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에서 두 번째 송광익 작가, 맨 오른쪽이 통인화랑 이계선 관장<사진제공=통인화랑>

송광익 작가에게 재료는 한낱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머물지 않는다. 작업에 대한 방향과 계획이 결정되면 의식과 몸은 하나가 되어 몰입하게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행위 가운데 온전히 있을 때 작가의 삶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존재는 드러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가 화면에 맺히고 서린다. 그것은 시간의 흔적을 거두어 내고 만나는 고고학적 사건이 아니라 몸이 만나는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이다.

한지를 만지는 그의 손은, 그의 몸은, 그를 둘러싼 세계와 함께 사유한다. 메를로 퐁티가 말하듯 그의 몸이 깨어날 때, 연결된 몸들도, 타자들도 함께 깨어난다. 그들은 나라는 장소에 출몰하는 존재요. 그들의 존재는 내가 출몰하는 장소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함께 현존하는 모종의 큰 존재에 출몰한다.

▲ 지물(紙物), 140×110㎝ 한지

퐁티의 이러한 생각처럼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는 나와 동떨어진 대상으로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이미 옮아 와 있고 작가는 자신이 마주한 세계로 옮아 가 있다. 산이, 바람이, 물이 스며있지 않은 나를 생각할 수 없듯이 내가 스며있지 않은 구름을, 너를, 재료를 생각할 수 없다. 퐁티는 질감, 빛, 색, 깊이가 우리 앞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들이 우리 몸 안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요, 우리 몸이 이것들을 환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송광익(서양화가 송광익,송광익 화백,한지작가 송광익,한지추상화가 송광익,Korean paper Artist SONG KWANG IK,宋光翼,SONG KWANG IK)에게 한지는 단순히 작품을 구성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작가의 삶과 연결되며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데로 들어선다.

▲ 전시전경<사진제공=통인화랑>

메를로 퐁티는 화가를 세계에 자기 몸을 빌려주고 그림을 얻는 자로 정의한다. 이때 예술은 구축이나 조작이 아니라 숨겨진 힘들을 간직한 일상적 시지각 속에서 존재 이전의 비밀을 일깨우는 빛의 목소리 같은 외침이 된다.

실낱같은 시간에 매달려 펼쳐진 화면은 한지와 한지 사이의 공간으로 진동한다. 세워진 한지의 높이가 마련한 깊이는 다양한 울림을 내어준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한지를 세우는 간격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서정적 풍경 너머로 자연으로 있는 삶이 언뜻 어린다.

△글=배태주 미술평론(미학/철학)

△전시=통인옥션갤러리(TONG-IN Auction Gallery Seoul), 4월5~30일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