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지킬 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골룸. 이들 캐릭터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두 얼굴’이다. 한없이 선하고 친절한 얼굴 뒤에 숨긴 악한 성격의 ‘이중성’이다. 기업들에서도 상반된 두 개의 얼굴을 보이는 곳이 있다. 세계 1위 조선소를 가진 현대중공업그룹의 최근 행보가 그렇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수재민을 돕기 위해 10억원을 기탁하기로 했다. 피해지역의 신속한 복구를 위해 굴삭기 등 구호장비와 인력 지원도 약속했다. 코로나19로 주력사업인 조선업 부침이 이어지는 가운데 행한 통큰 선행이다. 그룹은 올 들어 그룹사 임직원의 급여 1%를 기부하는 ‘현대중공업그룹 1%나눔재단’을 출범하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런 ‘착한 회사’ 현대중공업그룹의 주력계열사 현대중공업이 잇따른 ‘하청 갑질’로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달 2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여 년간 함께해온 하도급 업체의 기술을 유용한 뒤 거래를 끊는 등 갑질을 벌인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함께 9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기술유용에 따른 처분 중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하도급 업체 삼영기계에 피스톤 관련 기술 자료를 달라고 요구한 후 이 기술을 삼영기계의 경쟁사에게 넘겼다. 경쟁사가 개발을 완료하자 현대중공업은 삼영기계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현대중공업에 의존했던 삼영기계는 압박을 견디지 못해 3개월간 단가를 11%나 낮췄다. 그런데도 현대중공업은 2017년부터 삼영기계와의 거래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이로 인해 삼영기계는 2016년부터 매출 234억원, 영업손실 18억원으로 적자 전환했으며 2017년 -42억원,  2018년 -39억원, 2019년 -46억원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엔진용 피스톤 분야에서 세계 3대 업체로 평가받던 강소기업 삼영기계는 지금까지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에도 수년간 하청업체에 단가 인하를 강요하고 하도급 대금을 미리 알려 주지 않는 등 각종 하도급법을 위반한 혐의로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그야말로 ‘두 얼굴’이다. 앞에선 상생과 나눔을 외쳤지만 뒤에선 협력사 쥐어짜기에 앞장선 셈이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과징금 부과에 대해 처분이 과하다며 행정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공정위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조선업의 특수성 및 환경이 고려되지 않았고 일부 사안에 대해 입장 차가 있다는 게 현대중공업의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부과받은 과징금에 대해서도 불복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반성하며 자숙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처분이 과하다며 반발하며 적극 대처하는 모습은 세계 1위 조선소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윤리경영을 중요한 경영가치로 삼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윤리경영에는 협력사와의 공정거래도 포함된다. 실제 현대중공업그룹이 2005년 선포한 윤리헌장에는 ‘정당한 경쟁과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을 통해 밝고 건전한 기업문화 조성에 전력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기도 하다. 아울러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그룹사내 하도급 거래 리스크 실태를 점검하는 부서만 6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터진 하도급 갑질 문제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윤리경영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행보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회사 운영이 그렇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기업은 이윤추구가 존재 이유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상생의 가치를 중시하는 기업만이 위기 상황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도사리는 요즘 같은 땐 더욱 그렇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세계 1위 품질을 넘어서는 품격을 갖추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