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아버지는 사랑하기만 하는 아들 말고 영리한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준다”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부친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지주사 지분을 전량 양도받은 뒤 한 누리꾼이 남긴 댓글 내용이다. 최근 한국타이어그룹에서 벌어진 일을 잘 설명한다는 평가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최대 주주가 됐다. 조양래 회장이 장남인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이 아닌,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사실상 그룹의 미래를 맡긴 셈이다. 

조 회장이나 한국타이어그룹 등 모두 이번 주식양도 결정의 의중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타이어 시장이나 언론계 일각에선, 조현범 사장이 친형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을 누르고 부친으로부터 경영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란 해석이 주를 이룬다.

조양래 회장이 이번 결정을 통해 형제간 갈등의 불씨를 없애고 가업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려는 전략을 전개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 경우, 조양래 회장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온 가운데 두 형제에게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기르도록 조장한 결과 형제간 ‘힘의 균형’을 나눈 셈이다.

1972년생인 조현범 사장은 한국 나이 27세던 1998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전신인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뒤 3년 만에 광고홍보팀 팀장을 맡는 등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했다. 이후 전략기획본부, 경영기획본부, 경영운영본부 등을 거치며 ‘경영 승계 수업’을 수행해왔고 2016년부터는 지주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이전 이름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서 경영기획본부,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도맡았다. 그룹에 몸담은 지 정확히 20년 된 2018년부터 한국타이어 대표이사를 맡으며 최고경영자(CEO)로서 본격 궤도에 올랐다.

조현범 사장보다 두 살 위인 조현식 부회장은 동생보다 1년 일찍 한국타이어에 입사했지만 CEO직은 6년 앞선 2012년 맡아 수행했다. 같은 해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조 부회장은 2018년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등 경영 승계 가도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두 형제가 그간 맡은 직급이나 소속으로만 놓고 비교할 때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의 경영 승계 가능성에 비중 실렸다. 그간 장남이 주로 가업을 이어온 국내 재계 관행에 비춰볼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두 형제가 각자 보유한 지분 규모는 지금까지 거의 동등했다. 실제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양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올해 1분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두 형제의 각사별 지분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경우 조현식 0.65%, 조현범 2.07%로 각각 확인됐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은 조현식 19.32%, 조현범 19.31%로 기록됐다.

지분 집중시켜 형제갈등 싹 제거…한국타이어 “형제 경영 이어갈 것”

형제의 지분은 한동안 비슷한 균형을 이뤘으나, 최근 조양래 회장의 결단으로 균형은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더 절묘한 균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이 결정으로 형제의 난이 발생할 가능성은 오히려 줄었다는 평가다. 조 회장이 지주사 지분을 두 형제 가운데 한 명에게 몰아줌으로써, 또 다른 주요 주주인 조 회장 차녀 조희원(10.82%)씨가 형제 갈등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여지가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희원씨가 조현식 부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줘도 30.14%로 조현범 사장 지분 규모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현범 사장이 지주사 최대 주주에 오르더라도 오너로서 독단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두 형제가 그간 지주사·계열사 각사의 임원자리를 겸직해왔지만 CEO로서 공과를 내왔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이사회나 소액 주주의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하긴 어렵다. 또 두 형제가 그룹 배후에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진 조양래 회장의 지도 아래 적응해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오너의 단독 경영 기조로 급격히 전복시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조현범 사장이 한편 최근 각종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음에 따라 극도로 신중히 처신해야 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 4월 업무상 횡령 및 배임수재 등의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6억1500만원 등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조 사장은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의 항소로 2심도 준비해야하는 실정이다. 조 사장을 둘러싼 외부환경이 녹록치 않은 가운데 당연히 그의 행보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작년 4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따라, 같은 해 11월 8일 이후 5억원 넘는 규모의 횡령·배임·공갈 등 혐의를 저지른 뒤 유죄로 인정된 피고인의 취업이 일정 기간 제한되지만, 조현범 사장은 이번 혐의에 대해 작년 11월 21일 검찰로부터 피소했기 때문에 해당 시행령 개정안의 적용 대상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조 사장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한 상태에서 자칫 힘의 균형추가 형인 조 부회장을 향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를 방지하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조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30일 한국타이어그룹이 ‘형제 경영’을 지속할 것이라며 업계의 갈등 의혹을 불식시킨 점도 이 같은 조 회장의 ‘빅 픽쳐’에서 파생된 현상으로 분석된다.

다만 조현범 사장이 무리하게 조 회장을 설득해 아슬아슬한 경영권 균형을 파괴했고, 이에 다른 형제들이 조만간 연합군을 구성해 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경우 형제의 난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한편 한국타이어그룹은 이날 “향후 (조현식·조현범) 형제 간 경영 분야 구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형제경영은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