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76개국에서 판매된 전기자동차들에 탑재된 배터리의 사용량. 출처=SNE리서치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LG화학이 올해 2분기 배터리 사업 흑자 전환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가운데, 상반기 세계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독보적인 성장세가 두드러져 'K-배터리' 파워에 대한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3일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판매된 전기차(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하이브리드카(HEV) 등의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LG화학을 선두로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까지 모두 10위권 내 성적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위축을 발판 삼아 두 자릿수대의 급격한 성장율을 기록, 낭중지추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LG화학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 82.8% 급증한 10.5기가와트시(GWh)로 4위에서 1위로 단숨에 뛰었고, 삼성SDI는 34.9% 증가한 2.6GWh를 기록하며 5위에서 4위로 한 계단 상승했다. 한국 배터리 3사 중 후발 주자로 여겨지는 SK이노베이션도 66.0%의 가파른 증가율로 1.7GWh에 도달, 순위도 9위에서 6위로 세 계단 올라섰다.

이 같은 선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전체적 저성장 흐름이 이어진 와중 나타난 바라, 더욱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2020년 1~6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에너지 총량은 42.6GWh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0%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치만 따지면 20.3%가 쪼그라든 10.1GWh에 그친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전기차 시장들이 수요 위축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2위 CATL과 3위 파나소닉을 비롯해 대다수 중국·일본 배터리 업체들이 이 기간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전통적 배터리 '강자'들로 꼽히는 일본 파나소닉과 중국 CATL이 배터리 사용량 면에서 각각 -31.5%와 -28.1%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 역시 각각 2.6%포인트와 1.6%포인트 떨어졌다.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이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 가운데, 10위권 내에서 한국계 3사를 제외하고 중국 CALB가 유일하게 큰 폭의 증가율을 시현했다. CALB 배터리의 사용량은 1·2위 업체의 10분의 1 수준인 0.8GWh에 불과하지만, 1년 전보다 50%가 넘게 급증했다. 점유율 또한 2019년 기록한 0.9%의 2배인 1.8%로 확대됐다. 배터리 사용량 감소율이 시장 평균보다 낮거나, 또는 배터리 탑재가 급증해 점유율이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국내 배터리 3사의 상반기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합계는 34.6%로, 작년 기록한 15.7%의 2배 이상을 크게 넘어섰다. 또한 지난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들이 2분기 동안 벌어들인 배터리 사업 부문의 매출은 약 5조2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업체들의 입지 강화에는 이들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들의 판매 호조가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은 ▲테슬라 모델 3 ▲르노 조에 ▲아우디 E-트론 EV ▲포르쉐 타이칸 EV, 삼성SDI는 ▲아우디 E-트론 EV ▲폭스바겐 파사트 GTE ▲폭스바겐 e-골프, 그리고 SK이노베이션은 ▲현대 포터2 일렉트릭 ▲기아 소울 부스터 ▲기아 봉고 1T EV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용량. 출처=한화투자증권
테슬라 타고 전성 가도 달리는 LG화학

특히 '테슬라 버프'를 업은 LG화학의 활약이 눈에 띈다. LG화학의 경우, 올해 1분기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선 이후 1~5월 누적치에 이어 상반기 통합 집계에서도 왕좌를 수성한 모습이다. 

2·3위 업체들과의 격차는 배터리 사용량과 시장 점유율 면에서 모두 근소하고 또 1~4월 및 1~5월 때보다 좁혀졌으나, LG화학은 지난 2분기 국내 배터리 3사 중 처음으로 배터리 사업의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등 올해 들어 고무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다.

LG화학의 파죽지세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공급사가 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LG화학은 올해 2월 테슬라의 중국 시장 겨냥용 전기차인 '모델 3'에 배터리를 독점적으로 공급한 바 있으며, 이를 기점으로 경쟁사 파나소닉의 시장 입지를 제한하는 등 배터리업계의 강력한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심지어 테슬라의 중국 공장인 상하이 기가팩토리에는 테슬라의 전통적 파트너로 알려진 파나소닉을 제치고 압도적인 양의 배터리를 납품하면서, 최대 공급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달 21일 중국 시장 조사 기관 가오궁산업연구원(GGII)에 따르면, LG화학이 상반기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되는 모델 3에 납품한 배터리는 총 250만3000킬로와트시(kWh)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파나소닉이 동일 차종에 공급한 25만4000kWh 용량의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LG화학이 충북 청주에 있는 오창 공장의 원통형 배터리 생산 라인을 일부 테슬라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테슬라의 배터리 주문량이 LG화학 중국 난징 공장의 캐파(생산능력)를 초과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LG화학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해당 공장의 경우 생산라인 변환이 용이해 언제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하반기 배터리전, 더 치열해진다

6월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전월 대비 47% 성장하면서 빠른 수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유럽 시장이 급반등세를 나타낸 것을 시작으로, 중국과 미국 등 시장들에서도 점진적으로 수요 회복이 이뤄지면서 한국 배터리 3사가 더 큰 성장 국면을 맞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준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 경우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 된 지난 4월 이후 두 달 만에 성장세로 돌아섰고, BEV 및 PHEV 판매량이 지난해 6월보다 각각 35%와 170% 급증했다"며 "이에 따라 유럽 시장 비중이 높은 국내 배터리 3사가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 중 유일하게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라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우호적인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 여건으로 인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출하량 증가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하반기에는 테슬라를 중심으로 '글로벌 배터리전'이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테슬라의 선언이 배터리업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월 23일(현지시간)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현재 40%에 달하는 중국산 부품의 비중을 8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형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3의 배터리 납품사들이 CATL 등 현지 업체들 위주로 교체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모델 3의 경우 판매 뿐 아니라 제작까지 현지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코로나19발 침체 와중에도 선풍적 인기를 구가, 배터리업계 판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장기적으로 원가 절감 및 중국 정부와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 등을 계산해, CATL을 모델 3의 주 공급사로 선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와 더불어 CATL은 테슬라에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 공급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소닉 또한 업계 1인자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테슬라 공략에 나서는 모습이다. 파나소닉은 이른바 '테슬라 맞춤형' 차세대 배터리 비전을 발표했다.

지난달 31일 업계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납품하는 21700(지름 21mm·길이 70mm) 원통형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20% 높이고, 코발트가 들어가지 않는 배터리를 2년 내 상용화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후자가 테슬라를 의식해 내놓은 개발 비전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머스크 테슬라 CEO는 거듭 코발트 비중을 낮추겠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또 테슬라는 '2019년 임팩트 보고서'에서도 "코발트 사용을 줄이고 니켈의 함량을 높인 양극재를 도입하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코발트의 완전한 제거가 목표"라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