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얼마전에도 언론에서 정치인과 기업의 위기관리적 사과에 대해 깊이 있는 기사를 게재한 걸 본적이 있습니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 사과라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요. 실제로 현장에서 보실 때 기업의 사과가 그렇게 큰 효과가 있었는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단 기본 개념부터 정리했으면 합니다. 위기관리 시 가장 혼돈스러운 개념이 몇 개 있습니다. 위기관리가 곧 사과인가 하는 것이죠. 아닙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방식 중 하나라고 하면 맞습니다. 위기의 유형, 상황, 맥락, 이해관계자 구도 등에 따라 그에 관련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매우 다양하게 나뉩니다. 사과는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 외에도 해명, 반박, 수용, 침묵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지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는 사과를 주된 위기관리 방식으로 보는 경향이 생겼을까요? 우리 기업 위기 유형에 있어 ‘유죄(guilty)’에 기반한 것들이 상당수를 차지 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문제를 일으켰고, 그에 대한 책임이 다분하다면 그에 대해 당연히 사과를 해야 하지요. 그래서 위기관리가 곧 사과라는 혼동이 생겨난 것입니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 어떤 사과가 잘 된 사과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진짜 잘 된 위기관리는 사과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기업이 사전이나 직전에 해당 위기를 인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기의 존재나 발생 가능성을 전혀 모른 채 당하는 경우는 없지요. 진정으로 위기관리를 잘하는 기업은 위기를 발생시키고 나서 좋은 사과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과할 일이라면 미연에 즉각 개입해 해결해 버립니다.

진짜 좋은 사과를 할 줄 하는 기업은 심각하게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명언도 있습니다. 평소에 사과할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리 통제해서 좀처럼 사과할 일은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의사결정을 하면 사과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하면 심각한 사과를 할 경우가 생기겠지. 이런 평소 두려움과 경계심이 사과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죠.

기업이 위기관리 관점에서 바람직한 사과를 한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과는 어찌 보면 위기관리의 종결을 의미하기 보다는 위기관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과 메시지 속에 들어있는 반성과 개선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과제가 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런 실행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사후 위기관리를 위한 고통이지요. 제대로 된 기업은 그 엄청난 고통을 기억합니다. 고통스럽게 사과할 일을 자주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동일한 위기로 동일한 사과를 하는 고통을 최대한 피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사과는 그렇게 큰 고통입니다.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위기관리는 사라지고 사과만 남는 그런 현상은 정상이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위기관리만 남고 사과가 사라지는 현상이 상대적으로 더 바람직한 것이지요. 잘못된 사과는 주어를 빼거나, 문제를 확정하지 않거나, 공감이 떨어지거나, 진정성이 없거나, 개선책을 밝히지 않거나, 타이밍을 잘 못 맞춘 사과가 아닙니다.

사과해야 하는 위기를 무심하게 만드는 기업. 평소 민감성은 없으면서 기술적으로 잘 된 사과의 레토릭만 찾아 공부하는 기업. 이전 사과의 고통을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유사한 사과 주제를 만드는 기업. 비슷한 사과를 계속해서 하는 기업의 사과가 가장 잘못된 사과입니다. 잘된 사과란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