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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비싼 유턴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바꾸면 신뢰를 무너뜨린다.

최근에 청와대 대변인이 사표를 냈다가 반려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백약이 무효인 듯 보이는 국내 부동산대책과 얽혔다. 청와대 다주택 보유 참모들에게 살 집 하나만 남기고 처분하기를 권고했던 대통령 비서실장과 관련하여, 발표한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말을 바꿔버린 탓이다. 최초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서울 아파트를 처분키로 했다고 발표했는데, 청주 아파트를 팔 것이라고 뒤집어 버렸다.

대외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말을 뒤집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부에서 면밀히 잘 협의하고 재차 확인해야 한다. 대세에 지장이 없는 것이야 희생하든 버리든 어찌하겠지만, 주요 메시지를 번복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함부로 뭔가를 외부로 전하지 않게 된다. 늦게 말하는 것이, 뒤집어 번복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세 번 이상 생각하고 말을 하라고 배웠다. 사실 난 이렇게 가르치는 것에는 절대로 반대다. 물론 조심하라는 뜻에서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심사숙고를 하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잃는 것이 더 많았다. 한국 사람들은 어딜 가서든지 말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떨어져 있었다. 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교수가 어떤 주제를 던져주고 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자주 진행하는데, 이런 교육 방식에 한국인들은 젬병이었다고들 한다. 다 듣고 머리 속으로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하려다 보면 이미 대화는 다음 단계로 넘어 가 있기 일쑤다.

생각만 하다가 정작 말할 기회는 잡지 못해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하면서 말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지를 못하다. 딱 그것 때문인 것은 아니겠지만, 해외 유명인사가 국내에 방문했을 때도 한국 언론은 제대로 된 질문이라는 것을 잘 하지 않는다. 화두가 던져지고 사전에 약속된 질문과 답변이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면 질문들의 대부분은 외국인들 차지가 되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신기한 것은 그날 행사가 마무리 되고 나면 기사는 어김없이 잘 나온다는 것이다. 다 듣고 종합하여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순간순간 제기되는 질문과 답변에는 취약성을 잘 드러낸다. 한국 사람들은 예상을 벗어나는 질문을 하기에도 부담스러워 하고 답변하는 측에서도 동일한 입장이다.

투자설명회나 기자간담회 같은 행사를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다. 보통 투자자들이나 기자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주최측에서는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많이 모이게 되면 행여 누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때문에 행사장을 꽉 메우기 시작하면 경영진들이나 발표자들은 얼굴들이 하얘지기 일쑤였다. 발표 중에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에 의하면 그런 경우는 많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문제의 범위는 좁아지고 깊이는 얕았던 것 같다. “절대로 걱정할 필요 없고, 발표 중에 실수해도 된다”거나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것 보다는 조금은 어리버리하거나 더듬어도 개의치 말라고”고 주문을 하곤 했다. 사실 내 생각은 단 한 명을 상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제일 힘들고, 두 명을 대상으로 할 때는 그 보다 힘이 덜 들고, 다수를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오히려 쉬웠다. 이런 주문에 사람들은 늘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회사 내부도 마찬가지여서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대외적으로 공표되기 전에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에 미리 의견을 모으는 자리가 꼭 필요했다. 그룹전략회의 말미에 안건으로 끼워 넣었다. 그룹 내에서 회장을 비롯한 각 계열사 사장단, 구조본 임원진들 모두가 내노라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모아놓고 보면 나오는 의견들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였다. 일대일로 간다면 감히 제대로 된 대화를 주고 받기도 어려운 높으신 분들이었지만, 모아 놓으면 요리가 간단했다. 혼자라면 이게 좋다고 했다가 또 금방 아니라고 해도 되지만, 모인 상황에서는 남들 눈치를 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제안서 내지 말고 그냥 돌아와!”

제한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목적지 부근에서 본사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았다. 최고경영진의 판단이 바뀌었다는 전갈에 몇 날 며칠 동안의 수고로움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수석에서 통화를 끝낸 팀장은 몸을 뒤로 돌려 구조본부장에게 연락 내용을 보고했다. 일행들은 모두 아쉬움을 남기고 유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차를 돌리고 기다리고 있을 상대방 측에 연락을 해서 상황 설명을 했다. 내용은 ‘제안서를 들고 가고 있었으나, 여차저차하여 제안은 어렵게 됐으니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기다렸을 상대 측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음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고, 합의 한 상황이었는데,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상대 측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함이 말하는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었지만, 애써 이해를 시키고, 유턴을 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일행들은 넥타이를 잡아 당겨 느슨하게 풀었다. 일순간 긴장들이 풀리면서 여유를 되찾는 분위기였다. 일주일 이상 퇴근도 제대로 못한 상황이라 복귀하면 짐 정리하고 다들 일찌감치 퇴근들 해서 쉬고 싶다는 얘기를 주고 받으며, 갔던 길을 되돌아 왔다.

