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이 전방위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코로나19 책임론에 이어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을 맞아 두 슈퍼파워는 서로를 향한 날 선 비판을 쏟아냄과 동시에 기어이 영사관 폐쇄라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다만 두 나라가 말 그대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시대를 맞아 한국만의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 이유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극한충돌의 연속
미국과 중국은 올해 1월 극적인 무역전쟁 휴전을 맞았으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며 다시 대립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양회를 통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며 신경전은 크게 배가됐다. 중국 화웨이와 5G 동맹을 맺었던 유럽 및 호주 등은 일제히 미국의 손을 잡았으며, 중국은 지나친 내정간섭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차이나머니를 살포하며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하던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국제전략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24일(현지시간)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서 중국 관리들이 모두 철수한 가운데 현재 미 관리들이 현장을 접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방 관리들은 영사관의 문을 강제로 열고 내부로 진입했으며 입구에 걸려있던 오성홍기는 내려졌다.

중국도 맞불을 놨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를 시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직원이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미국의 조치에 강대강 대치를 불사한다는 뜻을 밝혔다.

두 나라가 상대국의 영사관을 폐쇄하는 것은 수교 4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치킨 게임
미국은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에 나선 배경을 두고 미국의 지적 재산권과 미국 국민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함이라 밝히고 있다. 실제로 존 울리엇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중국 총영사관에서 도를 넘는 스파이 활동이 이뤄졌다"면서 "폐쇄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아예 브리핑에서 중국을 '중국공산당'(CCP)으로 칭하며 "적대적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 주재 중국 영사관에 숨었던 중국인 군사 연구원이 미국 당국에 체포되는 일도 벌어지며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AP는 24일(현지시간) 샌프란스시코 주재 중국 영사관에 은신해 있던 군사 연구원 탕주안 씨를 체포했으며 그녀가 오는 27일 법정에 출두할 것이라 보도했다.

탕 씨는 지난해 10월 암 치료 연구를 위해 미국에 입국한 민간인으로 알려졌으나, 미 연방수사국은 그녀가 중국군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탕 씨가 중국 인민해방군 제복을 입은 사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탕 씨는 본인이 다니고 있는 학교가 중국군과 관련이 있어 제복을 착용했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미국은 그녀의 존재야 말로 중국이 미국 현지에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증거라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탕 씨가 미 연방수사국의 수사가 진행되자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으로 숨어들었다는 점도 알려지며, 미 연방수사국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 정국,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를 겪으면서 강대강 대치만 이어갔던 것이 아니다. 한 순간이지만 극적인 화해의 장면을 연출할 기회도 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 겸 공산당 중앙외사위원회 판공실 주임이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미국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에서 비공개 회담을 가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책임론이 불거지는 한편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한다 밝힌 후에 벌어진 회담이다. 당장 미국과 중국이 5개월만에 고위급 라인 회담을 가졌다는 점에서 극적인 화해 가능성이 제기됐다.

모건 오타거스 국무부 대변인에 따르면 당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을 대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를 요구하면서도 호혜적인 거래의 필요성을 피력했으며,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제츠 정치국원도 “중국과 미국이 힘을 합치면 이익을 얻고, 싸우면 다친다”며 두 나라의 협력을 강조했다.

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 미 상무부가 자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5G 기술 표준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화해의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지기도 했다. 화웨이의 5G 통신 시장 점유율이 강력한 상황에서 마냥 화웨이를 밀어낼 수 없다는 미국의 판단이 섰기 때문이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기점으로 두 슈퍼파워가 나름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의 희망은 회담 직후 여지없이 무너졌다. 회담 종료와 동시에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G7 외교장관들과 공동으로 홍콩 국가보안법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렸고, 양제츠 정치국원은 “홍콩 국보법을 제정한다는 결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맞섰다. 심지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회담이 열리던 때 이슬람 소수민족 인권 탄압에 책임이 있는 중국 당국자를 제재하는 '2020년 위구르 인권정책 법'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후 전방위적 충돌은 더욱 심해졌다.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을 추진했고, 미국은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했다. 그 연장선에서 두 나라는 상대국을 향한 영사관 폐쇄까지 시사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중이다.

묘한 이면
두 슈퍼파워의 충돌은 치킨게임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으려는' 두 나라의 의지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마지막 보루는 남아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먼저 미국의 경우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에 나섰지만, 72시간의 유예기간을 준 바 있다. 

만약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 미국의 주장대로 지식재산권 탈취의 현장이라면, 휴스턴 총영사와 외교관들이 공항에서 가짜 신분증을 이용해 중국인을 빼돌리려다 발각되는 등 심각한 비위현장이 발각됐다면 즉각 돌입해 폐쇄해야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중국에 시간을 주는 길을 택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 현지의 중국 관리들은 급하게 문서를 폐쇄하고 현장을 정리할 시간을 벌었다.

미국이 굳이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만 폐쇄한 것도 미묘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실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려면 미국 수도에 있는 워싱턴DC의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인이 밀집한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것이 매끄럽다. 그럼에도 미국은 굳이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을 핀셋으로 집어내 폐쇄했다.

일각에서 미국이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하면서도 마지막 보루는 남겨두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CNN은 미국의 총영사관 폐쇄 발언이 나온 직후 "큰 충돌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 분석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를 시사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핀셋 조치에 맞는 수위조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청두 총영사관은 규모 측면에서 중국의 변방을 관할하고 있으며, 현지에는 미국인들이 많이 진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위구르 법안 등과 관련이 있는 신장 지역을 관장한다는 점에서 대의명분도 선다. 결론적으로 중국도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이 시도하는 위구르 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편, 가장 파급효과가 낮은 지역의 총영사관 폐쇄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길은?
미국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으며, 이미 캐나다와 호주 및 유럽을 넘어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미국의 편에 서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한국도 일본처럼 대중국 포위전선에 합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배제를 공개적으로 요청한 미 국무부의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그러나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인 중국의 손을 마냥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 이면의 흐름을 확실하게 포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바로 충돌의 본질이다.

미국과 중국의 총영사관 폐쇄 상황에서도 확인되지만, 두 나라는 '끝까지 가는 치킨게임'까지는 아직 불사하지 않고 있다. 일정정도 내부 정치적 포석이 깔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론에 직면했고,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트런프 대통령의 지지율 격차도 커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불안한 정치적 입지를 타파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부와의 싸움에서 강대강 대치를 천명하고 있으나, 아직은 완벽한 충돌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절대권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지난 양회에서 리커창 총리가 시 주석 바로 앞에서, 시 주석이 인민들과 약속했던 샤오캉 시대의 도래는 아직 멀었다는 직격탄을 날린 장면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의 중국은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려 외부세력인 중국을 치려는 미국과 달리, 일대일로 팽창과 샤오캉 시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미국의 견제로 차단된 가운데 미국의 공격마저 더욱 날카로워지자, 현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과 동일한 수위의 방어전에 나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펼치는 중이다.

시 주석의 중국은 미국을 치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아니나 팽창정책과 샤오캉 시대로 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견제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자 동일한 수위의 받아치기 전략으로 나서며 마지막까지 타결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러한 충돌의 본질을 파악하고, 지금이라도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무대로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 미국과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중국과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취사선택하는 한편 두 나라의 충돌이 완전한 파국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한 상태에서 동남아시아와 손을 잡는 신남방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액션플랜'도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다.

미국과 중국의 '사상검증' 시도가 많아지는 가운데 선택은 빠르게, 계산은 정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