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경기부양책과 실업급여를 통해 중소기업과 개인들에게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부으면서 미국 은행들의 예금 계좌에 2조달러의 현금이 유입됐다.    출처= Business Inside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부자들이 더욱 부자가 된다는 말이 이제 은행에 해당되는 말이 되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을 처음 강타한 이후 미국 은행들의 예금 계좌에 2조달러의 현금이 유입됐다. 사상 최대 폭의 증가다. 6월 3일 현재 미 시중은행의 예금은 15조 4000억 달러(1경 8700조원)에 이른다.  

4월 한 달 동안만 해도 미국 시중의 은행들의 예금액은 전년 같은 시점에 비해 8650억 달러(1050조원)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는 어찌됐든 코로나 재난지원금 때문이다. 정부는 경기부양책과 실업급여를 통해 중소기업과 개인들에게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무제한 채권매입 프로그램 등 금융시장 지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는 정책 결정자들로 하여금 2인 가구에서부터 글로벌 기업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로 현금 다발을 뿌리게 만들었다.

FDIC에 따르면, 예금 증가의 3분의 2 이상은 25개 대형 금융기관들 몫이었다. 그것도 업계 최상위 금융기관에 집중되었다.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씨티그룹(Citigroup) 같은 미국 최대 은행들의 1분기 자산은 업계의 다른 은행들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났다.

금융분석기관 오토노머스 리서치(Autonomous Research)의 브라이언 포란 애널리스트는 "어쨌든 이같은 저축 증가는 완전히 비정상”이라며 "은행들이 현금이 넘쳐 마치 스크루지 맥덕이 돈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겨우 살아남은 미국 메가뱅크들이 오늘날 예금의 주요 수혜자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난 3월 주정부들이 지역 봉쇄령을 내리자 보잉과 포드 등 기업들은 즉시 수백억 달러를 신용대출로 인출했고, 이 돈이 그런 대출을 해 준 은행들에게 우선 맡겨졌다.

대형 은행들은 또한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6600억 달러의 급여지원 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으로 많은 고객들을 서비스했다. 은행들의 기존 고객 대부분이 이 프로그램의 대상자이다 보니 이 돈이 그런 고객들이 거래하며 대출을 받는 은행에 먼저 입금된 것이다.

대형 은행들은 또 블랙록(BlackRock)이나 피델리티(Fidelity) 같은 자산운용사의 투자를 관리하는 신탁은행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어, 연준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이 수십억 달러의 담보부 증권들을 싹쓸이하면서 예금이 크게 증가했다. JP 모건과 씨티그룹은 대규모 전담 부서까지 두고 있다.

▲ 6월 3일 현재 美 시중 은행들 저축 예탁금이 15조 4000억 달러에 달했다.   출처= 연방준비제도 경제데이터(FRED) 
▲ JP모건 체이스,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등 4대 은행의 예금 증가율, 2019년 4분기 vs. 2020년 1분기.    출처= Autonomous Research   

물론 메가뱅크들은 가장 많은 소매 고객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몇 달 동안 집에서 갇혀 지내면서 돈을 쓸 선택권도 없었던 보통 사람들이다. 미국 경제분석국(U.S. Bureau of Economic Analysis)은 지난 4월 개인 저축률이 33%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4월 개인소득은 1200달러의 재난지원금과 실업급여 덕분에 10.5% 증가했다.

그 모든 돈이 은행 계좌로 들어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5000달러 미만의 소액 계좌의 잔고가 코로나 대유행 이전보다 최대 40%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지점망을 갖고 있는 메가뱅크들은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로 인해 부쩍 늘어난 풍부한 저축의 수혜를 톡톡히 누려왔다. 이들은 저금리 시대에 소비자들이 가장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자금 공급원으로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오토노머스의 포란 애널리스트는 그러나 경기 침체 속에서 대출에 신중해진 은행들이 돈을 빌려줄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은행들이 '솔직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대출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예금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저축 증가가 정부가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취한 조치의 신호라면, 정부의 역사적인 돈 쏟아붓기 정책의 궁극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지켜볼 일이다. 달러화 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이 겹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또 주식 시장의 거품을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포란 애널리스트는 예금자들에게 한 가지 신호가 더 즉각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은행들은 당신의 돈이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에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금리를 더 내릴 것이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