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전통 굴뚝산업의 대명사로 불리던 조선업이 5G와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머신러닝 등 4차 산업혁명기술로 무장하며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산업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날로 격화하는 수주경쟁, 매년 높아지는 해양 환경규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ICT기술을 적극 활용한 미래 먹거리 선점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저가 수주로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는 중국에 맞서 스마트 선박이 조선 강국 왕좌를 지킬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자율주행車 이어 배도 자율운항… 스마트 선박 ‘성큼’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조종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다양한 운송 수단이 개발되고 있다. 도로에 자율주행 자동차, 하늘에 무인항공기가 있다면 바다에서는 스마트 선박으로 대표되는 자율운항선박이 있다.

스마트 선박은 AI와 빅데이터 등 ICT를 활용해 효율적인 운항을 돕는 차세대 선박을 말한다. 자동화된 엔진과 선박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시스템을 탑재해 불필요한 각종 비용은 줄이는 대신, 기존 선박보다 뛰어난 안전성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운항 상태나 기관 상태를 원격으로 모니터링 하는 1세대 스마트 선박 개발은 완료한 상태다. 그 결과 고성능 선박에는 정해진 항로를 따라 자동으로 나아가는 기능이 탑재돼있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의 크루즈 기능이나 항공기의 오토파일럿 수준에 불과하다. 단순히 인간이 설정한 항로를 따라 목적지로 나아가는 식이다. 이에 따라 돌발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고 능동적으로 항로를 변경하는 것 역시 어렵다. 당연히 사람이 항상 지켜보며 수시로 설정을 변경해줘야 한다.

그러나 스마트 선박은 선박 내외부에 부착한 카메라와 센서, 라이더, GPS 등을 활용해 24시간 운항에 필요한 빅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가능하다. 이후 AI선장이 데이터를 추합·분석하고 상황을 판단, 의사를 결정한 뒤 최적의 방향으로 선박 전체의 시스템을 제어한다. 통상 한명의 선장이 배를 통솔하는 것과 달리 몇 십, 몇 백 명의 유능한 선장이 배를 지휘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당장 실시간 해상 상태, 날씨, 풍속, 파도 높이 등을 측정해 최단거리를 항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인식을 통해 항로를 변경할 수도 있으며, 선박의 오작동과 고장을 미리 진단하고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자동식별 장치 등을 통해 해상에서 선박 간 충돌 등 사고도 방지할 수 있다.

과학적인 데이터를 활용해 합리적인 대응책을 마련,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재 선박사고의 85%는 사람의 실수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자율운항선박은 수만 개의 다양한 센서를 갖고 있는 만큼 사고 발생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선박의 관리에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 해운 시장은 연료비 등에 대한 부담으로 선박 효율성에 대한 선사들의 요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율운항선박은 인건비 부담이 없어 운영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탑승자가 없으니 주거시설 대신 화물 적재 공간이 늘어 경제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불필요한 항로 생략에 따라 약 20%의 연료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돼 친환경적인 운행도 가능하다. 전기가 주 동력원이라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것도 또 다른 장점이다. 국제해사기구(IMO)가 해양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업계의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韓, 5G·뉴딜로 스마트 선박 기대감… “게임 체인저 기회 삼아야”

코로나19에 따른 인적 의존도 감소로 스마트 선박 시장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자율운항선박은 연평균 12.8% 수준 성장이 점쳐지는 블루오션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2016년 567억5000만달러 였던 세계 자율운항선박 시장은 2025년 1550억1000만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업계에서는 전후방 모든 산업을 포함할 경우 2035년 6조8000억달러, 한화 약 8000조원 규모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의 경우 5G와 한국판 뉴딜 정책에 따라 스마트 선박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 최초 5G 상용시대 개막을 알린 ICT 강국이다. 스마트 선박의 핵심이 5G가 활용되는 ICT인 만큼 관련 이내비게이션 등 관련 인프라 구축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부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따라 자율운항 선박 사용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 점도 K-스마트 선박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총1600억원을 투입해 지능형 항해와 기관 자동화, 육상제어 시스템 등 자율운항 선박의 13개 핵심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25년까지는 IMO에서 정의하는 자율운항선박 자율화등급 3수준(최소 인원으로 운항 원격 제어)수준에 도달한 뒤 2030년에는 레벨4(완전 무인 운항) 자율운항선박을 개발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는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사업 통합사업단’을 발족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세계 자율운항선박 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차지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스마트 선박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산업의 물결에서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해 스마트선박의 기술력 확보는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조선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는 글로벌 시장에서 탑 티어(Top Tier)급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 및 자국 수주로 인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실제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국가별 수주량을 보면 중국이 351만CGT(145척·61%)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2위를 기록했지만 118만CGT(37척·21%)에 그쳐 중국과의 격차가 대략 3배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조선사들의 주력 선종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선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는 형국이다. 이에 스마트 선박이야 말로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스마트 선박은 기술력이 핵심인 만큼 비싸더라도 세계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갖춘 국내 조선사가 경쟁력이 있다. 값비싼 명품 소비가 줄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래 조선업 왕좌를 수성하기 위해선 과감한 투자와 강력한 정책 지원을 통해 스마트 선박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