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재계에 전해지는 속설이 하나 있다. 바로 “기업 상황과 소속 프로야구팀 성적은 반대로 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속설일 뿐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어떤 기업에 대해 유독 많은 이슈들이 몰릴 때 속설이 들어맞는 경우가 있어 재계 사람들은 이를 신기해하곤 한다. 특히 요즘처럼 국내 대기업 관련 이슈가 많을 때는 더욱 그렇다. 격동의 시대를 버티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상황과 올시즌 각 기업 소속 프로야구 팀 성적 간 상관관계를 알아봤다.  

*각 팀 순위는 6월 19일 기준이다. 
       
LG그룹과 정규리그 2위 LG트윈스  

LG트윈스의 모기업인 LG그룹(이하 LG)은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악재가 있었다. 특히 LG화학 인도 공장과 국내(대산) 공장에서 연이어 일어난 안전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LG에게 치명적인 악재였다. 아울러 현재 경찰이 추궁하고 있는 LG전자 신입사원 채용과정의 비리 의혹, 코로나19로 인한 대외 수출 여건의 악화 등은 LG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악재에도 LG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구광모 회장이 제안하는 미래지향적 계획들을 비전으로 설정하고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현재 LG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구 회장이 마곡 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현장 연구 책임자들에게 전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구광모 회장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곧 실패”라면서 “새로운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 LG그룹 구광모 회장(사진 가운데). 출처= LG

LG트윈스는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이후 안정적 전력을 완성해가며 올 시즌 초반에 리그 순위 상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2017년 류중일 감독 부임 이전 오랜 기간의 부진한 성적에 지쳤던 LG팬들은 시즌 초반 LG가 보여주는 강한 모습에 열광하고 있다. LG의 골수 팬들은 ‘신바람 야구’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지난 1994년을 떠올리고 있다.       

두산그룹과 정규리그 3위 두산 베어스 

두산그룹(이하 두산)은 120년 역사상 역대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두산건설의 실적 부진,그를 떠안은 두산중공업 그리고 중장비 사업부문 계열사 두산밥캣까지 어려움에 처하면서 두산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룹의 상징과 같은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건물의 매각설에 이어 두산베어스의 매각설까지 나온 것으로 두산이 처한 사태의 심각성은 충분하게 설명된다. 두산 채권단은 1조3000억원의 자본을 투입해 우선 두산중공업의 운영 정상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현재 두산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위기에서는 아주 '살포시' 벗어난 상태다. 그러나 두산은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두산베어스는 ‘만년 우승후보’라는 별명답게 시즌 초반 약팀들을 상대로 승수를 챙기며 리그 상위권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대기록(?)을 목전에 둔 한화 이글스에게 연패를 당하며 “올 시즌의 두산은 예전만 못하다”라는 이야기까지도 나왔다. 그러나 두산은 여전히 강하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정규리그 5위 KIA 타이거즈 

현대자동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으로 경영진 세대교체가 이뤄진 후 ‘자동차’라는 범주에 국한됐던 사업을 ‘모빌리티’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은 ‘친환경’이 전 세계 기업들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에 맞춰 친환경 수소차, 전기자동차 등의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최근 정 수석부회장이 직접 나서 친환경 연료 배터리 부문에서 삼성전자, LG화학 등 재계 경쟁사들과 협업 관계를 이루려는 시도로도 잘 나타나고 있다.      

KIA타이거즈는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직후부터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이에 8년 만에 팀을 리그 최정상의 자리에 올린 김기태 감독이 2019년 시즌 도중에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타이거즈 운영진은 메이저리그 에이스 출신 맷 윌리엄스를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으로 올리고 코칭스태프를 전면 교체하는 특단의 대책을 실행한다. 다만 선수 전력의 큰 보강이 없었기에 KIA 팬들은 감독 교체 후 첫 시즌인 올 시즌의 성적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보다 안정된 투수진을 갖추면서 KIA는 시즌 초반 선전하며 4~5위 중위권 성적을 유지한다.   
       
롯데그룹과 정규리그 6위 롯데 자이언츠 

롯데그룹(롯데) 지난 5년 동안 국내 재계에서 가장 많은 수난을 겪은 기업이다.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해 한반도 사드배치 부지 제공에 대한 중국의 집중 보복, 신동빈 회장의 법정구속, 반일 불매운동 여파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까지 그야말로 롯데에게 지난 5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신 회장의 경영복귀와 동시에 롯데의 지배구조는 그를 중심으로 정리됐고 이후 롯데는 화학, 유통 부문의 사업 확장을 도모하며 천천히 지난날의 아픔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불안해진 글로벌 정세 속에서 롯데의 사업 확장에도 여러 제약이 생겼다. 특히 지난 수 십여 년 간 오프라인에 치중해 온 롯데 유통사업의 온라인 전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2018년, 2019년 시즌 각각 7위와 10위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는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2020 시즌 초반에 연승을 이어가며 팬들의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연승가도도 잠시, NC, KIA, 두산 등에게 많은 경기를 내어 주면서 롯데의 순위는 하위권으로 쳐졌다. 그러나 한동안의 부진으로 최하위권까지 쳐지는가 싶더니 다시 승수를 쌓아 KIA의 뒤를 바짝 따라붙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어 롯데의 팬들은 가을야구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삼성과 정규리그 7위 삼성 라이온스  

최근을 기준으로 삼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뉴스에 회자된 기업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부정승계 정황을 강하게 수사하고 있는 검찰과 이에 대해 ‘과도한 표적수사’라면서 맞서고 있는 삼성의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진 것은 한동안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안타깝게도 삼성에게 악재는 이 뿐만이 아니다. 무역분쟁으로 인한 미국과 중국의 기싸움에 양 쪽 모두에 자사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전자는 굉장히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삼성전자는 둘 중 어느 편도 확실하게 들지 않는 중립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정세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 위기에도 이재용 부회장은 주요 사업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방향성을 진두지휘하는 부지런함을 보여준다.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을 직접 방문하는가 하면 삼성과는 재계의 라이벌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친환경 자동차 배터리 부문에서 협업을 논의하기도 한다. 
   
