게 시작해 기술도 뒤처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아울러 선박 건조기술의 경쟁력은 확보하고 있으나 일부 핵심기자재와 기술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기술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조선해양 기자재 산업의 국산화율은 90%이고 해외 의존도는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박 내의 항해관련 전자·IT융합 장비의 외산 의존도는 매우 높은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업계의 부침이 이어지면서 기업 주도의 대규모 설비나 연구개발(R&D) 투자여력도 여의치 않다.   

특허청이 최근 발표한 ‘조선분야 기술특허 트렌드’에 따르면 2000년대 초 조선분야 특허출원이 연간 300여건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2년 3000건을 돌파하고 2014년 3692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현재는 업계불황으로 감소 추세를 겪고 있다.

스마트 선박과 관련해서는 200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5218건의 특허를 출원, 3040건이 등록돼 주요 선진 5개국(미국·유럽·일본·중국·한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중공업의 특허 출원이 가장 많았다.  

문제는 IMO 환경규제관련 특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율운항선박에 대한 특허 출원은 극히 저조하다는 점이다. 또한 특허 등록결정률에서 거절율이 20.5%로 집계돼 일본(21.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의 거절율은 8.8%에 그쳤다. 

아울러 사이버 위협이나 해적 등 범죄행위에 대한 선박 보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사이버 보안은 자율운항선박 실현을 위한 필수 선결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선박 내 선원이 최소화됨에 따라 인적 피해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나 금전적 보상 목적의 선박 탈취 등 위협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돼서다. 

앞서 2017년 6월 말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는 랜섬웨어로 인해 시스템이 마비돼 약 3억달러(약 3400억원)의 피해를 본 바 있으며, 이로 인해 선박에 대한 사이버 위협 우려가 확산됐다. 아울러 세계적인 보험회사인 알리안츠와 특수보험 전문 자회사인 AGCS는 선박에 대한 사이버 공격 위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IMO 역시 2021년까지 사이버 리스크 관리 항목을 선박안전관리시스템에 포함하도록 하고 사이버 보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권고한 바 있다. 

실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전문가들에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율운항선박 도입 시 ‘자율운항 제어 및 유지보수 기술(17.8%)’에 이어 ‘사이버 테러 대비 등 선박 보안체계(13.0%)’에 대한 정책개발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이에 정부가 통합 안전·보안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율운항선박의 상용화에 앞서 전면적인 제도와 법 개정도 시급해 보인다. 항해 및 선박 안전과 같은 큰 틀부터 선박의 접안과 이안 절차와 같은 세부적인 틀은 물론이고, 자율운항선박의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해양사고가 나는 경우 기존의 책임은 대부분 선주나 선원에게 집중됐지만, 자율운항선박은 배를 건조한 조선소와 자율운항시스템 제조사로까지 책임 소재가 커지게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통신 문제, 전문가 양성, 금융지원, 조세지원 등 부분에도 정부가 두 팔 걷고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3사는 매출액 대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R&D 투자와 최근 급감한 특허출원을 회복하고 자율운항선박 등 미래시장을 선도할 장기과제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정부는 조선기자재 업체 육성 방안 마련, 금융정책지원 등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을 뒷받침 해야한다. 그래야만 자율운행선박이 그간 침체돼 있던 국내 해운·조선산업의 재도약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주들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해상에서 통신문제나 보안문제 등으로 화물에 문제가 생긴다는 불안감이 들면 자율운항선박 이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며 “비용부담 등도 걸림돌”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려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신뢰성 확보가 우선돼야 자율운항선박 상용화가 앞당겨 질 것”이라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