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배와 얼마 전 통화를 했는데 코로나 시대의 많은 불편이 묻어있었습니다.

마음대로 어디를 못가고, 사람도 못 만나니, 사는 게 정상이 아니라고...

계절이 바뀌어도 진정 기미가 안보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간만 달리면 골인 지점인줄 알았는데,

계속 목표 지점이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랄까요?

이 격리의 시대에 사람들이 잠잠하니 자연은 더 살아나고 있다는데, 동의되시죠?

우리가 자주 가는 인근 산의 길에서 사람이 다니는 길 좌우로 얼마간 떨어져서

온갖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지요.

그런데 길에서 사람들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줄었으니

그들로서는 좀 더 평화로운, 풍요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듯합니다.

그것 말고도 해외 여행지에서 보았을 법한 저녁노을 모습이나 구름 모습 등을

요즘 가끔 서울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 또한 격리 시대의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격리에 지치고, 불편해하는 선배에게 이정도의 선물로는 성이 차지 않겠지요.

문득 은둔과 격리의 선배(?)가 떠올랐습니다.

안네 프랑크!(1929-1945)

과거 국내서 가장 오래된 제지회사에 재직 시,

‘종이 유산을 찾아서’라는 시리즈 광고를 기획했었습니다.

그 첫 광고 모델이 바로 안네 프랑크였습니다.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잘 아시다시피 2차 대전 때 유대인 탄압이 본격화되며,

네덜란드에서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감금생활 같았을 격리된 생활을 했던 13세의 소녀 안네 프랑크가 자신의 일기에 남긴 글입니다. 우리는 당시 광고에서 그녀의 얘기를 헤드라인으로 던져, 어두운 공간에서 불안과 공포 속에 남겼던 그 말을 조명하며,

21세기 밝은 세상에서는 인간이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자유, 평화, 양심 등이 만개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다시 안네의 얘기로 돌아가 봅니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2년여 숨어 살다가 끝내 독일 경찰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습니다. 그 무서운 독가스실로 보내지기 전에 열악한 집단 시설에서

얻은 전염병으로 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노트에

꿈 많았을 소녀가 남기고 소망했던 것들과는 정반대로 펼쳐진 현실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은둔의 시절은 물론이고, 수용소 감금 때까지 함께 했던 가족들!

아버지, 엄마, 언니 등이 그녀의 삶과 기억 속에 아주 깊고도 넓게 자리했음은

그나마 얼마나 큰 위안이었을까요.

요즘 격리의 시대에 가까이 있는 가족의 의미에 단서를 주는 것 같습니다.

가족과 오래 함께 함에 의미와 재미를 찾으시라고 선배에게 얘기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