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왕별곡-달하 노피곰 도다샤, 162×391㎝ 캔버스에 아크릴, 2019

달아 세상 끝까지 멀리멀리 비추어다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반세기 넘게 강경구의 작품을 마주 하면서 ‘미학적 자유주의’를 떠올려 본다. ‘미학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은, 현학적으로 말하자면. 예술종말론과 같은 말이다. 예술종말론의 부정적 측면은, 회화는 물론 모든 예술에서 이름다움(美)의 이념이 수방된다는 것이다. 미 이념의 추방은 추(醜) 이념의 추방을 수반한다.

미추가 사라지면, 규칙으로서의 물이 사라지고 물이 사라지면 규칙 없는 놀이만 남는다. 규칙 없는 놀이는 자유의 전형이다. 둘 또는 그 이상이 싸움을 벌여 이기고 지는 것이 게임으로서의 놀이라면, 진짜 자유로운 놀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필요도 없으니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없고, 해도 그만 아니해도 그만인 그런 놀이다.

▲ 인왕별곡-통의, 130×162㎝ 캔버스에 아크릴, 2019

예술 종말론의 긍정적 측면은, 인간사는 물론 자연사의 모든 영역의 전체 또는 개별사건을 작가 자신의 자유로운 해석으로 그려내고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작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작가는 자유이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관객에게 요구되지 않으므로 관객 또한 자유이다.

문제는 이 두 자유의 주체들(작가와 관객)이 만나야 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역설이요 아이러니이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자마자 작가의 것이 아니라 관객의 것이다. 관객 없는 작품은 작품이라기보다 무의미한 물리적 자연물과 동일한 그냥 있는 것일 따름이다. 이는 어떤 작

품도 관객과 만나는 순간부터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학적 자유는 역설의 자유이다.

▲ 인왕별곡-청운, 112×162㎝ 캔버스에아크릴, 2019

강경구(KANG KYUNG KOO,강경구 작가,화가 강경구,강경구 화백)는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체험을 그려낸다. 타인과의 객관화가 가능한 것이 경험(Er-fahren)이라면, 오로지 자기 고유의 직관과 느낌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삶의 행동, 삶의 표현으로 묘사하고 실천하는 토대를 체험(Erleben)이라 한다.

이 주관적 체험이 일반화되면서 진정한 객관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그림이 아닌 그림이다. 아름다움을 절실하게 추구하지 않으나 의도적으로 추함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그는 삶과 생의 자연적 무의미, 환희와 절망, 고뇌와 고독, 아픔과 희열을 결코 담담하지 않게, 왜 하필 그래야 하느냐고 절규하는 심연을, 그러나 너털웃음 터트리듯 그려낸다.

자기의 삶, 자기의 얼굴, 자기의 궤적을 그는 그림을 통해 조화롭게 묘사한다. 현자(賢者)는 깊이 사색하며 묵묵히 자기 길을 갈 뿐이다.

△글=빈손 윤병태(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

△전시=Tong-In Gallery Seoul(통인화랑), 3월18~4월5일,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