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헌조 작가<사진=통인화랑제공>

내 그림의 여백은 비워져 있지만 채워진, 그려진 이미지와 서로 조응하는 다른 모습의 그려진 이미지이다. 나의 드로잉에는 흑연으로 그려진 이미지와, 부조처럼 화면위로 튀어나온 요철(embossment)이 있다. 이 요철은 빛에 의해서 그러데이션(gradation) 음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음영과 흑연으로 그려진 이미지 사이에는 여백이 있다.

이 여백은 마치 동양화에서처럼 비어있지만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대상을 그리고 남겨진 동양화의 여백과는 다르게 나의 드로잉의 여백은 화면 바깥으로 흐르지 않는다. 화면의 중심에 놓여있는 여백은 그려진 이미지와 더불어 사유와 명상의 공간이 된다.

▲ 전시전경<사진=통인화랑제공>

이 여백은 한 줄 한 줄 흑연으로 채워서 그려낸 이미지와 대비되어 함께 있음으로써 이야기를 완성하고 화면 속 긴장과 여운을 자아낸다. 무채색과 무광의 재료로 치밀하게 그려진 이미지는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여백의 공간과 함께 어우러지며 실재(實在)에 대한 생각을 끄집어낸다.

여백의 공간은 또한 정제(精製)와 절제(節制)된 형태의 그려진 이미지와 상응함으로써 보이는 것에 의존하여 비시각적인 것들을 쉽게 간과하는 우리의 인식(認識)에 대하여 의문을 던진다. 허구와 실재의 경계, 비움과 채움과 같은….

△글=정헌조(정헌조 작가,JEONG HEON JO,화가 정헌조) 작가노트

△전시=통인옥션갤러리(TONG-IN Auction Gallery Seoul), 9월21~10월9일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