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는 ‘목격자’다. 만약 사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차량에서 이런 목격자의 역할을 해내는 장치로 ‘블랙박스’가 떠오르고 있다.

# 직장인 이호준 씨는 갑자기 끼어드는 난폭한 운전자 때문에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상향등으로 경고를 해도 소용이 없고 경적을 울리자 어느새 또다시 끼어들어 약을 올리기까지 하는 것이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뒤차가 들이받으면 더 과실이 크다는 점을 악용한 ‘악덕 운전자’의 행태다. 이 씨는 차량용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을 이용해 처벌이 가능한지 정부 종합 민원사이트에 의뢰했고, 경찰은 상대방에 안전운전 의무 위반으로 범칙금을 부과했다.

뿐만 아니다. 우연히 다른 차량의 사고가 블랙박스 동영상에 찍혀 도움을 주기도 하고, 내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교통사고 감소효과, 사고 증거, 보험사기 예방은 물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블랙박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이처럼 블랙박스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블랙박스 시장 또한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산업조사 전문업체인 IRS글로벌이 최근 내놓은 ‘블랙박스 시장전망과 참여업체 사업 전략’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용 블랙박스 시장 규모는 2008년 6만5000대(약 130억원)에서 2011년 100만대(2000억원)규모로 성장했다. 올해 시장규모는 약 200만대(3800억원)로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적게는 130여개, 많게는 300여개에 달하는 업체가 블랙박스 제조에 참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팅크웨어, 파인디지털, 큐알온텍, 현대모비스, TG삼보, 코원시스템, 차바이오앤디오스텍, 하니웰 등의 업체들이 HD, 풀HD 영상과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블랙박스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특히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고성능과 편의기능을 동시에 갖춘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블랙박스 화질은 VGA급에서 최근 고화질을 보장하는 HD와 풀 HD로 변화하고 있으며, 부가기능인 음성안내, 모션감지, 자동주차모드, 시큐리티 램프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여기에 개인 고객의 욕구에 맞춘 보급형/고급형, 일반형/보안형 등 다양한 기기로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9월 확정한 ‘교통안전 Global Top10’ 달성을 위한 제7차 국가교통안전기본계획(2012~2016)’에서 차량 내 블랙박스를 통해 무선으로 GPS, 에어백 전개와 임팩트 센서정보를 긴급구조센터에 전송하는 ‘e-call(사고발생 자동신고)’ 도입 방침을 밝혔다. 유럽연합(EU)은 지난 09년부터 이를 의무 장착해 왔다.

이외 미국도 2011년부터 4.5톤 이하 모든 차량에 블랙박스를 부착할 것을 지정한 바 있다. 일본은 2004년 자동차용 블랙박스 도입을 실시했으며 대형 택시업체를 중심으로 자동차용 블랙박스 장착을 의무화하고 있고, 중국도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모든 트럭, 버스, 택시에 첨단 운행기록장치 부착을 의무화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차량용 ‘디지털 운행기록장치’가 주로 사업용 차량에, ‘영상기록장치’가 일반 차량 중심으로 보급되고 있다. 사업용 차량에 한해 지난 2009년 말부터 ‘디지털 운행기록장치’장착을 의무화하는 법령이 개정돼 시행중이다.

일반 차량에 대한 블랙박스 장착을 강제하는 법적 규제는 없는 상태다. 지난해 국회 발의된 신차 대상의 주행영상 기록기 장착 의무화를 담은 ‘교통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재 계류 중으로 알려졌다. 사생활 침해 등 벌써부터 제기되는 부작용을 해소하는데 업계와 정부, 사용자가 힘을 모아야하는 것 역시 이러한 블랙박스 ‘산업’의 잠재 성장력을 염두에 둔 이유다.

이효정 기자 h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