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양8-S.7, 100×80.3㎝ Digital print, Acrylic on canvas, 2008

김구림의 세계는 역사상 아방가르드가 걸었던 이상과 꿈을 보여준다. 시간의 본성이 지니고 있는 부동과 반전의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를 여실히 드러낸다. 전기(1950~60년대), 중기(1970~80년대), 후기(1990~2000년대)로 나누어진다.

 

◇음양의 상대성

김구림의 후기시대는 한마디로, 음양의 상대성을 빌려 우리 시대가 갖는 난맥상을 부각시키려 한데 의의가 있다. 일체가 충돌하고 굉음과 불협화음으로 들끓는 후기산업시대의 사회상을 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가 등장시킨 모티브들은 모두가 우리시대의 삶의 이모저모를 반영하는 것들로 비정함과 미스터리를 동반했다. 이미지의 소재들은 소비사회의 특징인 물질주의에 종속되고 노예가 되어버린 ‘일차원 인간들’[하버트 마르쿠제]의 이목구비나, 사지가 파현화 되었거나, 몸체가 소멸되었거나, 동체가 찢겨졌거나, 욕망의 눈과 입술만이 존재하는, 요컨대 미로에서 방황하거나 해체되는 인간상을 다루었다.

화면 안에서 요동하고 부유하는 기표들은 화면 밖의 비정한 현실을 적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당시 ‘작업노트’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나의 최근작들은 현대의 인간상, 특히 여성을 주제로 한다. 그들의 얼굴이 정상이 아니다. 눈 코 입 팔 다리가 비정상 형태로 되어있다. 이것들을 여러 가지 기계적인 방법으로 재조립한다. 디지털 프린트로 캔버스에 전시하고는 여러 색의 물감으로 아무런 형상이 없는 선과 면으로 붓질한 것도 있다.

화면 안의 거대한 입술이나 눈은 현대여성의 상징이다. 오늘의 여성들은 자신이 아닌 것을 좋아한다. 본래의 모습을 버리고 현대 사회가 빚어낸 성형이라는 조작을 통해 공허는 메우려는 욕망이 그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공장에서 출고되는 개성 없는 물건들의 진열장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사회의 병폐를 상징시키고자 기존의 예술 가치들을 의도적으로 파괴한다. 문명으로 인한 현대의 혼탁한 인간상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작업노트, 2009에서 일부 번안」

▲ 음양8-S.91, 100×80.3㎝ Digital print, Acrylic on canvas, 2008

반세기에 걸쳐 그가 일구어낸 세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물들의 유전을 각인시키는데 있었다. 그가 다루는 사물들은 공간으로 주어지기 보다는 시간 속에서 명멸하는, 유체 같은 파편들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그의 언급으로 표현하면 ‘물거품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이요, ‘보이는 것 같으면서 보이지 않는, 없으면서 있는 것 같은 어렴풋한 것들’이다.

이 사실은 그가(KIM KU LIM,김구림 화백,김구림 작가) 근작 전에 등장시키는 것처럼, 모티브를 절개하거나 파편으로 산개시키는 자태에서 잘 드러난다. 이것들은 명백히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고 찰나의 모습으로 공간화 되는, 부재와 현전의 교대를 보여준다. 이를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의 시간의식, 물질의식, 그리고 욕망하는 주체를 압축시켜 보이고자 하였다.

△글=김복영 미술평론가(Kim Bok Young, Art critic)

△전시=통인화랑 통인옥션갤러리(Tong-In Gallery Seoul, TONG-IN AUCTION GALLERY), 4월3~24일,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