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 26일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카드를 꺼냈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한 인수 의지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노딜에 대비한 명분쌓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사실상 파탄난 가운데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도 난기류에 빠지며 항공업계의 혼란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 출처=아시아나항공

"실사 다시 하자"
정몽규 HDC그룹 회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25일 전격 회동한 후 HDC현산은 26일 아시아나항공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채권단이 인수조건 재협의라는 카드를 꺼낸 상태에서 나온 HDC현산의 '대답'인 셈이다.

HDC현산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7월 14일 발송한 공문과 관련해 계약상 진술 및 보장이 중요한 면에서 진실, 정확하지 않고 명백한 확약 위반 등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회신하고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컨소시엄의 인수상황 재점검 요청에 속히 응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가까운 시일 내로 인수상황 재점검 절차에 착수하기 위해 내달 중순부터 12주 정도 동안 아시아나항공 및 자회사들의 재실사에 나설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계약의 기준이 되는 2019년 반기 재무제표 대비 부채와 차입금이 급증하였고, 당기순손실이 큰 폭으로 증가한 점, 2020년에 들어서서 큰 규모의 추가자금 차입과 영구전환사채 신규발행이 매수인의 사전 동의 없이 진행된 점, 부실 계열회사에 대한 대규모의 자금지원이 실행된 점, 금호티앤아이의 전환사채 상환과 관련하여 계열사에 부담이 전가된 점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지다.

인수상황 재점검 요청사항 중에는 아시아나항공의 2019 회계연도 내부회계 관리제도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부적정인 점, 부채가 2조8000억원 추가 인식되고 1조7000억원 추가차입이 진행되고 있는 점, 영구전환사채의 추가발행으로 매수인의 지배력 약화가 예상되는 점이 포함돼 있고 최근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관련 계열사 부당지원 문제, 계열사 간 저금리 차입금 부당지원 문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투자손실 문제, 포트코리아 런앤히트 사모펀드를 통한 계열사 부당지원 문제 등에 관한 확인 요청이 포함됐다.

HDC현산은 "지난 4월초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정식 공문을 발송하여 재점검이 이뤄져야 할 세부사항들에 대하여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전달했으나 10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충분한 공식적 자료는 물론 기본적인 계약서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계약상 아무런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거래종결일을 지정해 당 컨소시엄에 통보했고, 아시아나항공은 계약해제에 대비한 TFT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주요 언론에서 여러 번 보도됐으며,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 어떠한 사전 협의가 없었음에도 금호산업이 컨소시엄에 계약해제를 통보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여러 차례 언론 보도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

나아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여러 번 반복된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상황 재점검 요청에도 현재까지 한 번도 응한 바 없이 계약상 근거 없는 일방통행식의 거래종결만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HDC현대산업개발이 조건 재협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인수계약 당시에 제시된 상황과 실제 상황과의 차이에 대한 적절한 재점검이 이루어져서 변화된 상황에 대하여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 정확한 인식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인수조건 재협의의 출발점이 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HDC현산은 공문 발송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의지가 여전하다고 밝혔다. HDC현산은 "향후 계약의 이해당사자 사이의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진정성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 본건 거래가 성공적으로 종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간곡한 입장"이라 밝혔다.

사실상 노딜?
HDC현산의 재실사 카드는 표면적으로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사실상 노딜을 염두에 둔 명분쌓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재실사는 금호산업이 당장 받을 수 없는 조건인데다, 이미 실사의 투명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과의 인수에서 손을 떼기위해 재실사 카드를 빼들었고, 이를 통해 추후 노딜에 대한 책임을 덜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예견된 결과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HDC현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그 해 12월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항공업 전반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각자의 스텝이 꼬였다. 올해 초부터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미온적인 '시그널'을 보내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지난 5월 26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HDC현산에 6월 말까지 인수 의사를 밝혀야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내기 이르렀다.

6월 9일과 10일에는 HDC현산이 채권단에 인수를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한다 밝히자 채권단이 'HDC현산의 진의가 무엇이냐'고 되묻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일 러시아 당국의 합병승인으로 6개국 해외 기업결합 승인이 마무리되자 금호산업은 14일 현산을 대상으로 조속한 인수합병을 촉구했다. 그러나 HDC현산은 26일 재실사 카드를 다시 꺼내며 노딜에 대비한 명분쌓기에 나서는 중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은?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재실사 카드를 곧이 곧대로 받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HDC현산의 주장대로 12주간 재실사를 벌일 경우 최악의 경영난에 빠진 금호산업은 무려 11월까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아무런 액션플랜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HDC현산이 재실사 후 "인수합병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금호산업은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인수합병 불발에 대한 후폭풍도 온전히 받아내야할 처지에 몰린다.

무엇보다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이 너무 나빠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무려 6281%에 달하며, 당장 인수합병이 진행되지 않으면 공중분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화물운송 매출이 늘어나며 2분기 깜짝흑자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아직은 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아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 전반의 업황 악화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금호산업이 재실사 카드를 받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새로운 인수 대상자를 찾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 역시 악화된 경영상황을 고려하면 상황이 녹록치않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이 사실상 파국으로 흐르는 가운데 제3자가 선뜻 인수를 제안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을 분리매각 하는 방안도 제기되지만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합병 불발에서 알 수 있듯이, LCC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의 경우 심지어 자본잠식상태다. 현실성이 낮다. 퇴로가 막힌 아시아나항공이 법정관리와 청산절차로 접어들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나오지만 이 역시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상징성과 덩치를 고려하면 가능성이 희박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의 운전대를 잡는 방안이다. 일종의 국유화 로드맵이다. 그 연장선에서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에 차등감자 요구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의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