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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에서 맨손으로 일어난 50년, 삼성SDI의 역사백년기업으로 가는 길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SDI가 1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이에 맞춰 삼성SDI는 지난 50년간의 주요 역사를 담은 '삼성SDI 톺아보기'를 공개하며 불모지에서 맨손으로 싸워 난관을 극복한 삼성SDI의 역사와 미래 비전을 재조명했다.

1970년 '삼성-NEC주식회사'로 출범한 후 삼성SDI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로 일궈낸 한국기업의 저력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 1970. 1.21. – 가천공장 건설 현장. 출처=삼성SDI

삼성-NEC주식회사 출범
국내 전자사업은 1960년대 본격적으로 태동했으나 대만처럼 중간 부품 조립 수준을 넘지 못했다. 지금의 전자강국 코리아를 생각하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시절이다.

기술과 자본은 부족했고, 기다리던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가지고 있는 것은 있었다. 바로 호기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경영진과, 불모지에서 맨주먹으로 들고 일어설 준비가 되어있는 이 땅의 산업역군들이다.

1970년 1월 20일, 일본기업 NEC와의 협력으로 삼성SDI의 전신인 삼성-NEC주식회사가 출범한다. 이후 울주군 삼남면 일대 가천지구에 공장을 건설한 후 1970년 7월 23일 국내 최초 진공관 생산에 돌입한다. 어쩌면 무모할 수 있는 사업이었고, 예상대로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생산 초기에는 수율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특유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공장 가동 1년 10개월만에 월 100만 개 생산을 돌파했고, 1970년 말에는 연간 매출액도 12억원을 넘어섰다.

▲ 1970. 4.23. – 이병철 선대회장과 일본 NEC의 고바야시 사장. 출처=삼성SDI

문제는 넥스트 진공관, 즉 다음 먹거리다.

삼성-NEC는 빠르게 움직였다. 1970년 10월, 3억여 원을 투자하여 흑백브라운관 공장 건설에 착수해 12월 5일 흑백브라운관 첫 생산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린다. 이어 1974년 3월 28일 삼성-NEC는 사명을 ‘삼성전관공업주식회사(Samsung ElectronDevice Co., Ltd.)’로 변경하고 NEC와 결별해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성과는 1975년 1월 20일 나온다. 국내 최초로 '이코노(Econo) 브라운관’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 브라운관을 채용한 ‘이코노 TV’를 1975년 8월 출시했고 순식간에 국내 TV 시장을 석권했다. 이코노 TV가 없었다면 13분기 연속 글로벌 시장 1위를 자랑하는 QLED TV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다음 도전은 컬러브라운관 사업. 삼성전관은 1977년 10월 NEC와 TV용 컬러브라운관 제조에 관한 기술제휴계약을 체결하고, 여세를 몰아 1979년 4월 27일 국내 최초로 20인치 TV용 컬러브라운관을 시생산한다. 결과는 대성공. 1980년 이후 본격적인 컬러TV 방송시대가 열리며 삼성전관의 행보는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그 연장선에서 이병철 선대회장은 컬러브라운관 사업에도 속도를 내기로 결심한다. 실제로 1984년 6월 경영이사회에 참석한 이병철 선대회장은 1988년까지 컬러브라운관 연 1000만 개 생산체제의 구축을 지시하며 글로벌 점유율 10% 달성 목표를 제시한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왔으나, 결과는 역시 대성공이다. 삼성전관은 1988년 수원사업장 연간 480만 개, 울산사업장(당시 가천사업장) 연간 720만 개 등 컬러브라운관 연간 1200만 개 생산체제를 구축해 명실상부 업계의 중심에 우뚝서기에 이른다.

▲ 1979. 4.27. - 국내 최초 20인치 TV용 컬러브라운관. 출처=삼성SDI

1999년 사명을 바꾼 삼성SDI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2000년 삼성SDI의 컬러브라운관 세계시장 점유율은 20%에 달했고 당시 인터넷 사용 확산에 따른 PC시장의 확대, 고화질, 대화면, 평면제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수요 급증과 맞물리며 폭풍성장을 거듭한다.

