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항공(왼쪽)과 이스타항공(오른쪽) 항공기. 출처=각사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인수를 끝내 포기했다. 국내 첫 항공사간 M&A로 주목받으며, 지난해 말 업계 2위로 도약하겠다 선언한지 7개월 여 만이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매각 불발의 결정적 트리거로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이 파산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양사의 법적공방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인수… 장고 끝 포기

23일 제주항공은 지난 3월 2일 이스타홀딩스와 체결한 ‘이스타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한다고 공시했다.

제주항공은 인수 포기 이유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지와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고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큰 것이 사실이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규모의 경제를 내세우며 이스타항공 인수에 나섰던 제주항공은 7개월 여 만에 백기를 들게 됐다. 

지난해 12월 18일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이스타항공 지분 51.17%를 695억원에 매매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맺고 이스타항공 인수에 나선 바 있다. 

이스타항공은 보이콧 저팬과 보잉787 맥스 사태 등으로 이미 지난해 9월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시너지를 낼 경우 제주항공이 대한항공에 이은 업계 빅2 자리를 넘볼 수 있지 않겠냐며 긍정적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졌고 양사 M&A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특히, 경영난에 시달리던 이스타항공의 체불임금과 미지급금 등 지분 취득 선행 조건 충족을 놓고 양사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 양사 대표간 통화내용 녹취록과 간담회 회의록 등을 공개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결국 이달 1일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에 “10일(10영업일) 이내에 선결 조건을 모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스타항공은 직원의 임금 반납 동의, 리스료·정유료 등 감면 협의 등을 통해 미지급금 해소에 나섰지만, 제주항공은 결국 선결조건 이행 마감 시한(15일) 다음날인 16일 “계약 해제 조건이 충족됐다”며 사실상 노딜을 예고했다.

제주항공이 앞서 인수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던 만큼 업계 파장은 큰 상황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 첫 항공사간 결합이라는 점에서 업계 관심도 컸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가 중재까지 나섰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의 지원도 못 받게 되는데 제주항공이 노딜을 선언한 것을 보면 정말 많은 고민이 있지 않았겠냐”고 귀띔했다. 

▲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이스타항공 회생? 청산?… 제주항공과 법적공방 불사하나

제주항공의 매각 하차 선언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영향으로 풀이된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세계 하늘길이 막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스타항공의 재무환경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예상은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사태가 더욱 심각했고, 이에 정부가 중재에 나선 부담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인수를 물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이 결국 파산 수순에 돌입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다. 법정 관리에 돌입하더라도 회생이 아닌 청산으로 무게추가 기우는 분위기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새 인수자를 찾을 가능성이 사실상 0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이스타항공은 이미 지난 3월부터 모든 국제선·국내선 노선의 운항을 중단하며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2개월 이상 항공기를 띄우지 않아 운항증명(AOC) 효력마저 일시 중지됐다. 이스타항공의 올 1분기 자본총계 -1042억원으로 이미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계제로의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날 리 만무하다. 6개월 넘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이스타항공의 고통분담에 나섰던 이스타항공 직원 1600명은 회사를 떠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이스타항공이 전라북도에게 자금을 지원받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제주항공의 인수가 무산된 이스타항공이 자구책의 일환으로 연고가 있는 전라북도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청산이나 파산은 피하고 국내선이라도 운항해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다만 이스타항공의 경영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에서 전라북도가 이 같은 결단을 쉽게 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계약 파기 책임을 두고 양사가 소송전에 돌입할 분위기도 감지된다. 양사는 M&A 실패에 따른 계약 파기, 이스타 셧다운에 따른 손해배상,이스타항공 직원들의 대량 실직에 대한 책임 등을 서로 떠넘기며 진실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스타항공이 제주항공의 주식매매계약 파기 결정과 관련 “제주항공의 주장은 주식매매계약서에서 합의한 바와 다르고 제주항공은 계약을 해제할 권한이 없다. 오히려 제주항공이 주식매매계약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스타항공은 1500여명의 임직원과 회사의 생존을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강력 대응을 예고해 법적공방 가능성이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 양 측은 추후 소송에 대비한 법리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타항공은 줄곧 계약상 거래 선행조건을 모두 충족했다는 입장이다. 앞서 제주항공이 주장하는 1700억 대 선행조건은 당초 합의사항이 아니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제주항공이 거래 과정 중 노선 셧다운(운항 중단)을 지시해 입은 피해가 더욱 크다고 강조한다.

제주항공의 경우 기 지급한 119억원의 계약금과 관련 반환 소송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이스타항공과 양해각서(MOU) 체결 당시 119억원을 계약금으로 납입한 바 있다. 남은 잔금 426억원가량은 주식 취득 예정일에 지급할 예정이었다. 

다만 제주항공이 실제 계약금 반환 소송을 진행할지는 시간을 두고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매각 결렬 쟁점과 관련한 첨예한 입장차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계약금을 포기를 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계약금 반환 소송과 관련해 내부의 의견이 갈릴 것으로 본다”며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시도하다 포기한 사례의 경우, 한화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등으로 단순히 자금이 없어 계약을 포기한 것이지만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경우 복잡한 사안이 너무 많다. 제주항공 입장에서는 책임공방으로 이어져 흙탕물싸움이 되고 이미지 타격을 입느니 비싼 댓가를 치뤘다고 보고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