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은행 '1Q 애자일 랩' 출신인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지난해 5월 자체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상장지수펀드(ETF) 2종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사진은 크래프트 임직원 등이 지난해 7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 증시폐장 타종행사(클로징벨 세레모니)에 참여해 직접 거래소 폐장 벨을 울리고 있는 모습.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는 크래프트 AI ETF상장을 기념하는 태극기가 게양됐다. 출처=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이코노믹리뷰=박창민 기자] 은행권이 인큐베이터로 나서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과 지원에 공(功)을 들인 지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시간이 지나며 은행권의 '손길'을 거친 스타트업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핀테크와 금융혁신을 상징하는 대표 기업들로 성장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핀테크가 온다'…'묻지마 지원' 관행 깨고 '스타트업 육성' 나선 銀

은행권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인큐베이팅 사업에 뛰어든 시점은 2015년이다. 기술금융 실적에만 급급해 '묻지마 지원'이 이뤄지던 관행에서 벗어나 '스타트업 육성'으로 지원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은행권의 이 같은 행보는 '걸어보지 않은 길'인 핀테크 시대를 본격적으로 대비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스타트업 육성으로 핀테크에 대한 이해도와 면역력을 높이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과는 과감히 손을 잡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 2015년 3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당시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서울시 중구 명동 KB국민은행 명동본점에서 'KB핀테크허브(HUB)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KB금융지주

스타트업 육성에 가장 먼저 나선 곳은 KB금융지주다. KB금융주는 2015년 3월 'KB핀테크허브(HUB)센터'를 열며 금융권 최초로 인큐베이팅 사업을 시작했다.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은행도 잇달아 동참했다.

이들은 현재 KB스타터스(KB금융), 신한퓨처스(신한금융), 디노랩(우리금융), 1Q 애자일 랩(하나은행) 등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이들 4곳이 육성한 스타트업 기업 수는 400여개에 달한다. 금융당국이 지정한 혁신 금융서비스를 내놓은 핀테크 기업 43개사 가운데 은행권이 운영하는 핀테크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비율은 70%가 넘는다. 기업가치가 3000억원을 넘어서거나 특정 핀테크 분야 글로벌 1위에 오르는 스타트업들도 나오고 있다. 은행권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 '핀테크 사관학교'로 거듭난 셈이다.

銀 사관학교, '유니콘' 등용문 되다…"銀 투자 유치받으면 추가 유치 쉬워져"

은행권 '핀테크 사관학교' 출신으로 두각을 나타낸 스타트업은 한국신용데이터(캐시노트), 어니스트펀드, 센드버드,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가 대표적이다.

우리금융 '디노랩' 출신인 한국신용데이터는 현재 150조원 규모 시장의 종합경영관리서비스 '캐시노트'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 4월 출시된 캐시노트는 현재 전국 고객사 55만여곳을 확보했다. 전국 카드 가맹좀 3곳 중 1곳은 캐시노트 고객사인 셈이다. 

캐시노트는 자영업자를 위한 매출 관리 서비스로 시작, 카드세금계산서 매입 관리, 재방문 고객관리 등을 기능을 확대하며 종합경영관리서비스로 거듭나고 있다. 이에 힘입어 한국신용데이터는 지난 1월 쿼드자산운용 등으로부터 추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당시 기업가치로 3000억원을 인정받았다.

오는 8월 열리는 마이데이터 시대와 맞물려 캐시노트에 누적되는 전국 자영업자 매출 등의 빅데이터는 활동도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치를 가졌다는 게 스타트업 업계의 설명이다.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는 "앞으로도 마이데이터 인프라 확장에 최선을 다하면서, 캐시노트 서비스 하나로 사업장의 모든 경영 관리업무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캐시노트. 출처=한국신용데이터

신한금융 '신한퓨처스' 출신 중에는 어니스트펀드가 대표적이다. 어니스트펀드는 금융권 최초로 P2P(개인간 거래)투자금 신탁관리 서비스 부문을 개척한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지난 1월 누적 투자금 7400억원을 돌파하며 P2P 금융업계를  최선봉에서 개척해나가는 기업이다.

어니스트펀드는 2015년 신한퓨처스랩 1기 우승맴버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직접 챙기는 스타트업으로 알려졌다. 어니스트펀드는 신한퓨처스랩 참여 당시 신한은행으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P2P금융권 가운데 제1금융권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한 곳은 어니스트펀드가 처음이다. 

이후 신한카드와 '동산담보대출'를 선보이고 투자금을 신한은행에 신탁관리를 맡기는 등 상호 협력 체계를 이어가고 있다.

캐시노트와 어니스트펀드가 국내서 시장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면, 센드버드와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국내보단 해외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핀테크 기업이다.

센드버드는 KB금융 'KB스타터스' 출신이다. 센드버드는 기업 채팅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으로, 현재 전 세계 150개국, 400여개 대기업이 매달 고정비용을 내고 이들 기업의 직원 1억명이 이용하는 글로벌 1위 기업 채팅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센드버드는 2016년 5월 선정된 10번째 KB스타터즈다. KB금융과 함께 국민은행의 차세대 대화형 뱅킹앱(App)인 '리브똑똑'(Liiv TalkTalk)을 개발했다. KB금융과 협업 이후 미국 투자사 샤스타벤처스로부터 170억원의 투자유치를 받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진출했다. 

미국 진출 후 4년도 안되는 기간 약 215억원을 추가로 투자 받았으며, 지난해 5월 미국계 대형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 등으로부터 1억달러(12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받으면서 단숨에 한국계 예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에 이름을 올렸다.

▲ 출처=각사

해외에서 주목받는 '은행권 사관학교 출신' 대표 스타트업으로는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도 있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하나은행 '1Q 애자일 랩' 5기 출신이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인공지능(AI) 기반 상장지수펀드(ETF)를 개발한다. AI 기반 ETF는 펀드매니저 등 인간의 개입없이 100% 딥러닝기반으로 운용되는 금융공학 상품이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가 해외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 사건은 지난해 5월 자체개발한 AI 기반 ETF 2종(QRFT, AMOM)을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이다. AI ETF가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승인돼 미국 거래소에 상장된 최초 사례다. 같은해 7월에는 크래프트 임직원들이 뉴욕증권거래소 증시폐장 타종행사(클로징벨 세레모니)에 참여해 직접 거래소 폐장 벨을 울렸다. '데뷔 1년' 이후 연간 수익률도 AMOM이 16.19%, QRFT가 15.52%를 각각 달성하며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의 이 같은 성장에는 하나은행과 공동개발한 하나은행의 자산관리서비스 '하이(HAI)로보'가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이 서비스는 출시 9개월만에 가입 고객 4만명, 가입 금액 5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가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개발 경험과 데이터를 쌓는 경험을 제공했다.

스타트업 업계 한 관계자는 "초기 스타트업에는 섣불리 나서는 기업이 많지 않아 투자 유치나 고객사를 늘리는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은행권 프로그램에 참여가 확정되거나 더 나아가 은행과의 공동개발 경험,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면 이는 다른 기업들을 고객사로 끌어오거나 투자유치를 받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