2004년 7월 삼성SDI가 세계 최초로 32인치 빅슬림(Vixlim) 브라운관을 개발한 동력이 여기에 있다. 동급 브라운관보다 두께를 15cm나 줄인 빅슬림으로 32인치 TV용 브라운관 두께의 ‘마의 벽’을 극복하며 양산 1년 9개월만에 500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이러한 전격전이 벌어졌다면 잠시 쉬어갈 여지도 있겠지만, 도전은 계속된다. 다음은 평판디스플레이 시장이었다.

삼성SDI는 LCD(액정표시기), VFD(형광표시관), PDP(플라즈마표시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평판디스플레이 트렌드가 불어오는 것에 착안해 브라운관의 성공전부터 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1984년 삼성전기의 LCD 부문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LCD 사업준비에 착수한 가운데 2002년 2분기 기준 글로벌 휴대폰용 모바일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 23.3%로 세계 1위를 달성하기에 이른다.

VFD는 일본이라는 벽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삼성SDI는 1986년 8월 일본 다음으로 VFD 개발에 성공했으며 1997년 9월 VFD 업체 중 세계 최초로 QS-9000 인증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TV용 디스플레이로는 PDP 개발에 주력했다. 삼성SDI는 2000년 사업팀을 발족하자마자 63인치 제품을 개발하며 자신감을 키웠고, 2004년에는 무려 102인치 PDP를 개발하며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여기에 소형디스플레이 부문의 OLED 가능성에 주목해 1997년부터 차근차근 기초체력을 쌓아올리기도 했다. 삼성SDI는 2000년 4월 OLED 사업을 위한 TF를 발족한 이후, 2002년 동급의 평판디스플레이와 비교해 무려 1000배 이상 빠른 응답속도와 3배 이상의 색재현성을 지닌 1인치 256컬러의 PM-OLED를 개발했고 2007년 10월 세계 최초로 AM-OLED 양산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현재 세계를 호령하는 '메이드 인 삼성 TV 신화'의 토대가 되어 주었다.

▲ 1998.10.15 - 세계 최고 용량의 원형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 첫 출하. 출처=삼성SDI.

배터리, 무한의 도전
삼성SDI의 손에서 커가던 모니터 사업은 1994년 삼성전자로 이관된다. 그리고 삼성전자 등에서 연구하던 배터리 사업을 삼성SDI가 인수하며 본격적인 배터리 기반 에너지 사업이 시작된다.

초기에 니켈수소 배터리를 연구했다. 그러나 니켈수소 배터리의 경우 성능의 문제가 많았고 이에 삼성SDI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주목하게 된다. 지금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셀 당 전압이 니켈계 배터리에 비해 3배 이상 커 휴대용 전자기기에 적합한 배터리로 여겨진다.

삼성SDI는 새로운 도전을 맞아 전방위적인 '공격앞으로'를 외친다. 그 결과 1998년 당시 최고 용량인 1650mAh 원형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고 1999년에는 1800mAh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다. 이어 2000년 천안사업장에 연면적 1만3200㎡의 배터리 생산 공장을 준공하며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건다.

본게임은 배터리 공장 준공과 동시에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이 전 세계 시장의 94%를 점유하고 있던 일본 업체들과 국내 및 중국 업체들의 시장 진출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 가운데 삼성SDI는 2001년 12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두께인 2.8mm 각형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02년에는 최고 용량인 2200mAh 원형 배터리를 양산했으며 이후 최고 용량의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여세를 몰아 2003년 전지 제2기동 준공식을 가지고 6개 신규라인을 증설해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다.

2004년 8월 12일은 삼성SDI 배터리 개발사에 매우 중요한 날이다. 8대 기본지키기와 12대 일류화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2008년까지 안전성 등 모든 분야에서 1등 품질을 달성해 시장 점유율을 20% 이상 달성해 나가겠다는 'K-812 일류화 전략'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불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SDI는 보란듯이 2005년 배터리 사업 시작 이래 최초로 흑자를 기록하고 2008년 시장 조사기관 IIT(現 B3)가 세계 2차전지 기업들을 상대로 한 종합평가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른다. 본격적으로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지 10년 만인 2010년 소형 배터리 왕좌에 오르는 순간이다.

