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소현 기자] 서울 땅엔 집 지을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개발이 80% 이상 진행된 서울에서 정비사업과 민간택지 관련 규제가 강화된 가운데, 공공택지 개발도 올해로 마무리되면서 민간 공급자 입장에서 손해보지 않는 땅을 찾기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개발이 제한된 그린벨트를 해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투기 수요를 억제하면서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두 가지 원칙에 어긋날 여지가 있어 내부적으론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포착되고 있다. 

7·10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이같은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규제 발표 이후로도 계속되는 집값 오름세를 잡을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수도권 아파트 공급 충분하다? 서울 투기 수요 완충 지대는 '부족'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은 “실수요자를 위한 저렴한 공급 물량을 충분히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투기 목적의 수요가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언제든지 시장에 개입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완충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물량을 확보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지난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가 수년째 공급물량 확대를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음에도 부동산 시장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정부가 앞서 주장해왔 듯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은 충분하지만, 투기 수요를 완화하기 위해 물량 확대는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는 정부가 지난주 7·10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택 공급을 확대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투기 수요를 잡고 실수요자 공급을 확보하겠다는 부동산 대책의 정책 기조와 달리, 최근 중저가 아파트가 포진한 강북권까지 주택 가격이 오름세를 타면서 서울의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대책에는 ▲도심고밀 개발을 위한 도시계획 규제개선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도시주변 유휴부지·도시 내 국가시설 부지 등 신규택지 발굴 ▲공공 재개발·재건축 방식 사업 시 도시규제 완화를 통한 공공공급 ▲도심 내 공실 상가·오피스 등 활용 등이 담겼다. 

정비사업으로 사라지는 집 많아, 입주물량 - 멸실 = ?

앞서 정부는 주택공급을 충분하지만, 투기 세력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해 왔다. 지난 1월 서울시는 '주택 공급 전망과 주택시장 진단'을 발표하며 향후 6년간 연평균 4만9000가구의 아파트가 시장에 풀릴 것으로 전망하면서 공급물량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건축과 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많은 서울 특성상, 멸실되는 숫자가 많은 상황이다. 이 지역에서 매해 신규 공급되는 주택의 70~80%는 정비사업 관련 물량으로, 그만큼 멸실되는 가구가 많아 아파트 순공급량은 지난해 들어서야 5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4만3106가구로, 멸실되는 가구 수인 3만7675가구를 5000여가구 차이로 앞질렀다. 그 이전에는 멸실되는 수가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입주물량은 2018년이 되어서야 겨우 3만명을 넘어섰지만, 멸실 물량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4만 가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다만 신규 주택공급량에선 양질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 비중이 50%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수요와 공급이 빠듯히 맞춰진 상황이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 부연구위원은 "집을 구하기를 원하는 수요를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해 공급량으로 수요를 추산해 한해 몇 만채를 공급해야 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면서 "다만 주택 공급 계획을 세울 때 서울의 경우 (멸실을 제외한 순공급이) 한해 4만채, 많게는 4만5000채 정도를 필요한 수요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다음해 반토막 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에는 4만8501가구가 예정되어 있지만, 내년엔 2만5021가구가 시장에 나오게 된다. 국토부는 내년 3만6000가구가 공급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다만 이는 서울에선 드문 후분양 물량과 공공임대 공급 물량 등을 포함한 수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이 이끄는 정비사업, 용적률 상향···실효성 있을까

이번 7·10 대책에서 제안된 주택공급 계획은 몇년 전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사업을 종합한 것에 해댕한다. 주택공급에는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이미 추진되고 있던 정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기간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정책 의지를 강조해 이른바 '패닉 바잉'으로 불리는 주택 매수 심리를 잡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박 차관은 이날 "주택공급은 중장기적인 호흡을 갖고 해야하는 정책"이라면서 "그런 차원에서 실수요자들이 '앞으로 충분히 양질의 주택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될 수 있다'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공급 계획을 마련해보겠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에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신호가 적기에 전달될 수 있을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향적으로 태도를 전환하지 않는 이상, 과거에 나왔던 정책들이 활성화해 단기간에 시장에서 여력을 보이기란 어렵다고 지적한다. 공공관리를 통한 정비사업과 용적률 상향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재개발과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공공이 주도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 임대주택 물량 등이 포함돼 수익성이 높지 않아 속도감 있는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서울 정비 사업지 총 531곳 가운데 재개발 구역 102곳은 사업 가능 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10년간 조합을 설립하지 못해 민간도 공공사업도 추진되지 않고 있다.

용적률 상향도 유사한 문제가 제기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용적률을 높인다는 것은 몇년전 제시된 역세권 시프트 제도와 유사한데, 이 제도가 활성화되긴 어렵다"면서 "서울의 용적률을 높여주고 일부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는 것인데, 특성상 진입도로 등 도로개발 시설이 필요할 뿐더러 임대주택의 경우 공급자 입장에서 선호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서울, 집 지을 땅이 없다"는데···오락가락 '그린벨트' 해제
▲ 2014년 기준 서울시 개발제한구역 지정현황. 출처=서울시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을 둘러싸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서울에선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구역상 서울의 면적은 약 605㎢이다. 이 가운데 그린벨트 등을 제외하고 개발이 가능한 면적 약 456㎢의 80%는 현재 개발이 완료돼, 최근 규제가 강화된 정비사업의 경우를 제외하곤 새롭게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는 땅은 많지 않다. 

집을 지을 새로운 땅을 발굴하는 서울 공공택지개발 사업의 경우에도 소식이 끊겼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이후 공공택지 지정은 한 건도 추진되지 않으며, 올해 고덕·강일 지구를 마지막으로 종결을 앞두고 있다. 

민간의 택지개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자사의 경우) 대형건설사와 달리 정비사업이 아닌 택지개발 사업에 주로 참여하는데, 서울에선 공공택지가 끊겨 민간택지 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규제로 인해)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어려운 상황이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는 당장 토지 발굴이 어려운 가운데, 민간이 추진할 수 있는 정비사업도 막아 두어 주택공급 물량이 증가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부연구위원은 "당장 새로 개발할 토지 자체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면서 "때문에 정부에서 7·10 대책을 내놓으면서, 용적률이나 그린벨트 해제 등을 언급한 것도 서울 내 신규 토지 부족을 극복해보겠다는 제스처로 이해는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민간의)정비사업이나 이런 것들을 막아놓은 상태에서 이같은 정책을 진행한다는 것은 중점으로 공급할 수 있는 부분을 내버려두고, 나머지 것들을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면서 "공급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나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결국에는 그린벨트를 해제하거나 공공과 민간이 함께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정부 부처는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날 "그린벨트 문제를 점검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언급한 지 하루 만에, 국토부 박 차관은 "정부 차원에서 검토한 적 없다. 서울특별시와도 협의가 시작되지 않았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