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홍콩 달러 페그제 폐지는 미국과 여러 다른 나라의 은행들이 포함되어 있는 홍콩 금융 시스템을 흔들 뿐 아니라 기축 통화로서 달러의 글로벌 역할을 저해할 수 있다.    출처= 유튜브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1983년부터 미국 달러에 연계되는 페그제(peg system)를 채택한 이후 홍콩 달러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한 대개 변동이 그리 심하지 않다. 그러나 홍콩 보안법을 둘러싼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홍콩 달러 페그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가 홍콩 달러 페그제 폐지에 대한 이슈들을 정리했다. 

1. 페그제는 어떻게 작동하나?

페그제는 환율을 미화 1달러 당 7.79~7.87홍콩 달러 범위 안에서 등락을 허용하는 제도다. 환율이 상한선이나 하한선에 근접하면 홍콩의 실질적인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는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사거나 팔면서 페그를 유지한다. 종종 시험을 받기도 하지만 페그제 운용 이후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여러 차례의 충격에도 잘 버텨오며 홍콩이 국제금융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페그를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무엇보다도, 통화 페그는 금융 안정과 경제를 위한 닻으로 간주된다. 투자자들이 홍콩에 그들의 돈을 안심하고 넣어 놓는 이유는 홍콩이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환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시험을 받기도 하지만 페그제 운용 이후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여러 차례의 충격에도 잘 버텨오며 홍콩이 국제금융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약 페그가 깨지면 모든 방정식은 뒤집힐 것이다.

3. 페그제를 위협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홍콩 페그제를 위협하고 있는 주범은 정치다. 지난 5월 중국이 홍콩에 새로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홍콩이 더 이상 미국이 부여한 '특별한 지위'를 보장받을 만큼 충분히 자율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홍콩의 특별 지위 박탈에는 비자 제한과 일부 수출 면허 예외 조치 중단 등이 포함되어 있고, 향후 관세 부과 등 보다 광범위한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 또 자유로운 환전을 허용하고 있는 페그제가 취소된다면 ‘금융 허브’로서의 홍콩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핵 옵션’이 될 것이다.

4. 미국은 왜 페그제를 폐지하려할까?

미국 정부는 페그제 무력화를 위해 홍콩 은행에 달러 구매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은행이 없는 홍콩에서 홍콩달러는 HSBC나 스탠다드차타드 등 시중은행이 발권하고, 시중은행은 홍콩달러 발권 규모에 상응하는 달러를 사실상 중앙은행 격인 홍콩 금융관리국(HKMA)에 내면 HKMA가 외환보유액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환율을 조절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HCMA의 미 달러화 접근을 제한한다면 이는 미 달러화에 대한 HKMA의 통화 연계 방어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조치는 홍콩에서 돈이 빠져나가도록 자극함으로써 통화에 더욱 큰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5. 페그제 폐지 가능성은?

블룸버그통신은 8일(현지시간),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보좌관들 사이에서 홍콩 달러 페그제 폐지(아마도 홍콩 은행들의 미 달러 매입 능력 제한)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이를 우려하는 행정부 내 다른 인사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페그제 폐지는 중국이 아니라 홍콩 은행과 미국에게만 피해를 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에디 유 HKMA 최고경영자도 "홍콩의 금융시스템이 세계 경제 금융시스템과 긴밀하게 통합된 상황에서, 우리 금융시스템에 타격을 주는 어떤 조치라도 취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질 것"이라며 페그제 폐지는 '종말론적' 시나리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미국 달러에 투자하고 미국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제 투자자들의 신뢰도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6. 우려의 징후는?

아직 우려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여러 건의 상장이 임박하면서 홍콩 달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통화는 허용 범위의 상한에 가깝게 거래되고 있다. 4월 홍콩의 은행 예금은 전달보다 0.8% 증가해 6개월 내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사스(SARS)가 유행했을 때나 미 연준이 금리를 인상했을 때, 그리고 지난 해 도시 전체가 시위로 불안했을 때에도 일정 기간 자본 유출이 발생했지만 궁극적으로 자본의 흐름은 대체로 안정을 유지했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4400억달러로 페그제를 방어하기에 충분하다”며 "미국이 중국에 제재를 가할 경우 중국 중앙은행도 통화스와프 라인을 통해 미국 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외환보유고가 3조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외환보유 국가다.

8. 홍콩이 미국 달러 대신 위안화 페그제를 도입할 가능성은?

HKMA는 이를 단언코 부인하고 있다. 미국 달러의 완전 환전이 가능하고 외환시장에서 대량으로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달러가 '가장 적절한 기축 통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위안화는 아직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 달러화는 국제준비통화 기능도 겸하고 있고 연준이 달러를 통해 물가 안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콩의 경기 사이클은 중국 본토보다 미국과 ‘더 동기화되어 있다’고 HKMA는 밝혔다.

9. 현재 홍콩 달러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금리다. 특히 홍콩 달러가 미국 달러와 나란히 움직이지 않을 때,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는데 히보(Hibor)라고 불리는 홍콩 달러의 은행간 금리가 계속 상승하는 경우, 투자자들은 달러화에 대항해 홍콩 통화를 사는 것이 유리하다. 히보와 미 달러 리보(Libor)와의 격차는 지난 3월부터 199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져 홍콩 달러는 2016년 초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7.75 홍콩 달러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HKMA는 4월 이후 페그제 붕괴를 막기 위해 홍콩 달러를 대량 매각했다.

10. 트럼프, 결국 하지 않을 것

미국 정부가 홍콩 달러 페그제 폐지를 검토할 것이라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그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의 브래드 벡텔 외환전략팀장은 "홍콩 금융시스템에는 미국과 여러 다른 나라들의 은행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홍콩 달러 페그제 폐지는 우스꽝스러운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애널리스트들은 페그제 폐지는 미국 달러를 중국에 대한 응징 무기로 사용하려는 미국의 시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가속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 달러화에 대해 페그제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게 위협적 신호로 작용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혼란을 조성하고, 미국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기축 통화로서 달러의 글로벌 역할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