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의 신호탄, 아파트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주체할 수 없는 아파트 가격 상승은 궁극적으로 한국의 미래 전망을 암울하게 하기 때문이다. 통일 같은 외적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한국은 가까운 장래 선진국 입구에서 좌초할 수 있다.

한국의 아파트는 근대화의 산물이다. 물론 한국엔 1932년, 일본인이 건설한 충정로 5층 유림아파트도 있었고, 1956년 을지로 4가와 청계천 4가 사이 주교동 230번지의 중앙아파트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파트를 현재 아파트의 뿌리라고 할 수는 없다.

최근 무서운 속도로 전고점을 돌파하는 아파트의 출발은 여의도 시범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1971년, 1,584세가 건설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높이 12층의 국내 최고층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세대마다 냉온수 급수, 스팀난방 시설을 갖췄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1971년에 발표된 여의도 종합 개발계획안에 따라 건설된 첫 번째 작품이었다. 1967년 여름, 김현옥 서울시장은 강변북로 너머 여의도를 개발하면 서울의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발상에서 시작된 아파트였다.

‘아름다운 신시가지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 도로를 포장하고,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건설한 뒤, 서시는 파출소, 쇼핑센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지 가까이에 배치했다. 이후 정부는 국회와 종합병원, 언론사와 금융사를 배치하며, 여의도를 확장했다.

 

한국 사회 중산층의 기준, 아파트

여의도 시범아파트 건설 이후, 한국은 본격 경제발전 단계에 진입했다. 수출 증대에 힘을 쏟은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72∼1976년), 자력 성장구조를 만들고 기술혁신과 능률을 향상시킨 제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77∼1981년)가 이어졌다.

군사정권의 교체가 있었지만, 경제 개발은 계속되었다. 경제 성장의 지속과 사회 발전을 통한 국민 복지 향상을 목표로 제5차 경제 사회 발전 5개년 계획(1982∼1986년)이 추진되었는데, 이 시기 한국은 1983년부터 강남 개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여의도에서 실현한 ‘아름다운 신시가지 건설’을 강남에서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래사장 여의도가 금싸라기 땅이 된 것처럼, 뽕밭 강남도 순식간에 금싸라기로 변했다. 강남 부동산 신화를 부채질한 것은 명문 학교 이전을 통한 학군 프리미엄이었다.

강남의 부동산 신화는 강북으로도 전파되었다. 여의도, 강남의 아파트 건설은 같은 방식으로 강북의 노후화된 주택지를 아파트 단지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런 아파트 열풍은 서울을 넘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춘천 등 전국 각지로 번져나갔다.

일본과 같이 자연재해가 없는 한국은 아파트 건설에 대한 부담도 없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건설 이유를 상상할 수 없는 지역에까지 아파트가 세워지는 특이한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대도시에서 산간벽지에까지 아파트가 건설된 아파트 공화국이다.

 

 

현대 사회에서 맞은 한국의 뒤늦은 근대화

그렇다면 생기는 질문. 왜 한국의 아파트를 근대화의 산물이라고 부를까? 1971년 건설된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한국 아파트의 시초라고 한다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현대 사회의 출발로 삼는 기준에 따라 현대에 건설된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시대 지체 현상 때문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세계는 현대 사회로 진입했지만, 한국은 뒤늦게 근대 사회로 진입했다. 근대 사회의 빼놓을 수 없는 2가지 특징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늦게 경험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근대화는 1945년도 아니고, 1960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50년 6월 25일 6.25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3년간 전국이 폐허로 변했고, 남과 북이 분단된 뒤에도 한국은 체제 안정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1960년 4.19혁명을 통해서 시민혁명을 경험한 한국 사회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세력의 산업화를 통해 산업혁명을 진행했다. 변변한 산업자본이 형성되지 못했던 한국 사회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사유재산을 가진 시민 계급이 등장했다.

1971년에 건설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입주자 주부 70%가 대졸자라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고학력자, 전문직 종사자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1983년 강남 개발과 함께 등장한 아파트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중산층을 상대로 한 주거공간이었다.

1983년 강남 개발과 함께 건설된 아파트에는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는 경제력만이 중요시되었다. 아파트 입주자의 출신지, 경력, 신분 같은 것을 묻는 여론 조사 같은 것은 당연히 없어졌다.

 

초현대 사회로 진입하기 직전의 한국의 아파트

2020년 여름, 한국 사회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유례없는 장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이가 없는 상황은 끝 모를 듯 치솟는 아파트 가격이다. 마치 오락실 두더지 게임처럼, 한 곳을 억제하면, 다른 솟아오르는 기현상 일변도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속에서,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시중 아파트 가격 전망하는 일이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예상은 부동산학이나, 경제학 같은 분야에서 취급할 문제이니, 인간의 생각, 말, 행동을 분석하는 인문학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 시대의 인문학은 아파트 가격 상승 이면에 담긴 한국인의 집착하는 아파트 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추적해내야 한다. 아파트는 다른 나라에서는 전례가 드문 한국형 주거공간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과도하게 집착하는 부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과거 “죽을 때까지 하나 가져가고 싶은 게 있다면 서슴지 않고 한국의 가족제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3,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제도에 대한 부러움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는 이런 대가족 제도를 파괴했다.

1980년에 기준 고시된 85㎡ 국민주택은 부모와 2자녀를 현대 가족으로 명문화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추석과 설에 뵙는 지나간 세대로 한정했고, 아파트 한집에서 살 수 없는 존재로 제외시켰다. 이것이 바로 아파트가 만든 한국인 현대화 정책이다.

줄어든 가족 기준은 다시 늘기 쉽지 않다. 1가족 4식구도 부담스러워서, 1가구 1식구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 아파트 미래는 오피스텔이다. 한국 아파트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될 것이다. 아파트를 부수지 않으면, 한국은 선진국 입구에서 고꾸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