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공장에서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대한전선 초고압케이블. 출처= 대한전선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코로나19의 글로벌 사태 이후 업황이 좋아진 업계가 있다. 바로 전선(電線) 업계다. 오프라인 생산 인프라의 근간이 되는 전선과 관련된 수요는 다른 산업들이 겪는 수요 급감이라는 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오히려 전력운영 인프라 수요 증가에 원자재 가격 하락이라는 호재가 겹쳤다. 이에, 국내 주요 업체들은 현재의 업황을 반영한 각자의 청사진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업계 1·2위 기업에 이어지는 호재 

LS전선은 자사의 가장 큰 경쟁력인 초고압 해저 케이블 해외 수주에 이어 최근에는 풍력·태양광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분야로도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LS전선의 대표적인 해외실적 사례로는 6월 대만에 조성되는 해상풍력단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해저 케이블 납품이다. 이 사업의 규모는 약 5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과 더불어 최근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력 공급 인프라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LS전선은 자사의 기술력을 대만에서 충분히 입증하고 추가 수주를 받는 것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대만에서의 성공은 인접 국가인 베트남과 일본 시장까지도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LS전선의 판단이다. 일련의 비즈니스는 최소 1조원에서 많게는 수조원대의 수익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울러 LS전선은 지난 7월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한국형뉴딜 정책의 일환인 ‘그린뉴딜’의 가장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린뉴딜은 친환경 지향 산업 지원을 통해 일자리와 시장의 추가 수요를 창출하는 경제발전 전략이다. 이에 따라, 태양광·풍력발전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들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LS전선은 그린뉴딜의 추진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부터 이미 해외 태양광 전력공급 시장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5월 LS전선은 국내 최초로 태양광 전용 케이블을 개발해 독일의 시험기관 ‘TUV라인란트’에서 인증을 받았다. 국제 규격에 맞춘 제품 생산으로 해외 수요를 감당하겠다는 의도였다. 공교롭게도 7월 정부의 그린뉴딜 추진의 발표로 LS전선 사업 확장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 LS전선이 개발한 태양광 전용 케이블. 출처= LS전선

그런가하면, 국내 전선업계 2위 업체인 대한전선 역시 최근 대형 해외수주를 통해 오랫동안 이어진 침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지난달 24일 대한전선은 영국 국영 전력회사 ‘내셔널그리드(National Grid)’와 계약금액약 925억원(약 6000만 영국 파운드)인 대형 프로젝트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런던 파워터널 2단계(London Power Tunnels 2, LPT2)’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런던 남서부 도시 윔블던(Wimbledon)에서 남동부 크레이포드(Crayford)까지를 가로지르는 약 32.5km 길이의 지하 터널과 400kV 전력망을 설치하는 공사다. 여기에 투입되는 케이블의 길이는 200km 이상이다. 이는 국내 전선업체가 영국에서 수주한 전력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다. 

영국으로부터의 수주에 앞서 글로벌 전력공급 인프라 수요 증가 등 대내외적 호재에 힘입어 대한전선은 올해 2분기 최고의 실적을 냈다. 지난달 발표된 공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대한전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 800% 늘어난 매출 3783억원, 영업이익 209억원을 기록했다.  

▲ 대한전선-내셔널그리드 LPT2 프로젝트 계약 온라인 화상 서명식. 출처= 대한전선

원자재 가격 ‘안정세’, 호재가 되다  

국내 일련의 호재들을 긍정적으로 받쳐주는 다른 요인이 있으니 바로 전선 원자재 가격의 안정화다. 규모를 막론하고 전선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원자재는 ‘구리(전기동)’다. 올해 상반기 내내 오름세가 나타났던 글로벌 구리 시세는 최근 안정화에 들어갔다. 전 세계 비(非)철금속의 가격이 결정되는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는 지난 4일(현지시간) 전기동 1t이 6454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직전 거래일보다 30달러 하락한 가격이다.  

전기동 가격의 하락은 사실 전선업체들에게 호재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감안해 전선의 수요주체들이 전선의 단가가 하락하는 것을 기다려 발주를 늦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부터 전기동 가격이 하락세에 있었을 때 위와 같은 이유로 LS전선과 대한전선은 나란히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2016년 LS전선은 매출 3조755억원, 영업이익 81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직전 연도 대비 각각 12.4%, 30%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 대한전선의 매출은 11.7%의 감소한 1조3470억원을 기록했다. 

▲ 국제 구리가격 거래 추이. 출처= 네이버/LME

그러나 현재는 전력 공급 인프라와 전선의 수요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곧 생산비용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와는 확실하게 다른 상황이다.  

두 기업의 ‘사뭇 다른’ 청사진 

LS전선과 대한전선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대내외 조건에 힘입은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흥미롭게도 업계를 이끄는 두 기업의 목표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LS전선의 경우, 그린뉴딜에 맞춘 친환경 에너지 사업 역량을 키워 수요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LS전선은 태양광·풍력 발전과 관련된 전력 공급 제품의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전선의 청사진들 중 하나에는 ‘매각’이 있다. 대한전선은 과거 무리한 사업 확장의 실패로 누적된 손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5년 사모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PE)에 팔렸다. 이후 대한전선은 과감한 사업정리로 그간의 손해를 만회했고 재정 안전성도 회복했다. 

이에 IMM 프라이빗에쿼티는 수차례에 거쳐 적당한 조건으로 대한전선을 국내 기업에 매각하려는 시도를 했다. IMM 프라이빗에쿼티의 입장에서 대한전선의 매각은 투자 수익성 추구라는 사모펀드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며 동시에 대한전선에게는 사모펀드보다는 장기적 안목으로 사업을 이끌어 줄 파트너십의 확보다. 그러나 투자대비 이익률이 2%내비 3%로 높지 않은 전선업계 자체의 특성 때문에 매각은 쉽사리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대한전선 매각설은 국내 관련 업계에서 2016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매년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여러 호재들의 영향으로 대한전선의 인수 가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전력 인프라 수요의 꾸준한 증가라는 전선업계의 호재는 앞으로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전선업계를 이끌고 있는 두 기업이 그리고 있는 청사진은 점점 그 밑그림이 명확해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