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올해 1월, 홍콩의 의류 재벌인 로팅퐁의 손녀 보니 에비타로가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로 부터 수개월 후 또 다른 한국의 한 의원에서 지방흡입 수술을 받던 30대 여성이 석 달 넘게 깨어나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된 사건이 터졌다. 특히 이 사건은 심폐소생술이 6번이나 시행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매년 수면마취와 관련된 의료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 같은 의료사고는 미용이나 성형수술을 위주로 하는 소규모 개원가에서 주로 발생한다. 하지만 최신 의료장비와 시설을 갖춘 종합병원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수의 병원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없이 수면마취제를 사용했다가 의료사고를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흔히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는 수면마취 관련 의료사고는 빙산의 일각이다"면서 “현장에서 현금으로 병원과 환자가 합의를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료사고는 통계에 나온 수치보다 더 빈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면마취제 삼총사 '미다졸람' '케타민' '프로포폴'

흔히 대표적인 수면마취제로 미다졸람, 케타민, 프로포폴 등이 거론된다. 이들 수면마취제는 각기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어느 약물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환자 상태나 수술 종류에 따라 사용할 약물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미다졸람은 수면내시경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물이다. 약 투여 후 5~7분이 지나면 진정·근육 이완 효과가 나타나고 시술 후 기억이 소실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마취에서 깨어난 뒤 숙취처럼 두통, 어지러움, 구토 등의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로 인해 수면내시경 후에는 운전이나 과도한 운동을 삼가하라고 권한다.

또 미다졸람을 과다 투여할 경우 혈압 강하나 호흡 억제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미다졸람의 지속 시간이 짧은 탓에 수술 중 과다투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다만 미다졸람은 다른 수면마취제와 다르게 마취를 깨울 수 있는 약(플루마제닐)이 존재한다.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 시 플루마제닐을 사용하면 심각한 의료사고를 막을 수 있다.

케타민은 뛰어난 진통효과를 가지고 있어 통증이 심한 수술 환자에게 사용된다. 이와 달리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은 통증까지 차단하진 않는다. 약물이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탓에 통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케타민은 남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부작용으로 환각, 망상, 악몽 등 기분 나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뛰어난 진통효과에도 환자들이 케타민 사용을 꺼리는 이유다.

일명 '우유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은 수면에 이르는 반응 시간이 1~2분으로 짧다. 회복도 빨라 수면내시경이나 간단한 시술, 성형수술 등에 주로 쓰인다.

특히 프로포폴은 두통, 어지럼증, 악몽 등 다른 수면마취제에서 발생하는 후유증이 전혀 없다. 오히려 숙면을 취한 듯이 머리가 맑아진다. 이 같은 효과를 노리고 프로포폴을 찾는 환자가 많아 중독성 논란이 제기된다.

프로포폴의 최대 단점은 강력한 호흡 억제력이다. 오남용할 경우 일시적으로 호흡이 멈추거나 저혈압 등 합병증이 발생한다. 심한 경우에는 호흡 정지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세계적 팝스타 마이클 잭슨도 프로포폴 오남용으로 사망했다.

대부분의 수면마취 사고와 연관된 약물은 프로포폴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프로포폴 사용 시 주의사항에서 마취과 전문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17년 식약처가 작성한 ‘프로포폴 단일제(주사제) 허가사항 변경지시 안내’에는 ▲마취과에서 수련받은 사람에 의해 투여 ▲환자의 기도유지를 위한 장치, 인공호흡, 산소공급을 위한 시설과 즉각적인 심혈관계 소생술의 실시가 가능한 시설이 준비 ▲진단자나 수술시행자에 의해 투여돼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 미다졸람과 프로포폴 비교, 출처=장림한서병원

마취 전문 인력만 있어도 충분히 사고 예방

대다수의 전문가는 마취 전문 인력 확보만으로도 심각한 의료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국내 병·의원에서는 마취과 전문의 없이 수면마취 시술이 왕왕 벌어지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마취 전문 인력 확보에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은 병원에서 수면마취 관련 의료사고가 지속적으로 터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발생한 수면마취사고 39건 중 36건이 비마취전문의인 시술의사가 직접 마취제를 주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39건 중 30명이 사망으로 이어졌고 수면마취제의 과용량 주사로 인한 기도폐쇄 혹은 호흡부전이 24건으로 가장 많았다.

마취과 전문의의 업무는 환자에게 마취제를 투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마취 전 환자의 병력과 약물 알레르기, 체질적 특성을 파악해 마취제의 용량을 조절하고 약제를 바꾼다. 마취 후에도 환자에게 위급사항이 발생 시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역할을 맡는다. 체온, 혈압, 산소포화도, 호흡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상황 발생시 즉각적으로 대처한다.

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마취 관련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마취과 전문의나 마취 전담 간호사가 없기 때문이다"면서 "수술하는 의사가 수술 보조만 두고 집도하다가 환자 마취 상태를 확인하는 모니터링에 소홀할 경우 과다투여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취 전문 인력 없이 수술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면서 "마취 관련 사고를 방지하려면 반드시 마취 전문 인력이 옆에 붙어서 환자 상태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경우 적격한 시설과 장비, 전문 인력을 갖춘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서만 장시간 마취를 요하는 수술을 시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마취 관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마취과 전문의 상주를 장려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모범 방역 국가로 꼽히며 K메디컬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면서 "하지만 수면 마취에 대한 엄격한 관리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면서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 의료 한류의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도 국가가 국민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엄격한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