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 톰 스탠디지 지음, 김정수 옮김, 캐피털북스 펴냄.

고고학자들은 도구의 재료를 중심으로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으로 구분한다. 저자는 음료에 근거해서도 역사 구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스 철학, 로마 제국, 미국의 독립, 프랑스 대혁명, 영국 산업혁명, 아편전쟁,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인류사의 대사건 이면에는 그 시대를 만들어낸 특별한 음료가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맥주, 와인, 증류주, 커피, 차(茶), 콜라 등 6가지 음료를 통해 1만년 인류사의 전환점들을 짚는다. 이 가운데 맥주는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문명사를 상징하는 음료라고 설명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약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 출현했고, 약 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왔다. 이후 약 30명 씩 소집단을 이뤄 이동하며 수렵·채집에 의존하며 살았다.

약 1만2000년 전(BC 약 1만 년 전) 근동에서 곡물 재배를 터득한 현생 인류는 한 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면서 농경을 시작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이들이 농경시대를 연 곳은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The Fertile Crescent)’ 지역이었다. 이집트에서 지중해 연안을 올라가 터키 남동 끝까지, 옆으로는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지대로 이어지며 초승달처럼 보이는 곳으로 야생 양과 소, 염소 돼지에게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야생 밀과 보리도 무성했다.

맥주 제조법은 우연히 발견되었을 것이다. 곡물을 재배하여 물에 담그면 죽처럼 되면서 단맛이 난다. 맥아화 현상이다. 이것을 그냥 두면 당분이 공기중 천연 효모와 만나 발효하여 알코올로 변한다. 맨 처음 부글부글한 거품을 마셔본 사람은 기분 좋게 취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을 것이다.

당시 맥주의 원료가 되는 곡물이 풍부했으므로 언제든지 양조가 가능했다. 더구나 원시적 맥주의 양조법은 단순했다. 필요한 도구라고 해야 역청을 칠한 바구니, 동물 가죽으로 만든 가방, 동물 위장, 커다란 조개 껍질, 속이 텅 빈 나무 가운데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

최초의 도시들이 등장하고 사회의 복잡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인류사 최초의 격변기에 맥주 제조법은 널리 퍼지면서 업그레이드됐다. 훗날 이집트 기록에는 17개 종류의 맥주가 소개되어 있고, 5000~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지금의 이라크) 기록에는 생맥주, 생흑맥주, 적갈색 맥주, 라이트 맥주 등 무려 20가지로 다양화되었다.

맥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약 6000년 전(BC 400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한 그림문자에서 발견되었다. 1930년대 이라크 북부 모술 인근의 ‘테페 가우라’에서 발견된 봉인(seal)용 스탬프에는 두 사람이 커다란 항아리에 각각 갈대로 만든 빨대를 꽂아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고대의 맥주는 표면에 곡물의 입자나 다른 찌꺼기가 떠 있었기 때문에 부유물을 피해 마시려면 빨대가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