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년 고대 로마시대, 황제의 자리를 놓고 술피키아누스와 율리아누스 장군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왠지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처럼 화려한 검술과 무예로 황제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예상과는 다른 과정이 있었다. 바로 황제의 자리를 경매로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율리아누스 장군이 술피키아누스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술피키아누스는 군인 한 명 당 20,000 세스테르세스(로마시대 화폐 단위)를, 율리아누스 장군은 군인 한 명 당 25,000 세스테르세스를 제시하여 입찰(?)에 성공하게 되었다. 율리아누스 장군이 제시한 금액은 요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0억 달러 정도의 거액이었다. 행복은 잠시뿐, 율리아누스 황제는 일단 거액 배팅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지 못했고 바로 로마 근위대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즉 율리아누스 황제는 잠깐의 승리가 자충수가 되어서,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된 ‘승자의 저주’에 빠지게 된 것이다.   

2020년 대한민국 경제계의 핫이슈 중 하나는 바로 항공운송업계의 인수합병(M&A) 문제다. 작년 말부터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되었고 최종인수자로 HDC 현대산업개발, 제주항공이 각각 선정되었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인수자인 HDC현산과 제주항공이 재정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 인수가 불발될 것이라는 예측이 돌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칫 두 부실 항공사를 인수했다가는 HDC현산과 제주항공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승자의 저주라는 개념은 1971년 미국의 종합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의 엔지니어인 카펜,클랩,캠벨이란 3명의 엔지니어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들의 논문에서, 1950년 멕시코만의 석유 시추권 공개 입찰 사례가 나오는데 당시 입찰자가 몰리면서 입찰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갔고 가장 높은 가격인 2000만 달러를 써낸 기업이 시추권을 따냈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의 가치는 1000만 달러에 불과해서 결과적으로 시추권을 따낸 기업은 막대한 손해를 봤다. 저자들은 이런 상황을 ‘승자의 저주’라고 명명(命名)했고 이 용어는 경영학에서 흔히 M&A 입찰에는 성공했지만 실패한 M&A 때문에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때 쓰여지고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M&A 불발설이 돌고 있는 피인수 기업인 아시아나항공도 한 때 승자의 저주의 대표적인 주인공이었다. 어쩌면 2019년에 아시아나항공이 M&A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된 계기도 바로 이러한 이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6조원의 인수가를 써내 승리했다. 그런데 금호아시아나가 6조원의 인수가 중 3조 5000억원을 재무적 투자자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고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2009년 12월에 대우건설 주식을 주당 3만4000원에 되사주겠다는 풋백옵션을 건 것이 화근이었다. 대우건설을 인수 후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대우건설 주식이 주당 1만원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약속대로 주식들을 되사기 위한 5조~6조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재계 8위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승자의 저주에 빠지게 되는 걸까?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으려면 M&A에 있어서 어떠한 의사결정을 해야할까? 첫번째로 자금의 흐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M&A에 있어서 의사결정의 주체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지는데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로 나누게 된다. 재무적 투자자는 재무적 이득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M&A 과정에서의 의사결정이 다소 안정적일 수 있다. 반면 전략적 투자자 관점을 지배하는 많은 요인이 오너의 개인적 신념, 사내정치, 이해당사자들과의 관계 등을 꼽을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과도한 차입을 통한 인수가 진행됐는데 재무적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이라는 예측과 부정적인 시그널을 계속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전략적인 관점이라는 미명하에 M&A는 계속 진행되었고 이는 곧 승자의 저주로 이어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략적 투자자들이 얘기하는 시너지 효과는 실제로 측정하기 매우 어렵고 이러한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1999년 ‘천상의 결혼’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추진되었던 독일의 다임러社와 미국의 크라이슬러社의 인수합병은 14억 달러의 시너지효과라는 말이 무색하게 9년만에 파경(?)에 이르게 되었다. 다임러의 고급 모델 라인업과 크라이슬러의 중저가 모델의 만남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시너지 불발로 인한 잘못된 만남이었다.

두번째로 인수 기업은 기업 인수 전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기업실사를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수 기업의 입장에서는 피인수 기업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다. 즉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수 가격에 대한 보수적인 접근법이 필요할 것이다.  오죽하면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회장도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는 입찰에 절대 참여하지 말고 입찰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고평가액을 정하고 거기서 20%를 빼며, 그 이후 단 1센트도 더하지 말라고 하였던가. 보수적인 입찰가 설정은 인수 후 통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을 포함시켜야 한다. 두 기업의 문화차이를 일으킬 수 있는 제반적인 비용도 인수가에 포함시킨다면 인수 후 승자의 저주에 빠질 확률이 줄어든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과정에 있어서 발생한 체불임금 문제, 자회사 지급보증 문제들도 어쩌면 인수가격에 포함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마지막으로 불경기에 이루어지는 M&A는 매우 위험하다. 많은 기업들이 M&A를 추진할 때 불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어쩌면 이 시기가 저렴한 가격에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호기(好期)일 수도 있다. 하지만 M&A는 유동성 확보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며 만약 이도 어렵다면 재무적 투자자나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이 따라줘야 하겠지만 불경기에는 이도 어려울 수 있다. 또한 M&A를 통한 효과는 불경기 시에는 더욱 더딜 수 있으며 투자에 대한 효과도 바로 나올 수 없는 만큼, 이 시기에는 인수 기업이 승자의 저주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 영국의 RBS(스코틀랜드 왕립은행), 인도의 타타그룹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인수합병을 추진하다가 직격탄을 맞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가 죽기 전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억울하다며 근위대에게 항변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승자에게는 반드시 축복이 따른다는 맹신(盲信)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