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그때 엄청 야단 맞았다며?”

30년만에 사과를 받았던 때는 2020년 신년 초였다. 부산에서 선후배들이 모처럼만에 즐거운 술자리를 가지던 날 선배가 전화로 불쑥 건넨 말이었다. 아마도 술자리에서 내 얘기가 나오자 멀리 있는 내게 안부전화를 줘서 두루두루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못 만난 지 이미 20년이 넘었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긴가 싶어 처음에는 감을 잡지 못했다. 전화기를 건네 받은 후배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고 나서야 이해를 했다.

내가 대학교 영자신문사 취재부장 시절 얘기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삼십 년도 더 됐다. 그 당시 장난기가 발동한 선배와 나를 비롯한 후배들이 작당모의를 했었다. 심심하던 차에 선배의 제안으로 무거운 책장이나 책상 정도만 빼곤 편집국 내에 있는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서가의 책들도 모두 거꾸로 세워 꽂았고, 의자도 전화기도 시계도 액자도 하여간 뒤집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뒤집힌 세상을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칠판에다가 “Welcome to Upside-Down World!’라고 크게 썼다. 우리 말로 풀어 쓰면 ‘거꾸로 된 세상’ 쯤에 해당되겠다.

막상 골탕을 먹이려던 편집국장이나 데스크를 맡고 있는 선배들은 오지 않았고, 일이 있었던 그 선배는 일찌감치 귀가해 버렸다. 문제는 그 뒤에 벌어졌다. 뒤늦게 사무실에 들어선 국장 이하 몇몇 선배들이 사무실 꼬라지에 경악했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남아 있던 우리들 중에선 내가 제일 연장자였기에 대표로 깨졌다. 웃자고 벌인 일이었는데, 여자 선배들의 예상치 못한 히스테리컬한 과민반응으로 돌아오자, ‘이게 아닌데’ 하면서 그냥 고개 숙이고 모든 것을 허겁지겁 되돌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장난기에 들떠서 웃고 떠들며 했던 것들을 되돌려 놓는데 적잖이 진땀을 흘려야 했다.

 

30년이 지나서 사과 받을 수도 있는 것이 현실

그날 너무 심한 야단을 맞아서 그 일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함께 있던 후배들도 두 번 다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곤 잊고 살았다. 늘 얌전하기만 했던 편집국장 선배를 그토록 사나워지게 만든 죄책감도 컸다. 그때가 1989년 중반쯤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처음 주도했던 선배의 연락을 받은 것은 2020년 초이니 삼십 하고도 일년 정도가 흐른 뒤에야 사과를 받게 됐다. 술자리에서 오갔던 여러 추억들 중에서 재미난 얘기 중 하나였는데, 그날의 장난이 참사로 결말지어 졌다는 것을 선배는 처음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뜬금없는 사과를 한 것이었다. 삼십 년이 넘게 걸렸지만 오해가 풀렸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사실 별 것도 아닌 사소한 오해가 긴 생명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활자화된 오해는 더더욱 길다. 개인이나 기업에게나 마찬가지다. 거기다 오해가 생기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이를 풀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배의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소한 오해가 또 다른 오해를 낳고 헤어나올 수 없는 모래지옥에 빠지게도 한다. 얼토당토않은 얘기로 치부해 버려서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도 많고, 또 어떤 경우는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 여론과의 전면전 끝에 희생되기도 한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수소자동차나 수소충전소가 수소폭탄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다. 그 원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수소폭탄 말만 듣고 위험하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소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탄소를 만들어 내야 하기에 수소에너지를 친환경연료라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하는 부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이해가 어려운 과학적 원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경우다.

수소차를 변론하려는 것 보다는 아직 여론에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 밝히고자 한다. 현재 수소를 얻는 가장 경제적인 방식은 천연가스를 열분해방식으로 추출하는데, 이때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는 포집하여 소화기나 탄산음료의 탄산으로 사용된다. 그러기에 수소연료는 추출에서부터 연료로 사용되는 전체 과정이 충분히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 이과출신이 보기에 답답해서 한 마디 했다.

사람이 가장 하기 힘든 것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듣고, 있는 그대로를 맛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망막에 맺혀진 상을 해석하고, 고막을 통해 들어온 소리를 해석하고, 혀의 미각유두가 자극을 받은 흥분이 뇌에서 해석된다. 그 해석 과정에서 뇌는 지금까지 해석해온 주관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어 버린다. 한 마디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없는 동물이다. 크든 작든 오해 없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 있겠다. 1999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실시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농구공을 주고 받는 짧은 영상물이고,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화면 가운데에서 왔다 갔다 하지만 농구공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은 대부분은 고릴라를 못 봤다고들 했다. 진짜다.

막연히 수소자동차도 위험할 것이라는 오해는 아직도 다 제거되지 않을뿐더러,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안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예전에 내가 했던 세녹스가 딱 그랬었다. 휘발유, 경유, 등유 같은 것들을 원유에서 추출해서 제조하듯이, 세녹스 제품 역시 원유에서 추출한 물질들을 베이스로 해서 알코올류를 섞어서 제조한 제품이었다. 그런데 반대파에서 여러 목소리로 언론사 제보도 하고 여론전을 펼치면서, 차를 망가뜨리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을 했다. 거기다가 제조 물질이나 방식이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웃 나라의 이상한 연료가 자동차 연료파이프를 상하게 했다는 조그만 뉴스를 빗대어서 문제라고 부각시키기도 했다.

