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경기침체의 장기화에 대비해 국내 대형 은행들에게 배당금 상한을 설정하고 자사주 매입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출처= Wikipedia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이 25일(현지시간),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국내 대형 은행들이 악성부채로 7000억 달러(840조원)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며 배당금 상한을 설정하고 자사주 매입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연준은 34개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연례 스트레스 테스트(annual stress tests) 결과를 발표하면서, 실업률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경제가 몇 분기 내에 회복되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올 경우, 미국 은행들이 심각한 대출 손실을 입어 안정적 재정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 완충장치가 잠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국내 은행 시스템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스트레스 테스트는 올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에 따른 침체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연준은 미국 은행들이 위기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건강하지만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 제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오는 29일 다음 분기 배당계획을 발표할 계획이었던 은행들은, 최근 4분기 동안의 평균 분기 이익보다 더 큰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또 3분기 자사주 매입을 금지했다. 대부분의 대형 은행들은 이미 앞서 2분기 매입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자사주 매입은 미국 은행들이 주주들에게 자본을 돌려주는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산업 전체에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연준은 현재의 스트레스를 반영하기 위해 은행들에게 하반기 업데이트된 자본 계획을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중앙은행은 코로나바이러스 분석 결과를 개별 은행별로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울프 리서치(Wolfe Research)에 따르면 6대 은행 중 웰스파고만이 연준이 정한 새로운 기준을 넘는 배당금 지급 조건을 충족했다. 이에 따르면 웰스파고는 3분기에 지난 4분기 평균 예상 이익의 150%까지 지급할 수 있다. 웰스파고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대해 언급을 회피했다.

연준은 배당금 지급을 제한하는 것이 경기침체 시기에 은행들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이번 분석에 따르면 미국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 은행들이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업 채권, 상업용 부동산 등에서 뿐만 아니라 자동차 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등 소비자 부채에서도 손실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충분한 자본이 준비되어 있지만 일부 은행들은 최소 자본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연준 내부에서는 연준의 이번 조치로는 은행 재정 건전성을 유지키기에 부족하다며 배당금 지급 자체를 전면 중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라엘 브레이나드 연준 이사는 별도의 성명에서 “대형 은행들이 자본을 고갈시키도록 허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전 연준 관리들과 민주당 의원들도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악화돼도 기업들의 대출 신청을 계속 수용하기 위해서는 연준이 은행들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연준에서 은행 규제를 감독했던 다니엘 타룰로는 “연준의 이번 조치는 너무 약하다"고 말하고 “연례 스트레스 테스트의 의미가 크게 쇠퇴했다”며 빈판적 입장을 보였다.

연준의 금융규제 업무의 핵심 인사인 랜달 퀄스도 "상황이 허용된다면 연준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 제한에 대한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 경제를 마비시킨 이후 미국 대형 은행들은 예상되는 부실 대출에 대비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비축해 왔다. 실업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로 치솟았던 4월 이후 현재가지 빚을 갚지 못한 미국인이 1억 명이 넘었다.

최근 몇 주 동안 식당, 공장등이 점진적으로 재개장하면서 경제가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애리조나, 텍사스,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같은 큰 주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전망이 다시 흐려졌다.

연준은 이번 분석에서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해 V자형(빠른 회복), U자형(완만한 회복), W자형(이중경기침체·더블딥) 등 세 가지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이른 바 'V자형' 회복의 경우 향후 9분기 동안 거의 5600억 달러의 대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U자형'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7000억 달러의 대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고, 경기가 회복됐다가 다시 폭락하는 ‘W자형’에서는 6800억 달러의 대출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실업급여 확대, 추가 경기부양책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연준은 덧붙였다.

한편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발표에 앞서 이날 미 통화감독청(OCC)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의 고위험 투자를 막기 위해 도입한 이른바 볼커룰(Volcker rule) 완화해 벤처캐피털과 유사 펀드에 대한 투자 확대를 용이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승인했다.

계열사 간 파생상품 거래 시 증거금을 쌓도록 한 규정도 삭제했다. 볼커룰 규제 완화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사안이다. OCC는 이번 법안 개정을 통해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것보다 지리적으로나 산업적으로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하고 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