삼성SDI는 멈추지 않았다. 2012년 슬림 각형 배터리인 ‘프리머스(Primus)’를 개발해 슬림 디자인 하드웨어 폼팩터 트렌드를 안착시키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비 IT 기기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를 다수 개발해 생태계 확충에 성공했고 고출력 ‘18650’ 배터리에 이어 '21700'이라는 기술 혁신에도 성공한다. 이러한 성공 DNA는 현재 스마트워치, 스마트밴드, 무선이어폰과 같은 다수의 웨어러블 제품들에 삼성SDI의 소형 배터리가 들어가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 로드맵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만나며 K-배터리 동맹을 구축하는 가운데,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 전략에도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SDI는 2005년 소형 배터리 사업에서 흑자를 올리던 즈음 전기차용 배터리 전략도 구체화시킨다. 당시 일본 배터리 회사들이 사실상 시장을 평정한 가운데, 그나마 존재하던 배터리 회사들도 자동차 제조사들의 하청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삼성SDI는 그 이상을 원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전략은 연대.

삼성SDI는 전동공구용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독일 보쉬와 연합전선을 꾸린 바 있다. 자연스럽게 삼성SDI는 보쉬와의 연대에 주목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기로 결정한다.

보쉬와 함께 2008년 합작사인 'SB리모티브(SB LiMotive)'를 설립하고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 비록 삼성SDI가 보쉬가 가지고 있던 SB리모티브의 지분 50%를 전량 인수하며 아름다운 동행은 끝났으나, 당시의 연대는 삼성SDI가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 안착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 2018. 9. 1 - 보쉬와 공동으로 SB리모티브(주) 설립. 출처=삼성SDI

다음 파트너는 BMW다. 2008년 순수 전기자동차 전용 모델을 개발·출시하는 프로젝트인 '메가시티비히클(Mega City Vehicle)'을 추진하던 BMW는 배터리의 안전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고, 그 손을 삼성SDI가 잡았다. 2009년 6월 삼성SDI가 BMW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되는 깜짝 성과를 누린 배경이다. 고작 시장 진입 1년차 신입생이 BMW의 파트너가 되자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2019년 11월 삼성SDI는 BMW에 2021년부터 10년 간 약 35억달러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하며 기존의 파트너십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삼성SDI는 기초체력 다지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9년 9월 삼성SDI와 보쉬의 주요 경영진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사업장 기공식을 연 장면이 중요하다. 2010년 3월 가동을 시작한 울산사업장은 2011년 상반기부터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본격 생산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도 활발하다. 삼성SDI는 중국 전기자동차 시장의 성장성을 미리 내다보고 중국 민영 자동차 부품기업인 '안경환신'을 파트너로 선정, 2014년 6월 글로벌 배터리 제조 기업 최초로 합작법인 '삼성환신(서안) 동력전지유한공사'를 정식 출범시켰다.

2016년 8월 30일 헝가리 정부청사에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한편 기존의 헝가리 PDP 생산 공장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생산 공장으로 재건축 하기로 결정한다. 삼성SDI는 헝가리를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의 유럽 생산 거점으로 결정하고 부다페스트에서 북으로 30km 떨어진 괴드시의 약 33만㎡ 부지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을 위한 신규 투자를 진행하는 한편 '울산-서안-헝가리’로 이어지는 글로벌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트라이앵글을 완성했다.

2015년 2월에는 오스트리아의 '마그나 슈타이어 배터리 시스템즈(MSBS, Magna Steyr Battery Systems GmbH & Co OG, 마그나)’를 인수했다.

성과는 빠르게 나오고 있다. 2009년 12월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인 미국 델파이와의 하이브리드 트럭‧버스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시작으로 2016년 만-스카니아(MAN-SCANIA)에 상용차용 배터리를 공급했으며, 이후 2018년 다임러그룹 자회사 에보버스(Evobus)에 전기버스용 배터리를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2019년 7월 볼보그룹과 차세대 e-모빌리티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는 발판이 되었다는 평가다.

2019년 9월에는 독일의 배터리 팩 제조사 아카솔(AKASOL)에 2020년부터 2027년까지 13GWh 규모의 배터리 셀과 모듈을 공급하기로 결정되는 등, 삼성SDI의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 제주 ESS 실증단지. 출처=삼성SDI

ESS, 기회는 온다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의 핵심 아이템 중 하나인 ESS(Energy Storage System)는 말 그대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저장창고 역할을 하는 장치다. 최근 폭발 사고에 휘말리며 논란이 커지고 있으나, 미래 에너지 활용에 있어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2009년 10월 기흥사업장에서 ESS사업 TF가 가동을 시작하며 삼성SDI의 도전이 시작된다. 그러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에너지를 저장한다는 생소한 개념이 수주에 발목을 잡았고, 사업은 초반 공회전을 거듭했다.