유턴한 지 이십 분 정도나 지났을까, 다시금 조수석 팀장의 벨소리가 울렸다. 또 다시 최고경영진의 다이렉트 전갈, 팀장은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동일인이지만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의 목소리였다. 그 짧은 이십 분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제안서를 포기할 수는 없고, 마감 시간이 좀 남았으니 지금이라도 다시 되돌아가서 제안서를 주고 오라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만 아까 연락을 받고 상대쪽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양해를 구했던 터라, 다시 되돌아 가서 제안을 하게 된다면 저쪽도 거기에 맞춰서 조건을 변경할 것 같습니다.”

“그건 감수해야지. 아마 금액을 더 부르겠지.”

“우리 쪽 패가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더 주더라도 진행해.”

“예. 알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차 안에 있던 일행들은 일순간 몸을 바짝 일으켜 세우며 긴장감에 휩싸였다.

50억짜리 유턴, 하지만 값어치 있었던 결정

“다시 차를 돌리지.”

다시 유턴은 했고, 차 안에서 상대 측에 다시 연락을 했다. 포기하고 있던 상대방은 기대 밖이라는 걸을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예상대로 조금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음을 상기시켰다. 결국은 금액이었다. 마감 시간까지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선까지는 저쪽에서 더 달라는 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짧고 굵게 협상을 하고 금액을 최소한으로 좁혔지만, 그래도 불과 삼십분 전과는 수십억원이 차이가 나는 금액이었다. 이제 도착하기까지는 불과 5분여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팀장은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차를 되돌려 오면서 상대와 협상을 했고, 예상했던 대로 저쪽에서 더 부르는 조건을 최대한 좁혔고, 최종 금액이 처음 예상보다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진행해.”

인상된 금액을 들은 본사 쪽에서도 그 정도면 감수해야 한다는 결심 끝에 받은 오케이 사인이었다. 통화가 끝난 그 시각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서둘러 내려서 사무실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서로간의 의사를 다 확인했고,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제안서 맨 윗칸, 지금까지는 비어 있던 그곳에 금액을 기입해 전달했다. 결과는 물론 인수 성공이었다.

이 얘기는 실제로 기업인수합병 사례에서 있었던 얘기다. 처음 제안서를 제출하고자 했을 때에 양측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금액 선은 200억원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딱히 금액적인 부분이 판단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본사에서 이것 저것 생각하던 회장님이 마침 ‘굳이 지금 이렇게까지 해서’하는 생각이 들었고, 제안서를 제출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인원들에게 연락해서 철수를 명했다. 그리고 포기하고 퇴근을 하려는데 책상 위에 펼쳐진 신문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이 업체의 인수와 관련해 처음에 몇 가지 생각을 적어뒀던 메모지를 꺼내봤다. 잠시 생각을 되짚어 정리했고, 재차 전화를 한 것이다. 물론 거래를 한번 물렸다가 다시 거래를 하게 된다면 응당 상대방 쪽에서는 금액을 높여 부를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였다. 그렇게 해서 인상된 금액이 25% 정도였으니 무려 50억원이다. 유턴 한번에 50억원을 더 쓴 셈인데, 설마 그럴까 싶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하자고 했다가 점심 먹고 와서 하지 말자고 하고, 퇴근해서는 다시 긴급하게 진행을 시킬 수도 있다. 말을 바꾼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점심 때 알게 됐던 새로운 정보 때문에 오전에 가졌던 결정은 뒤집어 질 수 있다. 그리고 다시금 퇴근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어 그 결정을 바꾼 것이다.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는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다수가 결정에 참여해야 하는 대기업보다 한 둘이 결정하면 되는 작은 기업들이 결정이 더 빠르다.

회사 특히 상장사 같은 곳은 실리와 명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실리 없는 명분은 허울뿐이고, 명분 없는 실리는 자칫 이미지 훼손을 초래하게 된다. 정보가 공유되고 조직 구성원들이 타당하다고 생각을 공유한다면, 까짓것 세상에서 제 아무리 비싼 유턴이라도 몇 번인들 못할까.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20.07.22  11: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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