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SK바이오팜의 등장으로 제약바이오 업계가 한껏 달아올랐다. 지난 6월 24일 마감한 일반 청약에 약 31조원의 증거금이 몰렸다. 6년 전 제일모직이 세운 역대 최고 금액인 30조649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일반청약 경쟁률 기록도 새로 썼다. 이틀간 진행한 일반 청약 경쟁률은 323 대 1로 공모 규모 5000억원 이상 종목 중 역대 최고였다.

대기업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실패 사례가 속출했던 제약바이오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한때 CJ그룹과 롯데그룹, 아모레퍼시픽 등 굴지의 기업들이 야심차게 제약바이오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얼마 못가 손을 털고 나왔다.

하지만 SK의 100% 자회사인 SK바이오팜은 남달랐다. 수차례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신약 개발부터 임상, 허가, 판매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글로벌 종합제약사로 발돋움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는 SK바이오팜이 IPO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기술력을 꼽는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 수면장애 치료제 ‘솔리암페톨’ 등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허가받은 치료제 2종을 보유한 신약개발 전문기업이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임상시험을 가지고 공수표를 날리는 다른 기업과 달리 확실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달라진 업계 분위기도 대기업의 진출을 자극한다. 최근 제약바이오 산업의 무게중심은 전통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사람이나 다른 생물체에서 유래된 세포, 조직, 호르몬 등을 이용해 개발한 의약품이다. 합성의약품에 비해 구조가 복잡해 개발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탄탄한 자본력을 토대로 좀 더 긴 호흡으로 신약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대기업이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막대한 자본과 고급 인력 풀을 앞세워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바이오팜처럼 임상시험부터 최종 허가에 이르기까지 다른 회사에 기술을 이전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례가 계속 나온다면 전체 산업의 역량도 커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대기업의 제약바이오 사업 강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산업 전체적으로 대기업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경우 역량 있는 소규모 바이오벤처들이 설 곳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대기업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제약사업 축소나 매각을 전격 결정한다면, 산업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실제로 CJ그룹 제약 계열사인 CJ헬스케어는 지난 2018년 4월 한국콜마에 매각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중심의 산업 재편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제약바이오 ‘빅3’로 불리는 기업들이 나오면서 시장의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자동차 산업을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놓은 대기업의 저력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