부정적인 루머가 가지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번 부정적인 루머의 올가미에 걸려버리면 웬만해서는 벗어나기가 힘들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낙인’이라는 것이 찍혀버린다. 당시에 아무리 과학적인 근거와 논리로 그런 루머를 불식시키기 위해 숱한 싸움을 해왔지만, 불식시키기란 불가능이었다.

 

좋다는 말도 때론 곤혹스러운데, 하물며 부정적인 루머야

지금도 간혹 연차 있는 기자들은 농담 삼아 그때 그 얘기를 궁금해하며 물어보곤 한다. “차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었나요?”라고 말이다. 그런 질문 수없이 받아본 경험이 축적이 됐고, 또 이제는 그 업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위치에 있기에, 내가 하는 말이 순순히 그리고 온전히 받아들여짐을 알 수 있다. “차에 문제가 있었다면, 자동차 회사에서 가만히 있었겠어요?”라고 받아 치면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세간에 이슈가 된 때가 월드컵이 끝난 직후부터이니 무려 이십 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말이다.

갑질로 유명세를 탄 기업들도 많고, 제품 탓에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도 많다. 공통점은 그런 기업들이 가장 핫할 때 한방 맞게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맞고 나면 백약이 무효해지게 되면서 순식간에 꼬라 박게 된다. 기업들이 저지르기 쉬운 가장 큰 실수는 루머가 불거져 나왔을 때 이에 맞서서 강하게 대응하면 금방 반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천재적인 해커가 기가 막힌 방법으로 온 나라의 눈과 귀를 한 순간에 독점함으로써 판을 뒤집어 버리는 장면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현실과는 딴판이다.

대만식 카스텔라 열풍이 전국에 휘몰아쳤던 적이 있다. 2015년에 3개의 프랜차이즈가 나왔는데, 이듬해인 2016년에는 한해 동안에만 16개의 브랜드가 더 생겼다. 골목골목 카스텔라 집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또 언젠가부터 TV에서 매운맛 열풍이 불더니 ‘마라탕’이 유행처럼 번졌다. 불과 2016년까지만 하더라도 몇몇 유명한 훠궈집이 있었을 뿐, 브랜드나 프랜차이즈가 국내에는 전무했었다. 그런데 2017년에 5개가 생겼고, 이듬해인 2018년엔 9개로 늘어났다.

매운 맛엔 젬병인 나로서는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었는데, 어딜 가든 마라가 대세였다. 그런데 언론에 한번씩 호되게 당한 뒤로는 쑥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은 면밀하게 따져서 행동하지 않는다. 그냥 언론에 한번 두드려 맞고, 주위에서 ‘카더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발길을 뚝 끊어 버린다.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나’들은 전후좌우 인과관계 따져가며 행동하지 않는다. 언론이 맨 앞에 서 있는 여론이라는 사회적통념에 휘둘릴 뿐이다.

2020년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The Having (이서윤, 홍주연 저)에서 이서윤은 ‘우리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다 정해놓고 그에 따른 감정까지 사회적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감정에 대한 고정관념은 과학적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통념일 뿐이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념이라는 잣대는 프루크루테스의 침대와 같아서, 일단 부정적인 면이 포착만 된다면, 짧은 놈은 늘여서 죽이고, 긴 놈은 잘라서 죽여버린다.

일명 갓뚜기로 불리는 기업이 있다. 여러 선행이 알려지면서 착한 기업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이 회사와 관련해서도 오해는 많다. 비록 나쁜 것은 없다손 치더라도. 먼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했다는 말. 시식사원 1800여명도 정규직이라는 말이 와전된 것인데, 사실 전환이 아니라 첨부터 정규직으로 뽑혔다. 농심 라면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것은 농심이 일부 마트들의 집계에서 판매가 다소 주춤했다는 말이 와전된 것, 농심은 시장점유율 50% 정도 그리고 오뚜기는 25% 정도 수준이다. 상속세를 젤 많이 냈다는 것도, 교보생명이 1위다. 1830억원이나 냈다. 오뚜기는 1500억원이다. 내가 근무했던 전선회사도 상속세를 1355억원을 내서, 2003년 당시로는 최고액이었다. 그 외에도 장애인 재활, 심장병 어린이 후원이나 장학사업도 알게 모르게 많이 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상황은 좀 다르겠지만, 그 회사 커뮤니케이션 담당도 골치가 아플 것은 분명하다. 언론을 비롯한 전체 여론이 사소한 일거수 일투족에도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기본이다. 그게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인지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다. 거기다 앞으로의 기대감은 더해갈 것이다. 일단은 루머라는 여론의 프루크루테스의 침대 위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무 일 없어도, 늘 긴장해서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업보다. 제 아무리 커뮤니케이션실 능력이 뛰어나도 프루크로테스와의 단기 접전에서는 필패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