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실업률은 코로나에도 별 변화가 없다. 일본의 실업률은 2월 이후 0.2%p 오른 2.6%에 그쳤다.     출처= Kyodonew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일본을 덮쳤을 때 식당에서 일하는 싱글맘 나가타 마리는 고민이 컸다.

“아이들 학교는 문을 닫았는데 내가 아프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러나 나가타는 미국의 수백만 서비스 산업 종사자들과 달리, 자신의 고용 안정성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심하고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돌보기 위해 휴가를 낼 수 있었다.

코로나 대유행은 전 세계 경제를 황폐화시켰고, 사업장의 문을 닫게 했으며, 지출을 둔화시켰다. 그 피해는 나라마다 달랐지만 미국과 일본의 실업 수치보다 그 차이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 것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3개월 동안 급등해 4월에 거의 15%로 정점에 달했고 5월에 13.3%로 다소 진정됐지만,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3.5%였던 2월보다 4배나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일본의 실업률은 코로나에도 별 변화가 없다. 일본의 실업률은 2월 이후 0.2%p 오른 2.6%에 그쳤다. 임금과 근로시간도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경제가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일본 경제는 올해 첫 3개월 동안 2.2% 감소하며 침체에 빠졌다. 4월 데이터는 더 암울하다.

그러나 일본의 사회적, 인구학적, 역학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경기 침체가 대량 해고를 초래하는 것을 막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인구 감소와 빠른 고령화로 일본의 고용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일손이 부족한 곳 중 하나였다. 코로나가 대유행하고 있는 지금도(지난 4월 기준) 기업들은 구직자 100명당 일자리 수가 120개로 구인난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코로나바이러스 환자의 급격한 증가는 겪지 않아서 경제의 많은 부분을 폐쇄하지 않을 수 있었다. 비상 사태를 선포한 한 달 반 동안 기업들에게 자발적 폐쇄를 했지만 지난 5월에 종료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실업률이 낮은 이유는 그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노동에 대한 태도와 정책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일본연구소(Japan Research Institute) 거시경제연구센터(Macro Economic Research Center)의 이시카와 도모히사 소장은 “미국에서는 경기가 나빠지면 사람들이 줄줄이 해고되고 실업률이 치솟지만, 일본 고용주들에게 사람을 해고하는 것은 심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골드만삭스의 일본 담당 이코노미스트 나오히코 바바는 "일본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과 달리, 주주들의 이익보다 직원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호황기에도 일본 기업들은 근로자 급여 인상을 제한하고 이익을 대차대조표에 축적하지요. 불황기가 오면 기업들은 호황기에 쌓아 둔 이익잉여금을 활용해 해고를 자제하고 사람들의 일자리를 안전하게 보장합니다.”

▲ 일본의 사회적, 인구학적, 역학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경기 침체가 대량 해고를 초래하는 것을 막는다.    출처= Kyodonews

일본 기업이 노동자를 끝까지 보호할 것이라는 사회적 기대도 한 몫 한다. 일본 기업들은 종종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 시간으로 직원들을 압박하지만 기업들은 그 대가로 평생 동안 고용 안정을 제공하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만일 기업이 그런 사회적 계약을 위반하는 경우 평판에 심각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지난 3월 몇몇 고용주가 코로나로 21명의 대학 졸업생들에게 취업 계약 제의를 철회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본의 소셜 미디어는 이 회사들을 비난하는 분노의 글로 넘쳐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업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한 직원을 해고할 수 없도록 한 강력한 법적 판례들이 노동자 친화적인 태도를 강화시켰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기간 동안에도 이러한 친노동적 요인들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 3월 코로나가 일본에 만연하기 시작했을 때, 나가타가 다니는 회사 스프스톡도쿄(Soup Stock Tokyo)는 모든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보존하고 임금을 전액 지불할 것을 약속했다.

다음 달인 4월에 일본 정부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며 개인들에게 가급적 집에 머무르고 기업들은 근로 시간을 단축하라고 요구했을 때, 회사는 나가타를 포함해 1600명의 직원들에게 휴가 조치를 내렸는데, 이 때 일본 전역에서 약 420만 명의 근로자들에게 이 같은 조치가 내려졌다.

일본 법은 기업들이 강제 휴가 조치를 내린 직원들에게 임금의 60%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가타의 회사는 근로자들의 경제적 피해를 완화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나오는 정부 보조금과 무이자 대출을 이용해 원래 임금과의 차액을 보충했다.

나가타는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집에 머물면서 매일 30분씩 가상 회의에 참석했다. 그녀는 그 동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두 아이를 돌보는 전념할 수 있었다.

일본 정부가 비상사태를 해제한 5월 중순, 나가타는 회사에 복귀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일본의 이런 문화가 기업들이 새로운 직원을 고용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어(한번 채용하면 쉽게 해고할 수 없으므로) 오히려 젊은 근로자의 선택권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기업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동력을 재조정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세계 경제에서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일본 기업들은 고용보장을 덜 받고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단기계약 근로자들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어느 정도 융통성을 얻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코로나로 위기가 오자 그런 노동자들은 대량으로 해고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노동인구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실직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패턴은 지난 4월 97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등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도 드러났다.

앞으로 몇 달 동안, 특히 서비스 산업에서 일본 기업들의 실업률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를 중시하는 일본 기업 문화의 진정한 테스트는, 미국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예정인 정부의 보조금이 끝나는 9월에 판가름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경색된 노동조건이 일본의 실업률을 계속 낮게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 부문에서도 오랫동안 일손 부족을 겪고 있다. 비상사태가 한창인 4월에도 의료부문에서는 63만명의 신규 정규직이 늘어났다.

골드만삭스 바바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위기의 시기에도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은 기업들에게 융통성있는 고용으로 공격적 성장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는 비판론자들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일본의 노동제도가 해고가 쉽지 않고 평생 근로를 보장하는 경직된 노동시장이라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에는 분명한 이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