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미중 갈등을 비롯해 다양한 이슈로 출렁이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전략이 업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최강자의 입지를 확보한 메모리 영역에서는 시장 불확실성을 관통하는 힘있는 공세가 시작됐고,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조심스럽지만 일발역전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다.

▲ 평택캠퍼스. 출처=삼성전자

30조원 이상 투입...P3 공장 착공 초읽기

1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총 30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되는 평택캠퍼스의 P3 공장을 내달 가동한다. P3 공장 건설을 위한 속도전이 시작되며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에 확보된 6개의 공장 부지 중 절반이 가동 중이거나 공사에 들어가게 됐다.

P1은 2017년 하반기부터 가동이 시작됐고 P2는 올해 가동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상반기 14조7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는 단일 규모로는 최대인 P3 공장을 준비하며 초기술 격차를 더욱 벌린다는 각오다.

P3는 2023년 말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EUV 공정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모두를 생산하는 혼용팹이 될 전망이다. 최종 건축허가 면적은 70만㎡로 예상되며 삼성전자는 P4부터 P6 공장도 순차적으로 건설한다는 방침이다. 관련해 이미 평택시에 공업용수를 추가로 확보해 달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삼성전자 클린룸. 출처=삼성전자

초기술 격차

삼성전자가 반도체 라인 확장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D램과 낸드플래시 현물가격은 정점을 찍고 다시 하락하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경우 하반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이 상당히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될 경우 주로 ‘몸을 사리는 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오히려 초격차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업황 악화가 예상되지만 오히려 막대한 투자를 속도감있게 투입해 시장의 주도권을 강하게 틀어쥐는 방식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7년 하반기 가동한 P1 공장도 당초 계획과 비교해 1년 앞당겼으며, P2 공장 건설에 나서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런 가운데 P3 공장 건설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시키며 일종의 속도전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나 삼성전자 내부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지금이 승부수를 던질 때’라는 판단이 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하락하고 있으나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비대면 트렌드의 강세는 여전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여전히 꾸준하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다면 공격적 투자를 단행할 동기는 충분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52조9700억원, 영업이익 8조15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56조1271억원을 기록한 지난해 2분기보다는 5.63% 감소했으나,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3.48% 늘어났다. 여기서 5조4300억원의 영업이익을 반도체에서 얻은 바 있다. 다만 해당 영업이익의 대부분이 메모리에서 나온 만큼 삼성전자는 지금의 불확실성을 맞아 ‘공격 앞으로’를 외치는 분위기다.

▲ 출처=퀄컴

파운드리, 묘하다

삼성전자는 시스템을 비롯한 파운드리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운드리에 미래가 있다고 판단, 다양한 드라이브를 거는 분위기다.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단행,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를 노린다는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이 발표됐다.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는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을 투자하며 연구개발에 73조원,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입한다. 규모적 측면으로는 ‘역대급’이다. 2030년까지 연평균 11조원의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가 집행되고,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42만명의 간접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고용 인력은 1만5000명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V1 라인을 가동하기도 했다. V1 라인에서 초미세 EUV 공정 기반 7나노부터 혁신적인 GAA(Gate-All-Around) 구조를 적용한 3나노 이하 차세대 파운드리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한다는 각오다. 삼성전자는 V1 라인 가동으로 2020년 말 기준 7나노 이하 제품의 생산 규모가 2019년 대비 약 3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5월에는 평택캠퍼스에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구축한다고 전격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엇박자다.

최근 퀄컴이 삼성전자에 물량을 일부 배정한 것으로 알려진 3세대 5G 모뎀인 스냅드래곤 X60 5G 모뎀-RF 시스템(X60)을 TSMC에 대부분 몰아줬다는 보도가 나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화권 매체를 통해 관련 내용이 거론되는 가운데, 사실이라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퀄컴은 글로벌 모바일 AP 시장의 강자이면서 5G 시장에서는 9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한 절대자다. X60의 물량을 따내는 쪽이 파운드리 측면의 5G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퀄컴이 이 물량을 어디에 줄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갤럭시S20에 자사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탑재를 포기하고 퀄컴 스냅드래곤 865를 지원하는 상황에서 퀄컴의 파운드리 수주를 끌어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중화권 매체들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여전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는 TSMC에 대항할 카드가 하나 사라지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부정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최근 7나노 공정을 포기한 인텔도 삼성전자가 아닌 TSMC에 물량을 밀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역시 중화권 매체를 중심으로 관련 내용이 거론되며 업계에서는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말도 나온다. 

TSMC가 인텔 경쟁사인 AMD의 물량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유일한 미세공정 파운드리 사업자인 삼성전자가 인텔의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최근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한 TSMC가 미국 반도체 업계와 강하게 밀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TSMC는 화웨이와 결별하고 신규 거래를 차단한 후 인텔과 퀄컴같은 미국 기업과의 ‘신밀월’을 꿈꾸고 있다. 이런 가운데 TSMC가 떠난 화웨이가 하반기 출시되는 메이트40을 끝으로 자체 모바일 칩인 기린의 생산을 포기하는 등, 미국이 원하는 중국 압박 효과가 극적으로 터져나오는 중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TSMC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며 중국에 대한 압박기조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누릴 수 있고, TSMC는 미국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더욱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수율이 낮다는 ‘설’까지 나오는 가운데, 그 앞 날에 다소 험난한 미래가 예고된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