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산업부장] 카풀 기반 스타트업 풀러스가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주력 서비스인 카풀을 전면 무상 서비스로 전환한다고 공지하며 사실상 사업을 접는 분위기다.

풀러스는 국내 모빌리티 전쟁의 불씨를 당겼다. 2016년 5월 야심차게 시동을 걸었으나 카풀 유상운송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산 바 있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서비스는 2017년 6월 22일 엄청난 도전을 받는다. 풀러스 교통문화연구소의 첫 프로젝트로 출퇴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시도해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풀러스는 현대인의 출퇴근 시간은 특정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함을 보이기 때문에, 카풀의 유상운송 범위도 그에 맞춰 넓어져야 한다고 발표했다. 결국 유상 서비스 시간을 늘리겠다는 발상에 업계는 발칵 뒤집혔으며, 이를 시작으로 택시업계와 모빌리티 업계의 싸움은 카카오 모빌리티, 쏘카 VCNC 타다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맞다. 풀러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빌리티 전쟁의 신호탄인 셈이다.

이러한 ‘신호탄’ 풀러스의 종말은 국토교통부가 모빌리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택시업계와 협력하지 않으면 모빌리티 혁명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겁박한 순간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득권을 앞세운 택시회사들은 논리와 이성은 접어두고 붉은 띠를 두른 채 죽음의 시위를 이어갔고, 이제 국내 모빌리티 시장은 ‘비싼 콜택시를 부르는 것에 만족하는 시장’으로 왜곡됐다. 카풀이라는 이색적인 실험을 이어간 풀러스에게는 너무 힘겨웠던 시장이다.

풀러스만 힘에 부쳤던 시장도 아니다. 이미 획일화된 국내 모빌리티 시장은 하나의 원칙, 즉 택시업계와 협력하는 거대 기업만 생존할 수 있으며 다양성을 타진하는 스타트업의 몫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스타트업도 의미 있는 비즈니스 구조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최소한 시동이라도 걸어야 의미가 있든 그렇지 않든 시도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 국내 모빌리티 시장은 스타트업에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매우 적극적으로 그들을 막아서고 있다. 완장을 찬 정부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스타트업들의 시도를 짓밟고, 그 뒤에는 택시업계가 웃고 있다. 이건 처참한 비극이다.

얼마 전 산업은행과 무역협회가 주최한 한 스타트업 행사장을 찾았다.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행사장 무대 위로는 소위 ‘성공했다’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등장해 락스타와 같은 인기를 뽐냈다. 국내 커머스 생태계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모 대표의 경우, 행사에 모인 청중과 스타트업 관계자들에게 “나는 시리즈A까지 100번의 피치를 했다. 포기하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갑자기 풀러스 생각이 났다. 역경을 딛고 모든 이들의 갈채를 받는 화려함을 보는 순간, 왜 풀러스의 몰락이 생각났을까. 참고로 100번의 피치를 했다는 모 대표는 국내 유수의 대기업 최고경영진들과 탄탄한 인맥을 자랑하는 한편 미국 유명 증권사 골드만삭스, 컨설팅 회사 맥킨지 앤드 컴퍼니 등 쟁쟁한 글로벌 투자기업 출신이다.

이 정도는 돼야 정부에 당하지 않고 구사업 종사자들의 ‘태클’도 피하며 의미 있는 비즈니스 시도를 위한 시동이라도 걸어볼 수 있는 것일까. 아마 이런 뒤틀린 생각에 풀러스를 떠올렸던 것 같다. 성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정상에 선 모 대표의 당당함에 박수를 치지는 못할망정 삐딱한 생각이나 하다니. 씁쓸하다. ‘스타’ 스타트업의 퇴장과 등장이 교차한 것에 대한 씁쓸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