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컨슈머리포트는 등산화나 변액연금보험 등, 실명거론된 비교평가로 소비자들에게 제품구매의 잣대가 되고있지만 상품비교대상이나 정확성,공정성에 대해 연일 지적을 받고있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K-컨슈머리포트는 단순 상품리뷰보다 한걸음 나아가 상품 비교평가에 목말랐던 소비자들에게 구매 판단의 잣대가 되고 있다. 현재 등산화와 변액보험을 비교하며 두 차례의 보고서를 낸 컨슈머리포트는 구체적인 실명을 거론하며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시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아직 상품 비교대상이나 정확성, 신뢰성에 대해 문제가 많다는 따가운 지적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다만, 컨슈머리포트는 소비자가 기업의 힘에 대응하고 응집된 소비자 파워를 키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 은퇴 후 등산을 시작한 김영식(64)씨 는 등산화 구매를 위해 백화점의 아웃도어 매장을 찾았다. 그는 점원에게 “요즘 컨슈머리포트에서 추천한 제품이 인기라는데 그것 좀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상품명은 기억 못하지만 최근 이슈가 됐던 컨슈머리포트의 등산화에 대한 소문을 자녀에게 전해들은 그는 점원이 들고 온 ‘컨슈머리포트 추천 등산화’를 아내 것까지 함께 선뜻 구매했다. 가족이나 친지의 추천보다 파워가 큰듯 했다.
# 회사원 정영오(44)씨. 그는 요즘 노후자금마련을 위해 든 변액연금보험을 해약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 최근 변액연금보험의 연평균 실효수익률이 지난 10년 동안 평균 물가상승률인 3.19%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컨슈머리포트의 두 번째 보고서 내용이 발표되면서 매달 꼬박꼬박 납입했던 변액연금보험을 지금이라도 당장 해약하는 것이 이득인가 싶어 조만간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컨슈머리포트에 기업들 울고 웃는다
한국형 소비자 보고서인 ‘K-컨슈머리포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3월 22일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이 발표한 K-컨슈머리포트가 상품비교를 시작한 첫 제품인 등산화의 경우, 추천 상품으로 선정된 코오롱스포츠 ‘페더’의 판매량은 평소보다 3.5배 늘었다. 발표 전 열흘 동안(3월9일~18일) 347족이 팔렸지만 보고서가 나간 후 9일 만에 1229족이 팔렸다.

함께 추천 상품으로 뽑힌 블랙야크의 ‘레온’도 판매량이 2.5배 늘었다. K-컨슈머리포트 게시판의 조회수 역시 보고서를 올린 3월21일 직후 하루 3만 명의 접속자가 폭주해 서버가 다운돼 서둘러 서버 용량을 2배로 증설하는 해프닝까지 초래했다. 그로부터 4주가 지난 4월18일 K-컨슈머리포트 1호 조회 수는 6만4700건을 넘어섰다.

코오롱스포츠 마케팅팀 박승화 팀장은 “코오롱스포츠의 등산화가 추천상품으로 선정되면서 등산화 매출은 물론 전체 매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며 “특히 단순 매출뿐 아니라 제품의 이미지 구축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K-컨슈머리포트의 두 번째 보고서인 변액연금보험 비교의 경우는 등산화에 비해 업계 파장이 컸다. 금융소비자연맹에 의뢰해 나온 결과에서 변액보험 10개 중 9개의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사대상 60개 변액연금상품 중 실효수익률이 지난 10년 (2002~2011년) 평균 물가상승률 3.19%를 웃돈 상품은 조사결과 6개에 불과했다. 결과발표 후 생명보험업계는 가입자가 급감하고 해약을 문의하는 민원이 늘며 몸살을 앓았고 보험업계는 운용수익률 산출이 잘못됐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반발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기업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소비자들이 K-컨슈머리포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충남대 소비자정보학과 김영신 교수는 “기존처럼 기업들의 입장에서 상품 및 서비스를 평가하는 정보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보는 정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회사와 브랜드, 그리고 제품명까지 이니셜이 아닌 실명으로 밝혀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를 결정할 때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역시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K-컨슈머리포트, 넘어야할 산 많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폭주하며 ‘K-컨슈머리포트’가 어떤 평가와 분석을 내놓는가에 따라 해당 기업의 매출 및 주가는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존립 자체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평가가 흘러나오고 있다. 관심이 높은 만큼 그 평가 방법에 대한 비판도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먼저 1호 등산화 품질 비교 평가 이후 가장 많이 쏟아진 소비자 의견은 평가 제품 수가 너무 적고 평가 대상의 공정성이 없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한 관계자는 “평가했던 코오롱 스포츠의 ‘페더’, K2의 ‘체이서’는 경등산화이고, 블랙야크의 ‘레온’은 트레킹화며 노스페이스의 ‘니아’와 트렉스타의 ‘블루릿지하이커’는 중등산화로 그 용도가 모두 다른데 일반용 등산화로 묶어 함께 비교를 했다”며 “이는 코란도 자동차와 티코 둘 중 티코가 가벼우니 추천한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2호인 변액보험은 더 큰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생명보험업계는 수익률을 저평가한 리포트의 신뢰를 문제 삼는 한편 조사를 맡은 금융소비자연맹을 고발할 태세다.
무엇보다 아이템 선정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보험상품, 그것도 투자와 보험 기능을 섞은 복잡한 변액보험상품을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 자체가 무리라는 얘기다. 노후 대비용으로 10년 넘게 가입하는 초장기 상품이란 것도 변액보험의 또 다른 특징으로, 가입 시기도 제각각이라 이런 상품은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미국 컨슈머리포트와 비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예를 들어 등산화의 경우, 평가 제품수가 너무 적다는 지적을 하며 미국 컨슈머리포트는 전수조사를 원칙으로 해 해당 품목의 제품을 전체 다 테스트하는 반면 K-컨슈머리포트에서는 K2·코오롱·노스페이스·블랙야크·트렉스타 등 5개 등산화 브랜드를 중심으로 일반용과 둘레길용(用) 제품 총 10개를 시험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참고로 국내 판매되는 등산화는 100가지가 넘는다.

이에 대해 소비자원측은 예산과 인력의 부족을 이유로 든다. 76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컨슈머리포트는 직원 600여명에 연간 시험 예산만 200억이 넘는다. 한해 예산만 수천억원인 미국에 비해 K-컨슈머리포트는 정보 생산에 책정된 올해 예산이 9억7000만 원.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가운데 소비자단체 지원 금액으로 책정된 예산은 2억2000만 원이고 나머지 7억5000만 원은 소비자원 의 자체 예산이다.

김정기 공정위 소비자안전정보과장은 “TV 한 품목을 테스트하는 데만 5억 원가량이 든다”고 말했다. 참고로 K-컨슈머리포트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체 운영을 이끌고 실제 품질 비교 정보 생산은 한국소비자원과 민간 소비자단체들이 맡아서 상품의 비교정도를 내놓고 있다. 소비자단체들이 공정위에 평가 제안서를 내면 심사해 예산을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뗐다. 이젠 기업 주도가 아니라 소비자의 힘이 커지는 시기다. 컨슈머리포트는 소비자가 기업의 힘에 대응하고 응집된 소비자 파워를 키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최원영 기자 uni3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