2010년 제주에서 진행한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에 ESS 과제 사업자로 참여한 데 이어 대구에서 진행된 ESS 실증사업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선에서 기회를 엿봤다.

기회는 일본에서, 그리고 가정용 ESS 시장에서 시작됐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현지에서 ES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삼성SDI는 가정용 ESS의 일본 진출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파트너는 니치콘이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SDI의 가정용 ESS는 일본을 넘어 유럽 시장에 위력을 떨치게 된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은 ESS 업계에 있어 일대 전기가 된 이벤트로 불린다. 탈원전과 탈석탄을 추진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신재생 에너지 확대, 국가 차원의 지원정책 발표에 의한 ESS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고품질의 배터리를 기반으로 유럽의 전력용과 가정용, 미국의 전력용과 상업용, 일본의 가정용 등 시장과 고객 각각의 특성을 파악해 최적화된 솔루션을 공급하는 발 빠른 전략으로 두각을 보인다.

2015년 7월 미국 발전회사인 듀크와 풍력 연계 ESS 프로젝트 수주를 비롯해 GE, ABB 등과도 공고한 협력체제를 맺었으며 미국 알리소 프로젝트가 성공하며 삼성SDI의 ESS 사업은 날개를 단다. 2018년 삼성SDI는 영화 쥬라기공원 등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하와이의 카우아이섬에 100MWh ESS 설치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사실상 시장을 평정한다.

중국 시장도 진출한다. ESS의 핵심부품 중 하나인 현지 기업 PCS 업체인 선그로우와 손을 잡았고 2015년 6월 본격적인 동행을 시작한다.

▲ 하와이 카우아이섬에 설치된 ESS 시설. 출처=삼성SDI

에너지와 소재에 답이 있다
삼성SDI는 2014년 7월 1일 제일모직의 소재사업을 통합하며 에너지 및 소재 통합 기업으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다만 긴 여정의 시작은 1990년대 제일모직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당시 제일모직은 1980년대 말 케미칼 사업 진출에 이어 전자재료 사업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외부로부터 반도체 회로를 보호하는 포장재료인 EMC(Epoxy Molding Compound)에 집중하는 한편 꾸준한 관련기업 인수합병이 이뤄졌고, 2002년 구미사업장이 문을 열며 본격적인 전자재료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편광필름 사업은 2007년 1월 국내 기업인 에이스디지텍의 지분을 인수하고 2011년 8월 인수합병을 단행하며 시작된다. 나아가 OLED에 있어 2011년 구미사업장에 OLED 소재 양산설비를 구축한데 이어 독일의 OLED 소재 전문업체인 노발레드(Novaled)를 인수, OLED 발광층의 핵심재료인 인광그린호스트도 개발에 성공한다. SOH(Spin-on Hardmasks)는 2005년 개발에 착수해 2006년 8월 양산에 성공한다.

▲ 독일 노발레드 신사옥. 출처=삼성SDI

오롯이 사람, 그리고 사람
현재 삼성SDI는 전영현 사장을 필두로 백년기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1970년 울산에서 진공관 공장의 첫 삽을 뜨고 현재의 에너지 소재 시장 강자로 군림하는 역사의 순간마다 직원이, 사람이 오롯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연매출 10조원을 돌파하는 한편 강력한 연구개발로 두각을 보이기도 한다. 니켈 비중을 높이고 코발트 비중을 낮춘 ‘하이니켈계 양극 소재’ 기술에 집중하는 등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행보를 모색하는 중이며, 이 역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자평이다.

▲ 삼성SDI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는 삼성SDI 임직원들. 출처=삼성SDI

불모지에서 맨주먹으로 50년의 역사를 끌어온 삼성SDI의 저력이며, 미래다. 삼성SDI는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50년 역사 동안 변화와 혁신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면서 "지금 도전과 극복의 새 역사를 써내려갈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20.07.01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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