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여러 얘기를 나누는 친구와 만나 한참을 함께 했습니다.

결혼해서 집을 떠난 녀석들이 자기들이 그간 썼던 짐들을 안가지간다고 불평합니다.

그걸 얘기하게 된 것은 집에 거실과 아들 방에만 에어컨이 있는데,

여름 다가오니 방에 있는 에어컨을 쓰고 싶은데, 떠나간 아이들 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거죠.

그러며 한마디 덧붙입니다.

‘자식이 뭐라고 그 방에만 에어컨을 달아주었는지...’

공감이 가는 얘기죠?

그래도 살짝 심술이 났습니다.

‘두 녀석을 다 보내고 자랑 질 하는 것 같은 디...’

그 밤 집에 와 출가한 딸애의 방을 들어갔습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에 안 맞는 옷들이 다 있는 수준이니, 어디 길게 외출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꽃이를 보다가 딸애가 적어놓았던 오답노트를 책 더미 속에서 보았습니다.

살짝 펼쳐보다가 그대로 덮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부모노릇하면서 수없이 많은 오답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에 그랬습니다.

여전히 쑥스럽지만 가끔 결혼 주례를 보게 됩니다.

많이 혼잡스럽고, 너무 형식화된 결혼식 자리라서

신랑 신부에게 무언가 얘기를 전하고,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게

많이 제한되고, 또 사실 그런 기대도 안 하는 게 요즘 예의고,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암시처럼 꼭 한마디는 짧게라도 전하게 됩니다.

우선은 새 출발하는 신랑 신부를 위해 양가 부모님께 그들을 그냥 놓아주고,

많이 지켜봐달라고 말합니다. 결혼해서 삼십여 년 넘게 살아온 입장에서 돌아보면,

참으로 오답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부모 역할은 고사하고,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

둘이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몰라 참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먼저 신랑 신부 둘이 단단해져야 함께 걸어갈 신뢰라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사이 부모를 돌아볼 여유가 없지 싶습니다.

그러기에 부모 입장에서 놓아주고, 둘이 적응할 때까지 지켜봐 주십사 부탁드리는 겁니다.

또 신랑 신부에게도 주문하죠.

아이들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시간을 먹고 사는 겁니다.

그에 맞는 희생을 할 수 있도록 둘이 마음을 모아야하는데,

그런 부모자격증(?)을 스스로 발급할 수 있을 때까지 둘이 신뢰를, 사랑을 우선 쌓으라고.

그러고 나서 아이를 가지라고 말이죠.

아이 떠난 방에 들어와 아이의 오답노트를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같이 여기까지 살아온 집사람에게, 또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속으로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말을 되뇌어 봅니다.

‘지금부터라도 나 아닌, 집사람 우선, 아이들 우선으로 살자’라고도 마음먹어봅니다.

훗날 스스로 기록할 오답노트가 최소화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