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격랑속으로 휘말리고 있다. 종합반도체(IDM)의 대명사 인텔이 7나노 공정 로드맵 연기 및 외주화를 시사한 가운데 중국 대신 미국을 택한 파운드리 최강자 TSMC가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자이자 인텔과 함께 IDM의 자존심으로 활동하며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비상을 꿈꾸고 있는 삼성전자의 길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출처=갈무리

제국의 황혼, 인텔

오랫동안 글로벌 반도체 제국의 황제로 군림하던 인텔이 주춤하고 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CEO의 뒤를 이어 로버트 스완 인텔 CEO 시대를 맞았지만 내외부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외부로는 후발주자들의 공세가 거세다. AMD가 대표적이다. 2014년 리사 수 CEO가 부임한 후 AMD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2017년 AMD는 라이젠 시리즈를 출시하며 인텔이 활동하는 CPU 시장을 정조준했다. 최근에는 최대 64개의 코어와 최대 대역폭을 갖춘 기업용 ‘라이젠 스레드리퍼 PRO(Ryzen Threadripper PRO)’ 프로세서 라인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인텔의 매출 중 약 30%가 중국에서 나오는 가운데, 최근 미국과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을 계기로 충돌하자 위기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5G 아이폰 정국에서 애플과 인텔의 밀월이 깨지는 한편, 애플이 아예 자체 칩을 맥에 탑재하겠다고 밝히며 인텔과 결별한 것도 악재다.

내부도 흔들리고 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가 퇴임한 후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던 조직은 최근 인텔 CPU 설계의 핵심 리더인 짐 켈러의 퇴사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마주했기 때문이다.

인텔은 최근 시장 주도권 경쟁에서도 밀릴 수 있다는 위기와도 직면했다. 23일(현지시간) 2분기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주당 순익 1.23달러를 기록해 시장 예상치 1.11달러를 상회했으며 매출도 197억3000만달러로 예상치 185억5000만달러를 웃돌았으나, AMD를 따라잡기 위해 생산하려던 7나노 차세대 반도체 생산이 6개월 연기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작을 외주로 돌린다는 점을 시사하며 파문이 일었다.

물론 인텔의 기초체력은 아직 튼튼하며,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적 진보를 통해 의미있는 성과를 내는 중이다. 그러나 7나노 반도체 생산을 외주로 돌린다는 점에서 IDM 인텔의 아성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 출처=TSMC

삼성전자냐, TSMC냐

현재 인텔이 원하는 7나노 반도체는 GPU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7나노 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 업체는 업계 1, 2위인 TSMC와 삼성전자다. 둘 중 하나가 인텔의 선택을 받을 전망이다.

최초 업계에서는 인텔이 삼성전자의 손을 잡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미 TSMC가 인텔의 경쟁사인 AMD의 7나노 반도체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에, 인텔이 경쟁사의 물량을 소화하고 있는 TSMC를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일부 외신이 27일(현지시간) “인텔이 TSMC에 6나노 반도체 관련 위탁 생산을 의뢰했다”고 보도해 업계가 다시 출렁이고 있다.

최근 TSMC가 미국 공장 건설에 나서는 장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1위 사업자로 활동하며 미국에 공장까지 증설하며 현지 반도체 업계와의 스킨십을 강하게 키웠고, 무엇보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오랜 동맹이던 화웨이를 등지고 미국 기업을 택하는 순간 트럼프 행정부의 호감도도 높아졌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 기업 인텔과의 협력에 한 발 다가섰다는 분석이다.

사실이라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뼈 아픈 순간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략에 있어 철저하게 ‘탈 아시아, 자체 제작’ 기조를 보이고 있다. 화웨이에 대한 압박도 그 연장선에 있는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 자국에 반도체 생산거점이 있어야 한다는 정책을 강하게 끌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기조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반도체 공급망이 붕괴된 후 더욱 심해졌다.

삼성전자는 이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최근 미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을 증설하는 카드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텍사트 오스틴 공장에 11나노·14나노 공정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호적인 환경만 조성되면 시설 확충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인텔이 TSMC로 기울면 관련 로드맵은 모두 올스톱될 전망이다. 인텔의 물량을 받아 TSMC가 주도하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일발역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크게 꺾일 수 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에도 경고등이 들어올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단행,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를 노린다는 계획인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에서 의미있는 행보를 보이겠다는 각오다.

계획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영역 연구개발에 73조원,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입한다. 여기에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전략도 포함됐다. 국내 중소 팹리스 고객들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개발기간도 단축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IP, 아날로그 IP, 시큐리티(Security) IP 등 삼성전자가 개발한 IP를 지원하며 삼성전자가 개발한 설계 및 불량 분석 툴(Tool) 및 소프트웨어 등도 제공한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인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국내 중소 팹리스업체는 지금까지 수준 높은 파운드리 서비스를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어려움에 착안, 반도체 위탁생산 물량 기준도 완화해, 국내 중소 팹리스업체의 소량제품 생산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구체적인 액션플랜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올해 초 V1 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한 점에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전자는 V1 라인에서 초미세 EUV 공정 기반 7나노부터 혁신적인 GAA(Gate-All-Around) 구조를 적용한 3나노 이하 차세대 파운드리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V1 라인 가동으로 2020년 말 기준 7나노 이하 제품의 생산 규모가 2019년 대비 약 3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 평택캠퍼스에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확충하는 전략도 발표됐다.

여세를 몰아 인텔의 파운드리 파트너로 올라설 경우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또 한 번 날아오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36억78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 18.8%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51.5%의 점유율의 절대강자 TSMC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그 격차는 1분기 대비 좁혀진 바 있다. 그러나 인텔이 TSMC의 손을 잡는 순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력은 크게 휘청일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큰 흐름

인텔이 제작의 외주화를 선언하는 한편, 파운드리의 TSMC가 탄탄대로를 걷자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계에도 선택과 집중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IDM만으로 시대를 선도하기 어려운 가운데 TSMC와 같은 파운드리 하나에 집중한 기업이 ‘대세’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TSMC는 올해 상반기 약 10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같은 기간 9조42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삼성전자 DS부문을 누르기도 했다. 최근 엔비디아가 인텔의 시가총액을 한 순간 뛰어넘으며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다만 최근 인텔과 TSMC의 행보만으로 앞으로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두고 ‘선택과 집중의 시대가 올 것’이라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생태계를 강하게 틀어쥐면서 IDM 전략을 힘있게 추구하는 것이 ‘정도’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며 전체적인 체력을 키우고 있다. 슈퍼 사이클은 종료됐으나 지난 2분기(4~6월) D램 평균판매단가(ASP)가 약 10% 올라가는 등 여전히 메모리 반도체는 ‘약속의 땅’이다. 낸드플래시 빗그로스도 한 자릿수 초반 감소를 기록했으며 ASP는 한 자릿수 중반으로 상승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이 타진되는 중이다. 파운드리 전략도 전개되면서 설계와 제작 모두 주기에 맞게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팹리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삼성전자가 시장에 진출하는 한편 반도체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과 제작하는 작업 모두 입체적으로 가동하는 전략이 힘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은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수를 하고있을 뿐, IDM 측면으로 볼 때 아직은 삼성전자 반도체가 리스크 관리를 하며 성과를 거둘 여지가 충분하다”면서 “파트너의 상황을 고려해 파운드리 사업부 분할 가능성도 상황에 맞게 택할 수 있는 선택지지만,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