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모터바이크 한 대가 굉음을 일으키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다가 멈춘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라이더가 헬멧을 벗는다. 금발의 긴 머리를 풀어헤치는 그녀가 클로즈업된다. 아주 오래되고 구태의연한 반전이다.

반전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CF에서 아주 중요한 재미의 요소다. 어떤 영화는 단 하나의 반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스포일된 줄거리를 미리 알아버리면 영화를 보나 마나가 되기도 한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진료실에서 매일매일 반전을 경험한다.

환자가 마스크를 한 채 진료실 문을 들어와서 필자 앞에 앉는다.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대부분은, 필자가 마스크를 한번 벗어보시겠어요 하기 전까지는 마스크를 쓴 채로 있다. 그래서, 마스크를 쓴 환자를 관찰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필자를 찾는 환자의 90%는 돌출입 때문이고 차트에도 이미 그렇게 체크가 되어 있어서, 환자가 돌출입이라는 것은 진료실 문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상담을 받으러 온 환자들을 보면 순간적으로 ‘매우 훈남이군’ 혹은, ‘굉장한 미녀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바로 마스크 때문이다.

환자가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의 느낌은 필자에게 새로운 경험이다. 이제까지 마스크를 쓴 환자를 관찰할 일은 없었다. 환자는 얼굴을 남김없이 다 보여주는 것이 당연했고, 필자는 그 얼굴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진찰하는 것이 직업이고 일상이었다.

그런데, 환자가 마스크를 쓴 잠깐 동안, 돌출입은 물론이고, 광대뼈와 사각턱까지 마스크로 다 가려진다. 그 때 필자가 보는 것은 눈의 모양, 눈빛, 목소리, 눈썹과 이마의 모양, 헤어스타일 정도이다. 이 순간 필자는 성형 전문가 기능이 무장 해제되고, 보이는 것에만 충실해지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이 때의 느낌이란 전혀 전문적이지 않다. 그냥 본능적이고 나이브하다. 시쳇말로 ‘느낌적인 느낌’이다.

그 훈남과 미녀가 마스크를 벗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필자의 전문가 기능 스위치가 켜지고 필자를 찾아온 이유가 명백해진다. 다름 아닌 돌출입이다. 바이러스로부터 코와 입을 막기 위한 것이 마스크인데, 바로 그 마스크가 돌출입도 가려준다. 이제부터 지구별에서는 영원히 마스크를 써야 한다면, 돌출입수술은 가장 불필요한 수술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S대 병원에서 성형외과 전공의로 슬기로운 초짜 의사 생활을 할 때, 수술장 간호사들은 거의 다 미인이었다.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운 얼굴의 간호사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 눈에 반할만한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두 눈뿐이었다. 헤어스타일은 수술모자로, 코와 입은 마스크로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다. 수술장 간호사들은 눈화장의 달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눈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굴화장을 해봤자 마스크에 화장이 묻고 지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모로는 단연 수술장의 여신인 줄 알았던 그녀가 마스크를 벗는 순간 환상이 무너지는 반전을 몇 번 경험했다. 물론 마음씨가 환상적인 간호사도 있었다.

돌출입 수술을 20년 해온 지금도 눈에, 눈빛에 잠시 지배당한다. 우리 뇌는 (전문가인 필자도), 잘생기고 아름다운 눈에 매료되어 마스크 속의 얼굴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잘못 연관 짓고 유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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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 생활에 지친 당신이 이성을 소개받으러 나간다.

