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랜드> 올리버 벌로 지음, 박중서 옮김, 북트리거 펴냄.

저자는 부자와 권력자의 돈세탁을 돕는 전 세계 ‘자산(資産) 보호 산업’과 조세 피난처들의 실체를 파헤친다. 이와 함께 런던 시티의 무국적 달러화와 무기명 채권, 파나마의 유령 회사, 영국령 저지 섬의 신탁, 리히텐슈타인의 재단까지, ‘머니랜드’를 키운 금융공학의 정체를 밝힌다. 머니랜드는 올리가르히(oligarch, 신흥 부자)들이 부정하게 얻은 재산을 조세당국의 감시를 피해 은닉해 두는 곳을 말한다.

영국의 탐사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우크라이나의 한 올리가르히가 남긴 돈의 자취를 뒤쫓아, 런던에서 출발해 키프로스를 거쳐 키예프까지 간다. 취재 과정에서 적도기니, 앙골라, 나이지리아 등 세계의 가장 가난한 국가들에서 거액의 자금을 쥐어짜내 서구에 은닉하는 국제적 부패의 복잡다단한 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사악한 도둑 정치가와 그 자녀들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책에는 런던과 취리히, 월 스트리트의 영리한 금융인과 법률가, 부동산 중개인들의 조세 회피 및 탈세, 돈세탁 수법도 소개된다. 개발도상국과 비민주주의 국가의 올리가르히들은 일부 국가에 수백만 파운드를 주고 시민권을 얻거나 외교관 신분증을 발급받는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층 인사는 대리모 계약으로 일본 여성을 통해 아이를 출산하여 일본국적을 취득시킨 다음 재산을 상속해줬다.

후진국의 도둑 정치가들이 자국에서 훔친 돈을 역외에 투자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선진국의 최상급 은행가, 변호사, 회계사, 홍보 전문가, 로비스트 등이 조력한 것이 큰 문제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2000억유로(약 273조원)에 달하는 러시아의 검은 돈이 덴마크의 최대 상업 은행인 단스케은행에서 돈세탁되었다.

저자는 “자유 질서에 대한 진정한 위협은 가난한 이민자들이 아니라 무책임한 돈”이라면서 “역외 강도들은 세계를 약탈하고 있으며, 이런 약탈은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불평등을 촉진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