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의학사> 이재담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2019년 12월 3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 발병이 처음 보고됐다. 그로부터 불과 191일만인 2020년 7월 8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1200만 명, 사망자는 54만8000명에 달한다.

저자는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 집단 면역 형성되는 것이 먼저일지, 아니면 백신 개발이 먼저일지 인류의 집단 지성이 시험대에 올랐다”면서 “이를 극복할 열쇠는 결국 의학의 역사에 있다”고 말한다.

중세 유럽의 봉건제를 무너뜨린 흑사병, 17세기 남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살시켰던 천연두,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유행처럼 문명사적 전환을 불러온 전염병에 대응했던 과거의 의학을 알아야, 내일의 의학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추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의학사를 <무서운 의학사>, <이상한 의학사>, <위대한 의학사> 등 3부작으로 나눠 입체적으로 접근한다. 올바른 지식 없이 환자를 진료하며 무수한 희생자를 만들던 시대로부터 환자를 고치지는 못했지만 무슨 이유로 아픈지는 알아 갔던 의학자들의 시대, 마침내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 원인을 해결하는 선구자들의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무서운 의학사>는 역사를 바꾼 치명적인 전염병과 생명을 바치며 여기에 응전했던 의사들을 소개하고, 의학사에서 일어났던 등골 서늘해지는 사건 사고들을 모았다. 책에는 3년 동안 무려 2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 ‘신벌(神罰)’이라고 여겨졌던 중세 유럽의 페스트와 제1차 세계 대전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낳은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 집중 조명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벌한 18세기 유럽 병원들 풍경도 묘사된다. 마취법도 없고 항생 물질도 없던 18세기나 19세기 초에는 수술을 하면 사고가 나는 것이 불가항력이었다. 환자들은 마취하지 않은 채 생살을 째고 뼈를 끊어 내는 끔찍한 수술을 감내해야 했다. 어쩌다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상처가 곪아 패혈증으로 죽는 경우도 흔했다. 이 때문에 당시 “수술받아야 한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환자들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얼음 송곳으로 뇌를 후벼 파 환자를 반송장 상태로 만든 의사에게 노벨상까지 안겨 준 20세기 정신의학 편을 보면 ‘무서운’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부족한 감이 있다.

<이상한 의학사>에서는 미신과 마법과 무지가 낳은 기상천외한 약과 의료행위, 괴짜 의사들이 소개된다. 모든 질병의 원인이 과도한 성욕과 식욕이라며 성욕 억제용 시리얼 콘플레이크를 만든 존 켈로그·윌 켈로그 형제 이야기가 흥미롭다. 매독을 치료한다며 환자의 온몸에 수은을 바르고 모포를 뒤집어 씌운 뒤 더운 방에서 땀을 내도록 한 의사들과 회춘을 위해 염소의 고환을 이식한 사람들, 비타민 C가 암을 고친다고 선전했던 노벨상 수상자의 실화도 등장한다.

<위대한 의학사>에서는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발견한 종두법이 조명된다. 천연두가 유행이던 시절 목장의 소들도 천연두와 비슷한 우두에 걸렸다. 그런데 소의 우두에 감염된 사람은 발진 등 약간의 증상을 겪고는 치유되었고, 이후 천연두에도 걸리지 않았다. 제너는 1796년 5월 소젖을 짜는 사라 넬름즈라는 여인의 손에 우두로 인한 물집이 생긴 것을 보고 그 내용물을 채취하여 8세 소년의 팔에 접종했다. 이어 천연두 환자의 물집에서도 분비물과 고름 등을 뽑아 소년의 팔에 피하 투여해보았다. 그 결과 소년에게는 천연두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798년 제너는 종두법을 발표했다. 인간이 무서운 전염병에 도전하여 승리를 얻어낸 최초의 쾌거였다.

이 밖에도 600번의 실패 끝에 찾아낸 매독 치료제, 이론적 기반보다 실험과 검증으로 무균 수술법을 확립한 조지프 리스터, 20년 동안의 집념으로 이뤄낸 최초의 시험관 아기 시술 등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