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한전선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올해로 창립 65주년을 맞은 대한전선은 국가 기간산업과 가장 밀접한 전선(電線) 제조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으면서 사세가 기울었고 2015년 사모펀드에 인수됐다. 이후 재무구조 개선 노력으로 경영 여건이 회복됐는데 사모펀드 매각 5년차에 접어든 최근 업계에서는 대한전선의 매각설이 대두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등 해외 자본들도 대한전선에 관심을 보인다는 말도 나오면서 대한전선의 행보에 대해 기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리한 인수합병...'휘청'

대한전선은 무리한 인수합병이 기업에게 얼마나 큰 독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대한전선은 자사의 전선·케이블 사업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워왔다. 이를 기반으로 1981년에는 대한종합건설을 합병해 건설업에 진출했고 1982년에는 한국데이타통신의 설립에 투자했고 1992년에는 중국 법인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남아공 전선업체와 합작해 업계 최초로 아프리카에 진출하는가 하면 2007년 충남 당진에 스테인레스사업부를 신설해 대한ST로 분할시켰다. 

본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반경의 사업 확장은 대한전선을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전선의 경쟁력이 약해진 것은 2002년부터다. 무주리조트, 남광토건, 쌍방울 등을 인수합병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적자를 떠안으며 경고등이 들어왔다. 계속 누적되는 적자는 대한전선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쌓였고, 결국 채권단의 의지에 의해 대한전선은 자율협약 관리에 들어갔다. 대한전선은 2015년 사모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된다.

이후 대한전선은 전선산업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비영업자산과 부실 계열사 정리에 총력을 다했다. 서울 남부터미널을 시작으로 독산동 우시장 부지, 파인스톤 골프장 등 전선산업과 무관한 곳들을 매각해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다. 이에 사모펀드 매각 전 2500%에 육박하던 부채비율은 200%대로 낮아졌고 4500억원에 육박하던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는 100억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 대한전선의 주력제품 초고압 케이블. 출처= 대한전선

기업계의 '계륵'    

IMM 프라이빗에쿼티가 대한전선을 인수할 당시만 해도 대한전선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대중공업, 고려제강, KCC, SM그룹, 풍산, 호반건설 등 굵직한 기업들이 대한전선의 인수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전선은 상황이 다르다. 사모펀드 피인수 5년차에 접어들면서 또 한번의 매각설이 나오고 있는데, 문제는 인수를 검토하는 국내 기업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전선의 기술을 탐내는 중국 등 해외자본들은 꾸준하게 인수 의사를 밝히고 있다. 

기업들이 대한전선을 두고 망설이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상당 부분 회복했으나 여전히 재정적으로 불안한 부분이 남아있는 대한전선의 상황이다. 대한전선은 과거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해 누적된 부채를 적자로 떠안았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대한전선의 부채비율은 약 274%였다. 물론 가장 높았을 때(약 2500%)와 비교하면 여건은 확실히 나아졌으나 여전히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은 남아있다. 

여기에, 최근 대한전선은 올해까지 10년간 매출 없이 손실만 기록하고 있는 무역·투자업 부문 자회사 홍콩법인의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대한전선 측은 이에 대해 "수익성이 부실한 자산의 정리일 뿐 본사의 재무상태와는 무관하다"라고 설명은 하고 있지만, 기업계에서는 이마저도 불안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기업계가 느끼는 불안감은 최근 10년 대한전선의 주가 추이로도 나타난다. 10년 전 11만원대(최고가 11만6099원, 2010년 7월 23일 기준)까지 올라갔던 대한전선의 주가는 현재 '600원대'다.    

▲ 최근 10년 대한전선의 주가 추이. 출처= 네이버 금융
▲ 대한전선 분기/연간 실적. 출처= 네이버 금융

기업들이 대한전선을 두고 망설이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사업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점, 국내 건설 경기 침체와 인프라 수요 감소 등의 부담 등이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전선 제조업 특유의 낮은 수익성이다. 통상 전선업계의 평균 수익률은 2%에서 3% 수준이다. 업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는 하나, 국내 기업들이 인수의 매력을 크게 느낄 정도의 수익성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국내 전선업계 1위인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인수하는 방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일 기업이 전체 시장점유율 50%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독과점 방지법 때문에 실제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몇몇 중국기업이 대한전선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한전선을 둘러싼 상황이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다. 해외에 매각하자니 기술 유출에 따른 국부유출 논란이 두렵고, 국내 기업들은 낮은 수익성 부담으로 인수하려 들지 않고, 경쟁 기업의 인수는 '시장 독과점'이 문제가 되는 삼각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이 상황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해외 대자본에 의한 인수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라면서 "국가 기간산업 육성과 독보적 기술 유출의 방지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면 정부와 기업계가 함께 방안을 고민하는 등의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