탄탄한 투수력과 집중력 있는 타선의 조화로 삼성 라이온즈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를 평정한다. 그러나 주요 선수들의 이탈과 은퇴로 전력이 크게 약화됐고 2016년에는 10개팀 중 9위를 차지하는 충격적인 성적을 남긴다. 급기야는 삼성의 전성기를 이끈 류중일 감독이 2017년 LG트윈스로 떠나면서 이후 삼성은 매년 붙박이 하위권에 머무르며 이전의 위엄은 온데 간 데 없어진다. 올 시즌은 예전과 같은 극심한 부진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삼성은 약팀으로 분유되며 리그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KT와 정규리그 8위 KT 위즈 

KT는 SK텔레콤, LG유플러스와 함께 국내 통신업계를 이끌고 있다. 특히 첨단 무선통신 기술에 있어서는 국내 최정상을 추구하는 명확한 방향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AI(인공지능)와 차세대 인터넷 5G의 상용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18일 KT는 개국 50주년을 맞이해 KT SAT 금산위성센터에서 자사의 위성 신기술이 집약된 차기 위성 ‘무궁화위성 6A호’의 계획을 발표하며 자사의 기술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KT는 정치권과 연계 여러 가지 비리, 공공분야 전용회선 입찰담합 혐의 등과 연루된 ‘CEO 리스크’가 계속 이어지며 잡음을 내고 있다.   

올해로 창단 8년차를 맞은 KT 위즈는 지난해 창단 후 가장 높은 순위인 리그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창단 후 꾸준하게 9위와 10위를 오고가며 리그 최하위 전력으로 여겨졌던 꼬리표를 뗀 것이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리그의 하위권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 시즌 초반은 10위에서 시작했으나 SK와 한화가 예상을 벗어나는 놀라운(?) 부진을 보여주면서 상대적으로 KT 위즈의 부진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 벌여졌다.    

SK그룹과 정규리그 9위 SK 와이번스 

SK그룹(이하 SK) 역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의 여파가 주요 사업부문(특히 정유)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는 오히려 사업 영역을 꾸준하게 확장시키는 과감함으로 현재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최태원 회장이 ‘27년 뚝심’으로 성장시킨 제약바이오 사업부문(SK바이오팜)은 SK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SK에게는 아직 확실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최태원 회장의 개인사 문제가 남아있다. 이 문제는 추후 SK 총수 일가의 경영권과 연결된 부분이 있기에 재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 SK최태원 회장. 출처= SK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총 3회의 한국시리즈 우승, 2018년 정규리그 1위 두산베어스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저력의 팀 SK와이번스는 두산 베어스와 함께 꾸준한 전력을 자랑하는 리그의 강팀이었다. 그런데, 올 시즌 초반의 SK는 그야말로 창단 이후 최악의 부진을 보여주고 있다. 리그의 개막과 동시에 SK는 1승 10패라는 어마어마한 부진으로 리그 최하위에 자리 잡으며 골수 팬들을 실망시킨다. 이후 몇 경기에서 승수를 추가하며 잠시 부진에서 벗어나는가 했으나 연승을 이어가지 못하면서 현재는 리그 최약체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SK의 놀라운 부진으로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그 팀(?)이 있어 SK는 리그 최하위의 자리를 강제로 빼앗겼다. 그 팀은 바로...     

한화그룹과 정규리그 10위 한화 이글스 

한화그룹(이하 한화)은 재계의 다른 기업들에 비해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한 피해를 덜 입었다. 주력인 방위산업이나 신소재, 화학 분야 등은 코로나의 여파를 그나마 덜 받는 업종이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한화의 몇 가지 선택은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수소차 스타트업 니콜라 사에 대한 지분 투자였다. 니콜라는 미국 증시에 상장되자마자 투자자들의 엄청난 관심이 집중됐고 주가가 하루 만에 두 배로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이에 따라 한화가 보유하고 있는 니콜라의 지분 가치도 오르면서 한화의 자산은 약 1조원이 늘어난다. 악재가 있다면 한화는 현재 공정위로부터 일감몰아주기 혐의를 추궁 받고 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공정위에 항변이 가능한 여지가 있어 다른 기업들이 마주한 악재보다는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하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연패 기록은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18연패가 있었다. 이 기록은 이후 35년 동안 깨지지 않았는데, 2020년에 그 역사적인 대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전설의 ‘그 팀’이 나타났다. 바로 한화 이글스다. 한화 이글스는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12일까지 22일 동안 열린 18경기에서 단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하는 진풍경을 보여준다. 이쯤 되자 야구팬들은 한화가 삼미 슈퍼스타즈가 보유한 18연패의 기록을 35년 만에 깰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용덕 감독의 시즌 중 사퇴로 인한 감독의 교체, 1군 선수들의 대거 말소 등 극약처방이 통했는지 한화는 두산을 상대로 파죽의 2연승을 거두고 연패를 끊는다. 연패를 끊은 경기에서 이글스 선수들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