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본 기자가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존경하는 일본의 정치인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우에스기 요잔’이었다. 우에스기 요잔, 그는 240여년 전의 인물이다. 그것도 일본의 조그마한 지역을 통치했던 작은 지도자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케네디가 요잔을 꼽았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요잔은 일본의 요네자와 번이라는 곳에 살았다. 당시 일본에서 ‘번(藩)’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군(郡)과 도(道) 등과 같은 행정구역이다.

이곳을 통치하는 지도자를 번주(藩主)라고 했다. 당시 요네자와 번의 번주가 통치하던 지역은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주민들이 야반도주하는 일이 있을 만큼 민생이 피폐한 상태였다. 번주는 민생을 어지럽힌 채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번주에겐 외동딸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외동딸은 장애인이었다. 그래서 데릴사위인 우에스기 요잔이 번주의 자리에 앉게 됐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17세에 불과했다.

백성들은 그가 과연 요네자와 번을 잘 이끌 수 있을까 걱정했고, 때문에 그를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추운 겨울, 국경지역을 지나던 중 요잔이 타고 가던 가마에 불 꺼진 화로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는 화로를 뒤졌다. 화로 속 밑바닥에서 불씨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매우 중요한 영감과 상상이 떠올랐다. 불씨를 발견한 그는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가마 밖 신하들이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신하들이 모아두고 이렇게 말했다.

“요네자와 번은 이 불 꺼진 화로와 같다. 그런데 내가 불씨를 발견했다. 그 불씨를 지피겠다. 내가 앞장설 테니 우리 모두가 함께 요네자와 번을 한번 살려보자.”

요잔은 망해가는 번의 불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신하 중 한 사람이 요잔 번주에게 화로를 맡겨 달라고 했다. 요잔 번주의 생각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불씨 지피기 운동이 확산되자 요네자와 번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서로 믿지 못하던 불신풍조가 어느새 사라졌고 요네자와 번이 개혁의 용광로로 변한 것이다.

이때 있었던 번주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출간한 책이 《우에스기 요잔》이다. 우리말로는 《불씨》로 번역돼 있다. 한때 김영삼 전 대통령도 이 소설을 읽고 청와대 직원들에게 읽으라고 추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최근 한 달 새 일터를 잃은 사람이 30만명이나 늘어났다. 특히 주력 노동계층인 30대와 40대들이 고용한파의 직격탄을 맞아 취업률이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들마저 직장에서 내몰릴 상황이 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을 240여년 전 요네자와 번에 비유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떤 이들은 부동산이나 증시, 수출 현장을 보면 이제 막 경기가 살아날 조짐도 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비판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앞으로 대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그 여파가 중소기업까지 파급되면 실직공포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 아침에 요네자와 번주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다시 선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번 선거는 이미 지역 현안을 외면한 채 사상 최악의 구태선거로 치닫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여기에다 전직 대통령이 구치소 신세를 져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측근 비리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언제 우에스기 요잔 같은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아시아경제신문·이코노믹 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