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는 한편 화웨이가 제3국을 통해 수급받는 반도체 물량까지 막으며 총력전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화웨이와 오랫동안 동맹을 맺었던 대만 TSMC도 흔들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코로나19 책임론에 이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FCC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화웨이와 ZTE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업으로 지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앞으로 미국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화웨이 및 ZTE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금지된다. 소규모 업체들이 화웨이 및 ZTE와 멀어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 자체를 겨냥하는 분위기도 연출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의 문건을 인용, 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그리스·헝가리·이탈리아·포르투갈·독일 등 유럽 동맹국들에 뉴텍 배제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와 하이크비전 등 중국 기업들에 규제를 가한데 이어 이번에는 사람 및 화물 이용 정보 플랫폼 기업까지 압박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이 모든 압박의 키워드를 '국가안보'에 집중시켜 맹공을 퍼붓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어느 한 쪽의 손을 잡을 경우 그에 수반되는 반대편의 보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시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핀셋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 켄 후 화웨이 순환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화웨이에 출렁인다
화웨이는 미국의 압박이 심해지며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삼성전자에 손을 내민 적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화웨이와의 공동전선이 부담스럽다. 

대만 디지타임즈와 중국 기즈모차이나 등 중화권 외신은 18일 화웨이가 미중 갈등에서 빚어진 미국의 압박에 반도체 수급이 막힌 상태에서 삼성전자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으려 타진했으나, 삼성전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만약 화웨이와 손을 잡고 5G칩을 제공한다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다만 화웨이와 파운드리 동맹을 맺을 경우 미국의 제재에 반한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화웨이 압박에 대한 반사이익도 누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가 발표한 1분기 5G 통신장비 시장점유율 집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3.2%의 점유율을 기록해 지난해 4분기 10.4%의 점유율 대비 2.8%P 상승했다. 삼성전자의 높은 기술력과,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따라 몇몇 나라가 화웨이 장비를 포기하자 생긴 반사이익이다.

화웨이, 절대 죽지 않는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의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점도 보인다. 삼성전자가 화웨이 반사이익으로 점유율을 올렸으나, 화웨이도 점유율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1분기 35.7%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고 이는 지난해 4분기 대비 0.4%P 점유율이 올라간 수치다. 전체 RAN 시장 점유율에서도 화웨이는 32.8%로 탄탄한 존재감을 보였고 심지어 LTE 장비 시장에서는 에릭슨을 누르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화웨이의 저력은 내수시장과 기술력, 최근 보안우려를 털어낸 장면 등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거대한 내수시장이다. 실제로 중국 시장에서 노키아 및 ZTE의 점유율이 하락했고, 이를 화웨이가 흡수한 정황이 보인다. 미국과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중국 내수시장은 애국소비의 패턴이 선명해지고, 이를 기점으로 화웨이는 지난 4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깜짝 1위 점유율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만, 화웨이에게는 내수 시장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기술력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5G 정국에서 화웨이의 기술력은 독보적이다.  독일 특허 데이터베이스 기업 IP리틱스에 따르면 중국이 전 세계 ‘5세대’(5G) 관련 표준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 SEP)의 34.02%를 보유하는 가운데 화웨이가 전체 SEP의 15.05%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SEP는 휴대폰 사업을 하는 데 있어 대체할 수 없는 핵심 기술 특허를 의미한다. SEP를 보유한 기업은 안정적인 특허 수입을 확보하게 되며 5G용 기지국이나 스마트폰 등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화웨이의 독보적인 기술력은, 글로벌 5G 정국에서 화웨이와 멀어질 경우 로드맵 자체를 수립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미국 정부는 최근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논의를 일정정도 허용하는 방안을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가 최근 '화웨이 제재: 통신, 글로벌 반도체 및 미국경제에 미칠 악영향'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며, 미국 반도체 업계가 화웨이 제재로 인해 약 70억달러의 사업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한 장면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화웨이의 존재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화웨이는 매년 200억달러 이상의 반도체를 구매하며 이는 전체의 약 5%(4000억원)에 이른다. 화웨이의 구매 감소는 곧 미국을 포함한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최근 미-중 무역전쟁 확대로 세계 반도체 수요가 약 40% 쪼그라들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화웨이는 3GPP 5G 표준 정립 기여도 1위 기업이기도 하다.

심지어 화웨이 백도어, 특히 화웨이 국가안보 침해설도 실체가 없다.

화웨이가 5일 세계 최초로 5G 기지국 장비에 대해 국제 보안 CC(Common Criteria) EAL4+인증을 최종 획득해 시선이 집중된다. CC인증은 정보기술의 보안 기능과 보안 보증에 대한 국제 평가 기준 ISO 15408이다. 미국, 유럽, 캐나다 등 국가마다 서로 다른 정보보호 시스템 평가기준을 연동하고 상호 인증하기 위해 통합하여 제정된 공통 평가기준으로 한국을 포함한 31개 CCRA가입국에서 유효하다. 미국 기업도 본 인증을 받았으며, 화웨이가 CC인증을 받는 순간 화웨이 백도어설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 출처=한국 화웨이

협력할 것은 혁력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 질서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화웨이와의 전략적 제휴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무조건적인 반 중국정서에 기대어 화웨이를 도매급으로 비판하기에는 그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마저도 화웨이 제재에 나서고 있으나 최근 그 동력이 저하되는 한편, 이에 따르는 막대한 피해를 입는 중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더욱 냉철하게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할 이유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한 반사이익은 누리면서도, 단기적으로 곤란에 빠진 화웨이의 손을 일정정도 잡아 전략적 제휴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미 강력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화웨이와 거리를 두기에는 불가능하고, 미국 정부의 압박에도 화웨이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입장에서 '압박의 동조'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필요한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며 한국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비판이라는 감정의 배설은 한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남는 것은 없고 오히려 상처만 깊이 새겨진다.

무대도 마련됐다. '깍쟁이' 미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코로나19 정국에 빠진 한국을 외면해도, 한국 화웨이는 스스로 한국의 친구를 자청한 사례도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3월 한국 화웨이가 전국 장애인시설의 장애인 및 종사자들을 위한 감염 예방 위생용품 구입을 위해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 1억원을 기부했으며 대구 의료진들을 위한 응원키트, 확진자들을 위한 생필품 구호키트 제작 등을 위해 희망브릿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억원을 추가로 기부했기 때문이다.

한국 화웨이 멍 샤오윈 CEO는 “코로나19 상황이 발생하면서부터 마음이 매우 아팠다. 기부를 했지만, 마스크 확보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감염 예방에 취약한 장애인들과 학교의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추가로 마스크를 기부하게 되었다”며, “한국 화웨이는 한국의 책임 있는 기업시민으로서 한국 사회와 함께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애플 및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기업들은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코로나19와 관련해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한국 화웨이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점을 환기시켜줬다. 어차피 화웨이 압박 실효성도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 한국도 전혀 다른 발상의 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