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이코노믹리뷰 DB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배터리 공방전'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미국 주 정부 등까지 확장되는 분위기다. 양사의 배터리를 공급 받거나 공장이 소재한 등 이해관계가 얽힌 주체들을 중심으로 공급체인 확보 및 일자리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이 포착되고 있다.

LG화학 vs SK이노? 이제 포드·폭스바겐·조지아주 vs GM·오하이오주

지난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포드와 독일 폭스바겐은 한국 배터리 업체들 간의 법적 분쟁이 전기차 생산 차질 및 미국의 일자리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전달했다.

양사 모두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를 납품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는 2022년부터 생산되는 포드의 전기 트럭 'F-150'와 같은 해 미국 테네시주에서 가동을 시작하는 폭스바겐의 전기차 공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국내 배터리 3사로 꼽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현재 1년 넘게 배터리 기술 유출 관련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앞서 LG화학은 지난해 4월 미 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 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했고, 올해 2월 ITC는 LG화학의 주장을 인정해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예비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통상적으로 ITC의 최종 판결이 예비 결정을 뒤집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이 이에 불복, 곧바로 이의 신청을 하면서 소송은 현재 재검토 중에 있다. 오는 10월 5일 나오는 최종 판결에서도 ITC가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관련 부품·소재 등은 미국 수출이 금지된다.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 2개를 짓고 있는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패소 리스크가 큰 상황이며, 2개 공장에서 각각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 받기로 한 포드와 폭스바겐 또한 부품 조달이 불안정해질 공산이 크다.

폭스바겐이 ITC에 SK이노베이션이 지적 재산권 등 규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조지아주 공장의 배터리 생산을 허용해야 한다고 요청한 이유다.

포드는 ITC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전기차용) 배터리는 차종에 따라 설계하기 때문에 갑자기 (LG화학 등의) 다른 배터리로 대체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배터리 공급사는 차량 출시 4년 전에 선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배터리 사전 생산 역시 상당량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대신해 포드와 폭스바겐의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까지 맞출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두 완성차 업체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반면, LG화학과 전기차용 배터리 관련 합작사를 건설하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그 생산 기지가 들어설 오하이오주는 LG화학의 편에 가세한 모양새다.

GM은 지난 4월 ITC에 "지적 재산권과 영업 비밀은 철저히 보호돼야 한다"며 LG화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또한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 주지사도 최근 "SK이노베이션의 불공정 경쟁 행위를 제재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최소 11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LG화학의 투자가 보장될 수 없을 것"이라 언급했다.

정치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한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이 '일자리' 이슈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미 행정부가 개입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이 ITC의 결정에 비토(거부권)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9년 12월 "미 행정부는 현지 배터리 공장 수를 늘리고 싶어 한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ITC가 SK이노베이션에 관대한 결정을 내리길 원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ITC가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를 최종 판결하더라도, 미 무역대표부(USTR) 선에서 거부돼 해당 소송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로 경기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관점에서 일자리가 생길 기회를 마다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WSJ는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이 일자리 2000개 이상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ITC는 2013년 삼성이 애플 상대로 제소한 3세대(3G) 이동통신 특허 침해 소송에서 애플의 특허 침해를 인정해 미국 내 수입 금지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가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판단,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있다. 코로나19로 미국 경제가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두 배터리 기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