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에서는 수천 명의 인도 엔지니어들이 일하고 있고, 인도 출신 CEO들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몇몇 미국 기술 대기업들을 이끌고 있는 등, 인도와 미국은 오래 동안 기술 관계를 맺어왔다.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왼쪽)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야 나델라 CEO.   출처= New Indian Expres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2020년 들어 미국 기술 산업의 거인들이 인도에 투자한 돈은 무려 170억 달러(20조원)에 달한다.

아마존이 1월에 10억달러, 페이스북이 4월에 60억달러, 구글도 7월 들어 1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올해 인도 기술 업계에 투자된 돈은 7월 중순까지 200억 달러를 초과했는데, 그 중 대부분은 미국 기술 회사들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미국의 기술 회사들은 인도 규제 당국과 충돌하고 있었고 기술 CEO들의 뉴델리 방문이 냉대를 받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엄청난 투자 규모는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특히 인도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피해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기업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인도와 중국간 발생한 외교적 마찰이 기술 산업으로 확산되었다. 인도는 이전에도 미국 기술 회사들이 군침을 흘리던 곳이었지만,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 협력의 범위가 줄어들고 홍콩에서 그들의 거점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고조되면서 인도 시장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에 대한 투자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다. 7억 명이 넘는 인터넷 사용자들과 아직 5억 명이 온라인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는 인도의 디지털 경제는 미국의 기술 거인들이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밥상이다.

미국-인도 기업인 협의회(US-India Business Council)에서 기술 정책을 이끌고 있는 제이 굴리쉬는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인도가 좋은 시장이 될 것이고, 인도의 규제는 장기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바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최근의 지정학적 요인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인도 투자의 더 깊은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CNN이 최근 미국 기술 거인들이 인도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를 상세히 소개했다.

중국 요인

실리콘 밸리는 소위 만리장성 방화벽(Great Firewall)이라는 별칭이 붙은 중국의 대규모 검열 메커니즘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중국 투자를 활성화하지 못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어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접근하기 용이했던 홍콩에 대한 중국 당국의 국가보안법 발동은 그들을 더 멀리 밀어내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중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명령하거나 그런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등 기술 플랫폼을 규제할 포괄적 권한을 홍콩 당국에 부여하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는 홍콩 정부와 데이터 공유를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바이트댄스의 틱톡(TikTok)은 홍콩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스탠퍼드대학교 법과학기술부 프로그램의 마크 렘리 소장은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거래하려면 도덕적 타협이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 기술에 대한 미국의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중국 기술기업 화웨이의 확장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주장했고, 미 행정부는 틱톡의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미국과 인도가 서로 발을 맞추고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 달 중국과의 국경 마찰 이후 틱톡을 포함한 수십 개의 중국 앱을 금지했다. 비록 중국 스마트폰이 인도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인도 최대 스타트업 대부분이 상당한 규모의 중국 투자를 받는 등 인도와 중국과의 기술 관계는 여전히 깊지만, 최근의 긴장은 인도가 미국을 기술 파트너로 삼고자 하는 의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 실리콘 밸리는 소위 만리장성 방화벽(Great Firewall)이라는 별칭이 붙은 중국의 대규모 검열 메커니즘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중국 투자를 활성화하지 못했다.     출처= China-Briefing

터프츠대학교의 기업 글로벌환경 연구소의 라비 샨카르 차투르베디 소장은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의 혜택을 누리면서 중국의 경제적 유대관계를 늘려나감으로써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행동을 통해 한 세대를 이어 관계를 유지해 온 인도를 미국에 갖다 바친 셈이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 등지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인도 엔지니어들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몇몇 미국 회사들에서 인도 출신 CEO들이 활약하고 있는 등, 인도와 미국은 오래 동안 기술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인도 기업인 협의회의 굴리쉬는 "디지털 영역에서 인도와 미국 사이에 자연스러운 시너지가 존재한다"며 “인도의 인터넷 사용이 증가하면 인도가 시장으로서의 매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최고 부자의 역할

미국 기술 회사들이 인도 시장에 눈 독을 들이고 있던 차에, 아시아 최고 부자가 인도 투자의 불을 댕겼다.

페이스북과 구글 등 올해 인도에 대한 기술 투자의 대부분은 인도의 억만장자 무케시 암바니가 지배하는 기업들의 금고에 들어갔다. 암바니의 통신 재벌 릴라이언스(Reliance)의 디지털 자회사인 지오플랫폼(Jio Platforms)은 지난 4월 말 이후, 거대한 인도 디지털 경제에 재빨리 발을 들여놓으려는 기업, 벤처 투자가, 국부펀드들로부터 200억 달러(24조원) 이상을 모금했다.

지오는 2016년 이동통신망으로 출범해 빠른 시간 안에 4억 명에 가까운 가입자를 확보했다. 최근 전자상거래, 디지털 결제, 스트리밍 서비스, 그리고 지오미트(JioMeet)라는 줌(Zoom)과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까지 진출하면서, 암바니는 회사를 인도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계로 발전시키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실리콘 밸리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터프츠대학교의 차투르베디 소장은 "미국의 기술회사들이 중국의 만리장성 방화벽을 뚫지 못하고 있지만 지오가 만든 '인도의 지불결제 시장’(Great Paywall of India)에는 들어가는 것은 매우 쉽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고 부자가 운영하는 인도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릴라이언스는 막강한 현지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이 인도에 진출할 때 장애물이었던 데이터 저장과 전자상거래에 관한 많은 규제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차투르베디 소장은 "릴라이언스만큼 성공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인도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글로벌 진입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퍼드대학교의 렘리 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경제를 다른 나라와 점점 더 단절시키면 실리콘밸리는 그 영역을 확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상황에서 인도는 따먹기 좋은 무르익은 과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지만, 미국은 5년 전만큼 혁신의 매력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실리콘밸리로 데려오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면서 기술기업들은 이제 혁신의 중심이 아닌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