상대방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럼에도 첫인상이 서로 아주 마음에 든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만, 마스크를 쓴 채로 몇 번 더 데이트를 하다가 소위 썸을 타게 되고, 운명처럼 영혼에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마스크를 쓴 채로 프러포즈를 하거나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결혼하고 나서 드디어 마스크를 벗고 상대방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된다고 치면, 마음속에 액자처럼 간직했던 환상이 깨지면서 사랑도 결혼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 심지어 돌출입 수술을 하는 성형외과 전문의로부터도 훈남과 미녀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외모로서는 일단 굉장한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돌출입을 가진 ‘마스크 미남’, ‘마스크 미녀’들은 요즘 마스크를 쓰면서 주위에서 잘 생겼다, 예쁘다는 칭찬을 들으며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넌 입만 가리면 참 괜찮아‘ 라는 친구들의 짓궂은 농담이 마스크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마스크 안에 숨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마스크 미녀, 마스크 미남에게 돌출입을 해결하는 것이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는 이유다. 남성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지만, 특히 여성의 경우 개구리나 왕눈이류의 별명을 가졌다면, 돌출입이 있더라도 대개 마스크 미녀다. 45도 위쪽에서 찍은 셀카는 입 부분이 잘 안드러나, SNS 상에서 여신급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이런 경우의 돌출입수술은 분명히 시너지 효과가 있다. 다만 수술은 합병증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선택에 신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편 온라인상담을 하다보면, 자신의 외모에 좌절하고 자책하는 글이 적지 않다. 돌출입이 심한데다가 광대뼈와 사각턱도 있고, 코도 낮고 눈도 작아서 총체적 난국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마스크를 썼을 때도 잘 생겼다거나 아름답다는 긍정적인 오해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의 돌출입수술이 더 절실하고 중요할 수 있다. 눈크기(palpebral fissure) 자체를 키우는 것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을뿐더러, 아름다움이란 눈, 코로 다 완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배우 조*우씨와 봉*규씨가 마스크를 쓴 얼굴을 비교해본다면, 사실 아주 큰 차이가 없다. 쌍거풀이 없는 별로 크지 않은 눈에다 소위 숯댕이 눈썹도 아니다. 배우로서의 연기력이나 사람의 내면과 같은 다른 요소를 모두 떠나서, 오직 ‘전문가 스위치’를 켜고 입매만 봤을 때, 이 중 한 명의 입매가 더 아름답고 잘생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입과 턱끝이 이상적인 기준선에 잘 맞아 있기 때문이다. 관객마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정통 멜로 영화나 뮤지컬의 주연 중에 돌출입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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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향년 91세로 영면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쓴 부고에서, 64년을 해로한 아내에게 ‘당신에게 매일 새로운 사랑을 느꼈다. 이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며, ‘먼저 떠나 미안하고, 당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한다’고 썼다고 한다. 음악으로 많은 감동을 준 그의 부고는 음악만큼 아름답다. ‘씨네마 천국‘보다 더 큰 천국에서 편히 쉬길 애도한다.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는 수술이 끝나면 가끔 체력이 소진되어 잠깐 맥없이 누워 있다가 선잠이 들기도 한다. 만약 꿈속에서 필자가 옥황상제 앞에 가 섰는데, “네가 평생 돌출입으로 마음의 상처가 많은 환자들을 열심히 치료해 줬으니, 웬만하면 천당으로 보내주마. 쉬운 문제 하나만 맞춰보아라. 이 환자가 돌출입이냐 아니냐?” 고개를 들어보니, 환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면...악몽이다.

문득 마스크를 쓴 채 거울을 봤다. 요즘 필자를 찾아온 환자들은 바로 이 얼굴을 보며 진료와 상담을 받을 것이다. 말의 핵심, 진심, 미소, 의지, 표정의 변화, 경험, 열정, 내면과 같은 것들이 마스크에 가려져 생생히 전달되지 못할 것 같아 아쉽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의 내면에, 나의 얼굴에 책임져야 하는 나이보다 10년이 더 흘렀다.

필자는 환자의 얼굴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오우 헨리는 단편 ‘식탁을 찾아온 봄’에서, 사랑에 빠진 주인공 세라가 그토록 기다리는 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윽고 달력이 봄이 찾아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정말 오고 나서야 드디어 왔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봄인 법이다’

마스크는 당장은 돌출입을 가려주고, 돌출입수술 후의 붓기도 가려줄 테지만,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길고 혹독한 겨울과 같은 바이러스의 창궐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달력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지만, 우리가 마스크를 완전히 벗는 날이 올 것이다. 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